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요,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면접관 10년 차가 보는 합격 관상 ep2

by 낫낫

오늘도 면접을 봤다.

디자이너 지원자.

포트폴리오 괜찮고, 이력도 탄탄한 편.


그런데 이상하게,

면접 내내 이 친구는 자꾸 본인의 약점을 고백했다.

“실은 제가 다 한 건 아니에요.”

“실은 론칭이 된 건 아니고요…”

“실은 테스트해 본 사람이 많진 않아요.”


이쯤 되면, 실은 요정이다.

말문만 열면 실은으로 시작한다.

보통은 이럴 때 덮고 가는 게 국룰이다.

면접에서 중요한 건 솔직함보다는 설득력이고,

겸손보다는 어필이다.

우리는 다 안다. 작은 것도 크게 말하고,

사실상 1/3만 참여했어도

“제가 리드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세계.


그런데 이 친구는

거짓말을 참 못 한다.

조금만 얹어 말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작아지고 본인을 책망한다.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이건 사실은요…”라고 말끝을 흐린다.

심지어 긴장하니까 질문도 이해 못 하고 딴소리를 한다.

(당황하는 표정이 얼굴에 다 보임.)


면접 후반에는 식은땀까지 줄줄 흘렸다.

분명 집에 가서 이불킥 몇 번 했을 거다.

면접 끝나자마자 머리 쥐어뜯었을 확률 99%.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말’보다 ‘디자인’을 봤다.

본인은 구태여 말하진 않았지만,

시안 곳곳에 그 사람만의 내공이 숨어 있었다.

아무도 신경 안 쓸 작은 아이콘에

그만의 영혼을 실은 흔적.

다른 디자이너들은 경험도 못해본 과감한 시도들.

그 안에 담긴 센스와 배려.


그리고 결정적으로,

“회사에 개발 리소스가 부족해서

퍼블리싱을 배워서 직접 개발까지 해봤어요.

뭐 어쩔 수 없었어요.

그땐 진짜 죽을 것 같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우길 잘한 거 같아요.”

이 말을 웃으며 한 순간.

그 사람은 어필보다 성장과 회고를 선택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면접이 끝난 뒤,

우리 면접관 셋은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엔 멘탈 좀 털린 것 같죠?”

“식은땀 나던데요. “


“근데…


너무 괜찮지 않았어요?”

“오, 저도요! “

“앗 저도요 ㅋㅋ”


그리고 만장일치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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