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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05. 2022

23화) 보고자 할 때 보이는 것, 도시의 채집인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2째 주 (4.25~5.1)



채집 가방의 세대교체


투철한 정신으로 나와 함께 채집활동에 온몸을 바쳤던 '한의원 부직포 가방'이 글쎄 그 고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바닥이 헤어지고 온갖 빵꾸가 생기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직전이 된 것이다.

"아~ 그대는 그 무엇보다 훌륭한 역할로 아낌없이 자신의 소명을 다하였노라!" 함께 했던 그 가방에게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새로운 채집 가방과 만날 준비를 하기로 한다.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부분들 - 지퍼 -를 오려서 재료로 남겨둔다.


무언가를 버릴 때는 이렇게 최대한 되살릴 수 있는 기능을 파악하여서 개별 요소로 관찰해야 한다. 얼마든지 이 재료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될 수 있으니까!

나의 두 번째 채집 가방. 이마트 쇼핑백. 많은 마트 유료 쇼핑백들 중에 이 이마트 쇼핑백이 가장 딱이다. 그래서 반납을 안 하고 무척이나 애용하는데, 크기와 형태에서 활용도가 아주 좋다.


채집 가방으로 아쉬운 것은 딱 하나, 핸드폰과 지갑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없어 불편하단 점인데 0.2초 머리를 굴려 그 해결법을 찾아 만들기로 한다.

별도의 적당한 주머니 백 하나를 골라, 손잡이 부분에 박아버린다. 하핫. 실로 꿰매면 더 단단해지겠지만, 역시 귀찮은 것은 싫으니까 그냥 집게 클립으로 뽁뽁! 고정한다. 지퍼를 열고 닫기까지 원한다면 지퍼길 아래 라인을 실로 꿰매면 완벽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것까지는 필요 없으니 이것으로 만족한다.

와우! 완전 굿!!!! 즉석에서 주머니 있는 무적의 채집 가방이 탄생!


쓰면 쓸수록 늘어가는 것은 많다. '빚 지기', '사기 치는 기술' 같은 것이 쓰면 쓸수록 무한 성장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인데, 그런 것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창의력과 응용력, 관찰력'을 시키자! 이 능력은 쓰면 쓸수록 급속도로 성장한다.


즉, 기존의 쓰임으로만 인식되는 고정관념 틀을 깨고 그 물리적 요소요소를 하나의 재료로 분리하여 확장하여 볼 수 있는 눈, 낯선 것들을 재조합할 수 있는 응용력과 다양한 방식으로 닥친 문제를 해결해보는 창의력,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도전정신) 말이다. 작게나마 삶 속에서 그런 태도가 하나씩 쌓이다 보니 어느새 점점 더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와 눈, 손, 발이 빠르게 움직여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단한 발명이나 멋지고 예쁜 작업 물들을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지만, 알뜰살뜰 생활 속에서 되살림을 해나가는 능력은 분명 늘어가고 있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매일 이렇게 성장해나간다. 꿈꾸는 창의적 자연인에 가까워져 간다.


"가즈~아! 자연인!" 나는 자연인이다!!!




콜맨 아이스박스, 너도 화분으로!

또 주워왔다.


줍기의 신, 보육원 원장님께서는 길을 나가시기만 하면 뭐든지 '화분(애기들 방)을 만들 수 있는지'로만 사물들이 보인다.


1. 깊다.

2. 표면적이 넓다

3. 보온이 잘 되는 재질이다

4. 디자인과 색상이 기존 방들과 조화롭다.


0.1초 사이 온갖 거리의 사물들을 스캔하면서 '겟'할 것을 판별해내는 우선순위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오늘은 글쎄 '콜맨 아이스박스', 그것도 멋스러운 빈티지 아이템으로 딱! 인 RED 색상을 만났다. 저 브랜드나 아이스박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팔 수도 있을(거래가 가능할) 가치는 되어 보인다. 단, 주워올 때는 처분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재활용으로 내놓을 수 있거나, 팔 수 있거나, 줄 수 있을 물건인지!)


집에 와서 목욕을 시켜주니, 아주 굿! 세 제품이 되었다. 역시나 내 감이 맞아떨어져 검색을 해보니, 이 브랜드 같은 용량 사려면 10만 원쯤이 필요한 것! 


하지만, 지 아무리 10만 원 하던 100만 원 하던 냉장고 없는 자(=얼음 없는 자)에게 아이스박스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물리적인 형태로서의 쓸모 만이 유용할 뿐이니 난 화분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후후.

뚜껑 여닫이가 끊어져 있어 버린 것으로 추측된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다. 어차피 떼어내야 하는데! 


녹이 많이 쓴 채로 뚜껑과 박스를 이어주던 속 고정끈도 분리! 하나는 나사가 아예 돌아가지 않아 그냥 잘라 끊어주었다.

룰루~ 이럴 때를 위해 대기 중이었던 비트 3 가문. 


목재용 / 콘크리트용 / 철재용 이렇게 있는데, 플라스틱 재질은 뭘로 뚫릴까? 하다 우선 목재용으로 먼저 시도해보았다. 그것으로 시원치 않으면 바로 최강 철재용으로 바꾸면 되니까.

널 뚫을 것이다. 10만 원짜리 콜맨 아이스박스야, 너는 화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아주 단단한 플라스틱이 안팎으로 마감되어 있어 (가운데는 당연히 스티로폼-보온 재질이고), 어째 목재용 드릴 비트로는 아주아주 힘겹게 뚫린다. 

바로 철재용으로 바꾸면 되었을 것을! 무식하게 계속 힘으로 열몇 개를 뚫다가 그제야 생각나서 비트를 철제용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마치 전기인두로 스티로폼 뚫을 때처럼 그냥 대기만 하면 뿡뿡! 뚫린다.


짜잔! 순식간에 화분으로 변신한 빈티지 콜맨 RED.

요로코롬 양쪽 손잡이를 꺼내 들 수도 있다. 야호! 너무 좋구나.


나중에 하단에 바퀴를 4개 달아서 이동이 편하게 만들어도 좋겠다. 박스만으로도 무게가 꽤 나가니 흙 넣는 순간 이동 불가가 될 테니!




만병통치 EM 사용 시작!

도시의 채집인은 오늘 또 새로운 공짜 아이템 Zone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EM 우물터다. 예로부터 이 EM이 청소계의 만병통치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는데 우연히 주민센터를 지나다가 이것이 샘솟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EM(=유용 미생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벌써 10~15년은 된 것 같은데! 하하하. 이제까지 귀찮다는 것만으로 활용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살아왔다. 우리 구는 다행히 모든 주민센터에서 언제든 받아 갈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까지 해준다. 이렇게 세상은 내가 눈을 뜨기만 하면 무척이나 풍요롭다.  


( * 각 지역(구/군)마다 EM 제공은 제각각인 듯하다. 어떤 구는 제공하지 않아서, 옆 구의 우물터까지 원정 출장을 가서 EM을 길어온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어찌나 안쓰럽던지! 그럴 땐, 열심히 구청에 필요하다고 압박을 넣도록 하자!) 

쏟아지는 공짜 EM 우물물. 발효까지 완성된 것이라 별도로 내가 추가로 해야 할 일도 없다. 쓰임에 맞게 물과 적당량으로 희석만 해서 쓰면 된다. 처음엔 모르고 유리병에 꽉 담았는데, 가스가 발생한다 하여 페트병에 여유공간을 두고 담아오고 있다.


가장 강도 높은 사용이 필요한 경우(음식물 쓰레기 퇴비 발효시키기, 지독한 것 청소, 빨래 등)에는 원액 ~ 가장 강도가 낮아야 하는 경우(식물 물 주기)는 1/1000까지 적정히 농도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것이야 농도가 틀려도 큰일 날 것은 없는데, 식물에 사용하는 것만은 꼭! 1/1000(잎에 살포시)~1/500(흙에 살포시)을 지켜야 한다고 모든 안내 책자에 신신당부되어 있다. 그만큼 아주 미세한 EM이 들어가도 식물과 흙에는 큰 효과를 내는가 보다. 농도가 진하면 식물들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발육도 좋게 하고, 해충이나 바이러스 등 차단에도 효과가 있고.. 뭐 만병통치로 어쨌든 좋은 효과가 난다고 하니 앞으로 물에 아주 조금씩만 1/1000 농도로 타서 뿌려줄 계획이다. 

* 물뿌리개 1리터 당 EM 발효액 1ml (아주 쥐똥만큼이다)

* 물통 10리터 당 EM 발효액 10ml (쥐똥만큼의 10배 = 위 사진과 같은 계량스푼의 물 찬 정도 = 한 밥숟갈 조금 안된다)


주민센터에서 이렇게 공짜 우물터를 운영하는 이유는 EM을 각 가정의 하수구와 배수구를 통과시키면, 악취 제거, 수질 정화, 금속과 식품의 산화방지, 부패 방지 등 큰 도움이 된다 하기 때문이다. 효모, 유산균, 누룩균, 광합성 세균, 방선균 등 80여 종의 미생물을 혼합시켜 놓은 액이라고.


다만, 이것이 정말 큰 효과를 보이는 가에 대해서는 찬반의견도 있는 듯하여 더 공부가 필요할 듯 하지만 주민센터에서도 적극 권장하고 있으니 가끔 우물을 길어오기로 한다. 


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청소부 미생물들. 곧 요놈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야 할 것 같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최소 원소

산에 다녀오는 길.


놀이터에 새로운 조형물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이 사방 주위에 가득한 자연물로 상상 가득한 세상을 창조한 흔적이다. 그 새로운 문명은 하루아침에 생겨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유적지들을 가만히 바라다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우린 자연 안에서 얼마든지 무엇이든 만들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나뭇가지 하나가 성벽이 되고, 사람이 되고, 집이 된다. 모든 것이 일방적으로 정해져서 만들어져 제공되는 완성품 플라스틱 장난감 따위는 필요 없다.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는 그 최소 원소를 가지고,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삶을 살수록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가능성들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시의 채집인은 오늘도 어슬렁 골목골목을 탐사한다. 쓰레기를 사냥한다. 자연물을 수집한다. 공짜로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새로이 발견한다. 


보고자 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 온통 세상은 보물들이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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