꾹꾹 눌러 담은 45년의 도전들, 새로운 시도들, 빛나는 시간들
나는 문득문득 김수철이 궁금했다.
나는 김수철의 노래를 뜻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어린 시절부터 아이와 함께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촉'을 부르고 있는 지금까지 김수철과 김수철의 노래가 그저 좋았다. 김수철이 가수로서의 활동보다 연주자, 작곡가로 더 많이 활동할 때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고, 아시안 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 국가적인 큰 행사 때마다 음악 감독으로 활약하는 것을 보면서도 멀리서 괜히 뿌듯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던 젊은 시절, 무리를 해서 봤던 몇 개의 공연 중 지금까지 그때의 나를 칭찬하게 되는 공연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김수철과 김덕수의 '기타 산조' 공연이었다. '기타 산조'라니!! 국악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지만 단지 김수철과 김덕수라는 이름에 대한 믿음으로 그 공연을 보게 됐다. 세종문화회관의 가파른 3층 꼭대기 자리에서 봤지만 김수철의 기타와 김덕수의 장구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최고의 연주자들이 악기로 대화를 하는 듯한 무대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중음악가였던 김수철은 활동 초기부터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인 국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깊이 공부했다. 국악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의 결과물이 바로 서편제 OST, '기타 산조'라는 장르의 창시, '팔만대장경' 등 여러 국악 연주곡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국악 크로스오버 장르에 대한 내 관심의 연원이 김수철의 음악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 오랫동안 김수철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김수철이 문득문득 궁금했다. 가끔은 기사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 공연 예매 앱에서 김수철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KBS 불후의 명곡'에서 김수철을 보게 됐다. 너무너무 반가웠다. 양동근, 안예은, 조장혁, 크라잉넛 등이 김수철의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김수철의 기타 연주와 김수철의 아이 같은 웃음이 더 반가웠다. 이런 표현 좀 이상하지만 김수철이 여전히 김수철이어서 좋았다. 그런데 방송을 보던 중 김수철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지금껏 없었던 '100인조 오케스트라'로 그의 음악을 연주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공연 정보를 찾아봤다. 아직 예매가 오픈되지 않았다. 나는 알람을 걸어 놓고 예매가 오픈되기를 기다렸다. 어느 수요일의 늦은 저녁, 나는 일을 마치고 헐레벌떡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갔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 뛰어서 계단을 올랐지만 아쉽게도 첫 곡은 놓치고 말았다. 첫 번째 맨트가 시작될 때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살짝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공연장은 꽉 차 있었다. 관객이 모두 내 마음 같으리라는 것을 공연장의 공기로도 느낄 수 있었다. 100인조 오케스트라 앞에 '작은 거인'이 서 있다. 그는 45년이라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신의 역작들을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에 감개무량한 듯 연신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관객들도 김수철의 마음이 돼서 한 명 한 명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박수로 인사를 했다. 김수철은 시종일관 아이같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해서는 레퍼토리 하나하나의 작곡 배경과 음악적 특징과 음악사적 의미를 공들여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김수철이라는 노과학자가 음악으로 써 온 논문들, 평생의 실험과 업적을 발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곡이 연주될 때마다 김수철과 관객들은 마치 중요한 연구 결과 발표를 듣듯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집중했다. 그리고 한 곡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길고 긴 박수로 그의 음악적 기여에 감사를 표했다. 지휘를 하던 김수철이 기타를 잡고 오랜만에 김덕수와 '기타 산조' 합을 맞춘다. 두 거장이 주고받는 연주가 감동적이었다. 양희은과 이적, 성시경, 백지영, 화사가 존경을 담아 김수철의 노래를 불렀다.
김수철은 국악이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시대에 '국악의 현대화'에 몰입했다. 그 후로 45년간 외로운 길을 걸었지만 김수철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고 가끔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빛나는 음악들이 남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음악은 더욱 풍성해졌다. 김수철은 공연 내내 여러 번 이야기했다. 우리나라 전통 음악이 다른 나라 전통 음악에 비해서 우월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미래의 세대에게 그 시대의 언어로 이어 줘야 한다고. 그 일을 꼭 하고 싶었다고.
이번 공연은 45년 간 김수철의 빛나는 도전들이 압축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반가워요!! 김수철!!
고마워요!! 김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