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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03. 2022

21화) 옥상의 또 다른 존재들 & 이불덮기 기법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1~12째 주 (4.18~5.1)


자라나는 새싹들 & 새로운 방 배정

우왕~ 자주감자를 심었던 4곳에서도 모두 성공적으로 싹들이 올라왔다. 신비할 따름. 감자도 놀랄 정도로 쑥쑥 자라난다. 아주 힘이 넘친다.

하트 모양 귀여운 게걸무 5형제도 잘 자라고 있고.

며칠 지나니 다행히 옮겨 심었던 무 새싹들도 푸르른 본잎들로 바뀌었다. 시들시들해서 죽는 건가 싶었는데, 용케 다들 살아났다! 강인한 정신력을 계속 공급해 주마.

우앙. 깻잎의 본 잎 아래 또 애기 깻잎들이 줄기 사이에서 솟아나고 있다. '무한 복제'의 현장. 모든 마디마디에서 똑같은 모양의 잎이 퍼져 나온다.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이제 이 부분에서 가지 치기니 뭐니 아마 관리하는 농사 요령이 있는 것 같다. (더 질 좋은 수확을 한 데 집중시키기 위하여.) 아직 거기까지는 공부하지 않아 방법을 모르는데,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으니 부지런히 다음 단계 진도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 우선은 무엇이 좋은 방법일지 모르겠으니 자연 그대로 두어본다.


최대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싶기도 하다. 아마 농사법엔 "뭐 뭐를 해야 한다."라고 나와있어도 오롯이 그것은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른 방법론이기 때문에, 내 목적이 질 좋고 팔기 위한 수확이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하지 않을 확률이 크겠다. 개념에 대한 이해만 한 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

난장판.


매일 같이 새로운 방을 계속 만들어 준다. 오늘은 달래와 방울토마토, 강낭콩 등 몇 놈들이 방에 입주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무척 설레어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놈들을 뒤로하고, 가장은 부지런히 스티로폼 월드의 구성과 방 만들기 준비를 요리조리 해본다. 

땅콩과 콩들을 묻어둔지 꽤 오래되었는데, 강낭콩 하나만 힘차게 뻗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힘겹게 혼자만 살아남은 방울토마토도 어서 방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씨앗들 중 검은 땅콩 다음으로 가장 크기가 컸던 강낭콩! 물에 불으니 원래 씨앗의 2배 이상 크기가 커졌다. 씨앗이 큰 만큼 뿌리가 아주 튼실! 뭔가 무섭다. 이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깨알보다 작은 씨앗들만 보다가 이것을 보니, 갑자기 공룡 알을 심는 두려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만큼 뻗어져 나오는 이 강인한 에너지! 아주 쑥쑥쑥 하늘까지 강낭콩 줄기가 올라갈 듯한 느낌.

깊고 큰 박스 2개나 강낭콩을 위해 특별 마련! 이제까지의 잎채소들과 다르게 열매채소 놈들이라 가장 큰 면적과 깊이의 박스와 흙이 할애되었다. 아직 싹 나오지 않은 씨앗들도 다 옮겨주었다. 총 4개다. 고개 들기 전의 무서운 공룡 느낌. 콩과는 어떻게 자라나는지 궁금함에 흥미진진하다.

임시로 컵에 담겨 목화씨 대신 선물로 왔던 달래도 드디어 넓은 흙 땅으로 옮겨준다. 


와우! 이것이 달래로구나. 몽글몽글 작고 크게 자연스레 만들어진 달래의 진짜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마트에서는 크기가 다 고른 아기 달래만 보았던 지라, 이렇게 달래의 알 주머니가 불룩하게 커지는 것인지도 몰랐고! 계속 분화하면서 알이 옆으로 생겨나고 줄기도 분화하는 것인가 보다.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심으라고 하셨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또 분해하여 버렸다. 달래야, 어떻게든 살아남아보아라.

나의 실수로 한쪽 날개가 잘라진 방울토마토. 흑흑. 미안하다. 3알 중에 1개만 용케 살아남아 느릿느릿 나름 열심히 커가고 있다.


씨앗을 더 뿌릴까 하다가 우선 땅 문제로 유일하게 이 종류는 이놈 하나만 키워보기로 한다. 추후에 여유가 되면 좀 더 뿌려보기로 하고.

드디어 방 배정 완료된 방울토마토와 달래!

현재까지의 옥상 정원 모습. 매일 이렇게 조금씩 변화한다.




신 기술! 이불 덮기 기법

룰루~ 내가 좋아하는 완두콩! 먹을 때마다 하나씩 까서 먹었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껍질이 상해 가고 있어 모든 콩을 다 깠다. 그리고 튼실한 놈 4알은 씨앗용으로 빼놓았다.

예전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껍질을 버렸을 텐데, 이젠 '이 껍질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분 날아감 막이 용으로 화단에 덮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낭콩 밭 위에 이불로 깔아주었다.

그다음 날! 완두 껍질들의 든든한 가드 속에 강낭콩이가 아주 건장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덩치에 맞게 자라나는 속도도 특급이다! 

완두 콩이 이불을 덮고 있는 강낭콩이 씨앗들.


강낭콩 겨우 2알이 드넓은 부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또 임시 세입자들을 들이기로 한다. 저런 것을 '깔세'라고 한다. 잠시라도 비어있는 공간이 없도록 최대로 돌려야 한다. 살 곳이 없어 좁아터져 힘들어하는 영세민 비타민이 새싹들을 또 임시 이주시켜 강낭콩 밭에 기거하게 하였다.

이불이 어디 더 없을까? 하다가, 산에서 주워온 낙엽을 잘게 부수어 흙 위를 덮어주는 방법도 도입하였다. 옥상이 워낙 뜨거워 몇 분만 있으면 흙의 수분들과 영양소가 훅! 날아가 버리는데, 그것을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서 낙엽과 마사토 들을 흩뿌려 덮어준 것이다.


이 낙엽을 가져와서 보니 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아하고 좋다. 무슨 나무인지 역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그 나무를 잘 관찰하여 무엇인지 알아내야겠다. 밤나무인 것인가?

돌나물도 답답한 바구니에서 꺼내어 밭으로 옮겨주고! 돌나물의 밭답게 '멋진 돌'도 함께 넣어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우아한 스타일로 익스테리어도 해주었다. 

야밤의 농사. 


새롭게 개발한 '낙엽+돌 뿌리기 이불 덮기 기법'을 온통 모든 밭에 적용해 주었다. 하하! 이게 맞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그냥 하는 거야.




옥상의 또 다른 존재들

사실 식물 보육원엔 식물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미들도 있다. 하하. 산에서 따라온 것이다. 


'그래도 뭐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있다. 개미도 있고, 벌도 있고, 파리도 있고, 새들도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다양한 곤충들과 보이지 않는 존재들.. 점점 종 다양성이 늘어가고 있다. 어떻게 되어갈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좋다고 생각한다.

점점 생태계가 풍부해지고 있는 내 옥상정원. 며칠 후, 무언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놈이 출연하였다.


독을 잔뜩 품고 있을 듯한 무언가 위험해 보이는 직감적인 느낌이긴 한데,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색상과 빛은 정말 처음 보았다. 고작 사진 따위로는 붙잡을 수 없는 색이다. 반짝이는 녹색 빛의 찬란함은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었다.


우연히 내 팔에 날아와 앉았길래, 한참을 놀라움과 감탄으로 그 찬란한 녹색 광택 어린 빛을 햇살 아래 가만히 오래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름다운 곤충들과 대부분의 동물들이 '저마다의 고유의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정작 자신만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와 같은 것 아닐까?.. 이 아름다운 존재를 한참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후에 찾아보니, '큰 광대노린재'라는 이름이 붙은 놈이었다. 또 놀러 와~ 안녕!

또, 내가 입양한 것이 아닌데 알아서 들어와서, 알아서 자리 잡고, 알아서 자라고 있는 식구들도 꽤 많다. 명단에는 없지만 각각 모두 다른 모양을 뽐내며 쑥쑥 커가는 이름 모를 식물들이다.

다채로운 모습들.


최대한 남겨두고, '식량에 방해가 될 정도가 될 경우에만' '뿌리를 남긴 채'로 '줄기만 잘라서' '땅에 덮어줄' 계획이다. 


자연 농법에 대해 앞으로 공부해야겠지만, 현재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타 식물들의 뿌리가 커가면서 땅 사이의 공기구멍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좋은 역할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곤충의 입장에서도 먹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식량 작물만이 피해 입을 것을 줄여주기도 하고.

멀리서 이곳을 관찰만 하시던 삐죽 머리 새(머리에 무스를 바른 청소년과 같이 삐죽삐죽 안 마른 듯한 윗 헤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 - 아마도 직박구리)가 이제 아주 가깝게 날아와서 앉아보고 있다.


점차 무언가 먹을 것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새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이 옥상에 얼마나 많은 새들이 놀러 와서 구경하고 뭔가 괜히 톡톡 찍어서 맛보고 갈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어쨌건 반갑다.


https://youtu.be/E27cMRtduvY

새로운 가족들이 늘어난 것을 보고, 축하공연을 하러 새들이 놀러 왔다. 서로 다른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있는 것이 귀엽다. 


현재 우리 집 옥상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새들 중, 내가 구별할 수 있게 된 새들의 종류는 8가지 정도다.

꿩, 까마귀, 까치, 비둘기, 참새(까지만 이름을 알고), 머리 삐죽삐죽 회색 새(삑삑 노래), 아주 작은 갈색 (꼬리에 노란색, 아주 길고 예쁜 노래), 빨간색 빛 나는 꼬리 갖고 있는 중간 크기 새 (아주 가끔 봄)


연습하는 단계. 꿈꾸는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의 바로 전 단계, 연습 베이스캠프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옥상에 올라와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이 작가의 비법이 궁금하다면?

[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참여하기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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