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가축화되는 인간들

왜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할까?

by 낫낫


《총, 균, 쇠》를 읽다가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가축화된 동물의 조건들이, 너무도 정확하게

오늘날 조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동물들은 어떻게 인간에게 길들여졌을까.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조직에 길들여졌을까.



1. 빠르게 자라야 한다


가축은 어릴수록 빨리 자라고, 번식해야 효율적이다.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인턴에서 정직원, 신입에서 리더까지.

빠른 성장은 미덕이고, 느린 성장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



2. 얌전해야 한다


가축은 다루기 쉬워야 한다.

성질이 사납거나, 독립심이 강하면 사육이 어렵다.

조직도 그렇다.

말 잘 듣는 사람이 오래 다닌다.

지시에 충실하고, 튀지 않고, 조용히 잘 따라가는 사람.



3. 서열에 익숙해야 한다


가축은 무리 안의 질서를 받아들인다.

위에 누가 있고, 아래에 누가 있는지를 안다.

회사도 다르지 않다.

직급을 이해하고, 선을 넘지 않는 게 미덕이다.

수평조직은 늘 채용공고에만 존재한다.



4. 도망치지 않아야 한다


가축은 놀라면 도망간다. 그래서 사육이 어렵다.

조직은 불합리해도, 억울해도,

자리에 남는 사람을 ‘믿음직하다’고 부른다.

요즘은 ‘Grit’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끝까지 버티는 능력이라며, 이젠 버팀도 스펙이 된다.



5.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다


가축은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어야 한다.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기획도, 디자인도, 시장분석도.

“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라는 태도가

살아남는 방식이 되었다.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어도,

싫다고 말하긴 어려운 일이 많아졌다.



6. 번식이 통제 가능해야 한다


가축은 사람이 번식 시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도 직원의 ‘타이밍’을 원한다.

언제 결혼하고, 언제 출산할지.

말은 안 해도, 눈치는 준다.


“이 프로젝트 끝나고 하시는 게 어떨까요?”

“복귀는 가능하면 3개월 안으로요.”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이

조직의 캘린더 속 일정처럼 보일 때가 있다.



7. 좁은 공간에서도 잘 살아야 한다


가축은 좁고 통제된 공간에 잘 적응해야 한다.

오픈 오피스.

오픈되었다고는 하나, 파티션이 있을 때보다 더 비좁게 느껴진다.


사람 많은 채팅방 속,

수많은 말들 속에 치이더라도,

무표정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텨야 한다.

그게 업무의 일상이고, 생존의 기술이다.



문명은 그렇게 발전했고, 조직도 그렇게 굴러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다.


내가 오늘도 출근하는 이유를 나는 안다.

그리고 그게, 조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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