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오늘 Feb 02. 2022

20화) 첫 콩나물 수확! 자연인의 옥상 순시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1째 주 (4.18~24)


드디어 난생처음 기른 콩나물 수확!

쑥쑥쑥! 커가는 콩나물. 


빼곡히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날도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요리를 하지 못하고,

그 다음날, 이제 용기 높이의 2배가 넘어버린 콩나물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오늘 드디어 수확! 하기로.


가늘고 길게 자랐다. 하하. 쥐눈이콩이다 보니 콩 자체가 작아서 좀 더 늘씬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긴 시간 길러버려 키가 계속 크느라 길쭉해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놈 한 놈 뿌리까지 조심스레 뽑아 본다. 우앙. 잘 자랐구나! 


무에서 유가 창조된 이 신비함을 어떻게 형용한단 말인가! 그저 까만 콩알이었는데, 물만으로 생명이 작동하여 (빛도 없었으니) 무언가 추가적인 물질을 만들어내고, 또 정밀한 기능과 형태를 갖추어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


창조(지적 존재 설계론 등)에 대해서도 열어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지는 순간이다.

면포를 뚫고 열심히 뿌리박아 자신을 고정한 아이들. 아쉽게 몇몇은 워낙 견고하여 빠지지 못하고 끊어졌다.


건강한 아이들에 묻혀 조금 부실하게 생 (업보)를 안고 세상에 나온 씨앗들은 미처 자라지 못하고 아래 깔려있다. 하지만, 난 너희를 다 보듬어 안아. 완전히 상한 부분들만 떼어내고 껍질이건 줄기건 콩알이건 최대한 살려낸다.

짜잔! 이렇게 하여 며칠 만에 까만 점 하나에서 늘씬하고 풍성한 콩나물 생명체들로 변화! 4/11 콩으로 시작하여, 4/22일 콩나물로 수확! (11일이 걸렸네!) 다음에 다시 키울 때는 1-2일 정도 조금 더 일찍 수확해보아야겠다. 그러면 좀 더 통실하려나?

귀한 첫 콩나물로 만든, 콩나물국!


옥상에서 잘라온 마늘잎을 마늘 대신 넣어서 (마늘을 아직 캐어내긴 아까우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보았는데, 

슬픈 진실은.. 순전히 나의 잘못된 요리 덕분에 이 콩나물국을 최면을 걸면서 먹어야만 했던 사실이다. 


"아~ 맛있다! 정말 맛있어! 맛있지? 맛있네 아! 맛있다~"라고 세뇌하면서 며칠에 걸려서 겨우 먹었다. 다음번 콩나물 요리 때는 기필코 잘 해보리라!

이제 마술 호텔방은 깨끗하게 청소된 후, 새 입주자를 맞이했다. 이번엔 '비타민' 씨앗들.


처음에 씨앗들을 이렇게 왕창 뿌렸다가 새싹으로만 먹는다는 것이 양심에 찔려서 결국 흙으로 옮겨 모두 계속 키워내고 있는데, 그 아이들을 이미 잘 키우고 있으니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내 한도의 땅에서 최대한 비타민들을 키워내고 있으니, 남은 씨앗들은 이제 새싹채소로만 먹어도 마음이 놓일 듯하다.


점차 통들을 추가로 더 만들어서 '콩, 녹두, 비타민, 무' 씨앗들을 키워서 '콩나물, 숙주, 어린잎 채소들'로 키워서 '살아있는 마트 죤'을 만들어야지.




자연인의 옥상 순시

일어나면, 맨발로 옥상으로 출두. 한 바퀴 돌면서 꼼꼼하게 순시한다.


집 안에 있을 땐 발이 꽁꽁 시린데, 그럴 때마다 뜨끈한 옥상 바닥을 맨발로 누비면 자동 찜질도 되고 자연인 코스 1단계에 진입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내 발은 하루 종일 새까맣다. 


개들 밖에 산책시키고 들어오면 발을 닦아주는 둥 마는 둥 대충 닦아주고 온통 집안을 뛰어다니게 내버려 두는 주인들의 마음처럼, (저 정도면 깨끗할 것이라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귀찮음을 상쇄) 나도 그냥 씨커먼스 발로 똑같이 집안을 막 돌아다닌다. '대충 이 정도면 깨끗하지 뭐~' 하면서.


원래 인간은 맨발로 흙을 밟아야 하는 존재. 나중엔 이 방수페인트 바닥이 아니라, 집 앞의 진짜 흙 밭에서 하루 종일 맨발로 살 것이다.

신나는 물 뿌리기. 아주 고은 물줄기로 주려니 물 주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물줄기 세기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미스트 같은 물줄기로 1시간이나 물을 주었다. 하하! (일주일이나 지나서 세기 조절 방법을 깨달았다. 그냥 맨 앞 물 나오는 입구를 돌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따뜻한 햇살을 나도 받고, 식물들에 하나하나 천천히 애정을 보낼 수 있어서 이 시간이 참 좋다.

엇!!!! 이럴 수가!!!! 이런 감동이!! 그렇게 기약 없이 깜깜무소식이었던 감자밭에 '20일' 만에 드디어 무언가가 빼꼼 고개를 빼낸 것이다! 감자 싹이다! 


야호. 너무 기뻐서 룰루랄라. 무언가 잘못되었나 걱정했는데.. 죽지 않고 싹이 하나라도 나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깜깜하고 깊은 땅속에서 햇살을 향해 부지런히 쑥쑥 커왔을 감자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힘차게 움트는 감자 싹! 하나만 빼꼼 나온가 싶었는데, 감자를 심어주었던 자리들에서 하나 둘, 실패 없이 모두 동시에 얼굴을 들고 있다. 하루 지나니, 깜짝 놀랄 만큼 잎이 커졌다.


알이 크니까, (사실 이건 씨앗이 아니라 영양번식 = 클론(복제)되어 큰 것이긴 하지만) 잎도 성장도 크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식물학백과>  ©한국식물학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식물학백과>  ©한국식물학회

그러니까 감자는, 제 몸 뻥튀기를 한 것이다. '강원래-구준엽'처럼, '손오공이 머리카락 뽑아 자신을 뻥튀기하듯' 클론(복제 인간감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심어둔 그 원래 모체와 모든 유전형질이 같은 놈들이 여러 개로 분화하여 복사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식물에 대해 1도 아는 것이 없던 무지 계의 무지 킹은 이렇게 하나하나 상황들을 닥치면서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하면서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다. 씨앗이 아닌 뻥튀기 번식이 있다는 것, 그것을 '영양번식'이라 한다는 것을 감자 덕분에 알게 되었고, 요놈이 뿌리가 아닌, 뚱뚱해진 '줄기'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미래의 순간에는 : 감자도 꽃을 피우고, 당연히 씨앗도 만들어 번식할 수 있다는 것, 왜 그럼 씨앗을 받지 않고 사람들이 뻥튀기를 시키는가, 그것의 문제점 등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차차 글을 통해 나오게 될 것이다!

우왕. 게걸무 5형제도 하룻밤 사이에 싹이 모두 바깥으로 무사히 나왔다. 토종들은 더욱더 건강할 것이니까. 쑥쑥 자라라. 어떤 위협과 고난 속에서도.

비타민들, 이주하여 다행히 잘 자라고 있고. 아주 작지만, 그 고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는 양상추들.

당근이들 새싹도 옹기종기 안테나들을 활짝! 펼치기 시작하고, 토종 상추도 무럭무럭. 

퇴비함에서 구출했던 파프리카 새싹들도 이제 힘차게 고개를 들어 올리는 중. 뾰롱! 하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안테나가 촥! 펴진다.

옮긴 후로 시들시들 완전 노랗게 다 죽어가던 무 새싹들도 다행히 본잎은 힘차게 살아나고 있다. 떡잎들이 몸살을 앓아내었지만, 그들을 희생한 후 본잎들은 아주 푸르르게 쑥쑥 잘 뻗어 나오는 중이다. 


'역시! 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옳았지!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굳세게 자랄 거라니까!'

미용실에 온 것 마냥 하염없이 반 이상 머리를 깎아낸 마늘과 쪽파들. 다행히 며칠 지나고 나면서 이제부터는 아주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느낌이다. 잘라진 잎들은 고스란히 이불이 되어 포근하게 덮혀졌다. 


마늘의 시들어가는 잎 부분들을 잘라주면서 먹을 것을 채취해본다.

오! 첫 '타 존재의 먼저 먹음' 흔적. 


우리 깻잎 첫째가 처음으로 부상을 당했다. 내 몸의 상처 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처 부위가 봉합되며 (자가 치유되며) 어쩔 수 없는 흉터(자국)를 만들어냈다. 치유능력에 감탄하고, 또 누군가 먹었다는 사실에 깻잎이 걱정되기도 하면서 반갑기도 했다.


고양이가 밥 먹고 간 '흔적'을 보면서 그놈의 존재를 상상하고 반가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다른 존재와 이어진 첫 순간이었다. 


먹으려면 먹어라. 

내 것이 아니고. 자연의 것이니. 

나도 먹고, 너도 먹고,. 곤충도 먹고. 다 같이 먹고살자.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이 작가의 비법이 궁금하다면?

[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참여하기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나오늘 : 글, 그림,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을 담습니다

#자립 #생태 #자연 #환경 #채식 #식물 #경험 #관찰 #수집 #기록 #에세이 #글 #그림 #일러스트 #사진 #재미

www.natodaylab.com | @natodaylab | natodaylab@gmail.com

© 2021. 나오늘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19화) 목화학교와 패스트패션, 토종목화 씨앗 나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