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아침에 일어나면 눈 뜨자마자 콩나물이한테 달려간다. 매일매일 쑥쑥 자라는 (매시간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콩나물이가 신기하고 놀랍다.
벌써 면포를 볼록하게 솟아 올릴 만큼 키가 커있다! 짜잔. 열어보니, 꼬물꼬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위아래를 인식하고 해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뻗어 올라간다.
또 컸다! 이제 눈만 돌리고 다시 오면 또 커있다.
덮어놓은 면포가 점점 불룩해지고, 콩들의 머리가 이제 용기 면에 가까워지게 키가 커지고 있다.
콩들에 생명의 물을 부어준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제 면포를 아예 들어 올릴 만큼 콩나물이들 키가 자랐다. 싱싱! 아름답다.
벌써 통 높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키가 너무 커서 덮어놓은 통의 키도 높여주어야 했다. 뚜껑 아래 작은 통들을 받쳐준다.
이제 난생처음 스스로 키운 콩나물을 먹을 때가 가까워지고 있구나! 설레는 이 느낌. 어쩔 수 없이 내일은 무조건 콩나물국으로 예약이다.
해 뜬 후, 나의 옥상 밭 현황.
벌써 2열이 되었다.
삼발 하고 있는 머리를 마구 잘라준 쪽파와, 방 재배치를 위해 죄다 뽑아서 다시 심어준 무들이 하루 사이에 완전히 시들시들 노란색이 되어가고 있다. 잠시 막막한 마음이 몰려왔지만.. (이대로 죽는 건가! 싶어서) 곧 마음을 다 잡는다. 잠시 적응 후유증이고 곧 기운 내서 다들 푸르게 살아날 거라고.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믿어보고 기다리기로 한다.
파의 꽃이 만개를 했다!
어떤 꽃보다도 향기롭고 진해 벌들을 쉽게 유혹한다는 파 꽃. 노란 꽃가루들이 가득이다.
이 작은 구조 안에 우주가 담겨있다. 꼭 수분이 되길 기원하며~ 씨가 맺히는지, 어떻게 되는지, 씨가 다시 심어지면 정상적인 싹이 과연 날 것인지, 싹이 난 후에 정상적으로 파가 자랄 것인지 (즉, 조작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궁금하다. 계속 관찰하며 이 생명의 순환을 지켜볼 것이다.
퇴비함에서 구출했던 파프리카 씨앗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아삭이고추보다는 파프리카 같다. 아삭이 고추는 씨앗까지 남김없이 다 먹으니까. 이렇게 많은 씨앗이 버려진 건, 분명 파프리카밖에 없는 것이다) 꼬물꼬물 강인한 생명력들이 햇살을 보러 나오고 있다.
퇴비함에서 파프리카 새싹들을 구할 때 딸려 같이 구조되었던 정체불명의 콩? 같은 2알.
빼꼼~ 콩 껍질 모자를 쓰고 우뚝 성장했다. 껍질이 검은색이었던 것과 씨앗 크기를 미루어볼 때 후보는 '수세미(설거지용 수세미 속에서 떨어진 씨앗)' 아니면 '쥐눈이콩(쌀 씻다가 흘렸을 씨앗)' 이 2가지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쥐눈이콩'이 유력한 듯싶다.
이렇게 예정 없던 쥐눈이콩마저 키우게 되는 것이다.
마트에서 구출해왔던 큰 형님 당근이의 잎들이 점점 푸르게 숲을 이루어가고 있고, 중간 형님 2개와 새싹 당근들도 잘 자라고 있다.
당근의 잎이 달린 본체 모습을 난생처음 보고, 또 당근의 색들이 꼭 주황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2013년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의 '문화비축기지'가 들어서 있던 그 자리, 아직 허허벌판이던 공사현장 한구석에 몇몇 사회적 기업 관련 단체들이 컨테이너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거기서 '수카라 + 자란다팜'선생님들께서 '농사+요리' 합작 프로그램을 진행하셔서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공사 중인 진흙 밭을 뚫고 들어가서 쓰레기 덮인 땅을 텃밭으로 만드는 일부터 같이 시작하는 것. 그곳 컨테이너 옥상 가득 이런저런 모든 식자재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마치 꿈의 정원 같았다. 거기서 처음 역할을 부여받았던 일이 바로 '당근 솎아내기'라는 명이었다.
* 수카라 : https://www.instagram.com/sukkara_seoul
* 자란다팜 : https://www.instagram.com/jaranda_farm
식물이건, 농사 건, 요리건, 뭐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왕초보로서 너무 떨리는 순간이었는데 빼곡한 당근 밭에서 아직 어린 당근 몇 개들을 쏙쏙 뽑아내라 하셔서 처음 해보았다. 손가락만 한 귀여운 당근들은 색들이 천차만별. 그리고 잎 채로 먹을 수 있다는 것과, 그 맛이 얼마나 경이로왔는지도 그 작은 기억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때 그 다채롭고 귀여운 잎 달린 당근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하얀 당근, 보랏빛 당근도 있다는 사실, 당근의 잎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 등 많은 놀라운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도 농사(식물 기르기)에 대해 관심은 있었건만, 텃밭을 가는 행위가 지렁이나 온갖 벌레들의 터전을 뒤집어엎고, 잔인한 폭력으로 느껴져서 ('지렁이 사망사건'에 엄청 큰 충격과 죄책감을 받음) 마음에 큰 걸림돌이 되었는지, 결국 중도 하차하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완전 처음으로 텃밭을 만드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겠지만!)
그래도 잎 달린 어린 당근들을 몇 개 귀하게 손에 들고 와서 맛있게 먹은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 지금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당근의 완전체를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늦게나마 그때 그 지렁이에게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한다.
양상추도 아주 조금씩 제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마구 뿌려버린 새싹들의 자리도 엉키지 않게 모두 재배치하여 적당한 간격으로 조정해 주었다.
새싹들을 모두 다 옥상에 올려두었다가, 왠지 손주들 떠난 할아버지처럼 허전하여 '카모마일' 한 놈만 다시 창틀로 데려왔다. 집 안에서도 계속 식물들 자라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십자 모양으로 하나 둘 생겨나는 새싹들과 큰 형님 둘. 쪽파 한 줄은 모르고 빠뜨린 것을 옥상에 올리기 귀찮아 카모마일 밭에 우선 꼽아주었다. 난데없이 쪽파와 카모마일이 한 가족이 되었다.
"어서 방 배정을 해달라!"라며 응애응애 거리는 신생아 양성소.
아직도 한가득 남았다.
하아. 부지런히 방을 만들어주마.
갈 일 없던 마트에 괜히 한번 들려볼까 싶어 들어갔는데, 이런 행운이!
이건 운명이 아닐 수 없어!!! 제일로 사랑하는 것들인 '마늘'과 '완두'가 할인 매대에 응급환자로 누워있는 것이다. 더욱이 내게 있어서 무엇보다 꼭 필요한 '마늘'을 도대체 어떻게 심어야 하는 것인가? 하며 궁금해하고 있던 참인데, '풋마늘'이란 것 (아직 덜 자란 아기 마늘)이 뿌리째 그것도 50% 할인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풋마늘' 상태로도 마늘을 파는지도 난생처음 알았다.
정말 이토록 기쁠 수가 없다! 이것은 운명! 그렇게 마지막 남았던 퍼즐 - 마늘 - 조각이 완성되었다.
덩달아 완두콩까지 구하게 되었으니! 맛있게 먹고, 몇 개 완두는 또 심어보아야겠다. 허리가 휠 지경이지만, 그래도 완두는 심어야지!
쓰러져가는 응급환자(뿌리 뽑힌 애기 마늘들)를 어서 살려내기 위해선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
야밤에 응급처치 준비를 재빠르게 한다. 마로렉스 분무기를 드디어 개시하여 요리조리 조립하여 첫 발사를 해볼 준비를 하고.
12리터 물통을 낑낑거리고 옥상으로 올려서 응급처치 준비 완료! 급박한 야간 응급실 현장.
환자에게 공급할 안락한 병실을 만들기 위해 급한 대로 골목 구석구석에서 돌들을 주워와 깔아주고, 유기 배양토 잔뜩! 그리고 드디어 마로렉스 분무기로 물을 쏴~ 그 앞에 숨넘어가는 응급환자 애기 마늘 긴장감 속에 대기 중.
돈이 좋다. 역시 비싼 것이 좋다. 물이 너무나 기분 좋게 나온다.
심는다.
똬! 마늘 밭 완성!
하하하하. 이제 조금 더 키워서 튼실한 마늘을 썩을 위험 없이 싱싱하게 하나씩 뽑아먹을 수 있겠다. 그리고 계속 자라나는 마늘잎도 언제든지 조금씩 뜯어먹으면 되고! 나에게도 마늘 밭이 생겼다! 야호!
연속으로 야간에 실려온 두 응급환자(쪽파, 마늘)를 바라보는 파 형님.
이렇게 나의 파, 마늘 섹션이 완성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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