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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12. 2022

30화) 씨앗 껍질 모자를 쓰고 세상에 나오는 새싹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4째 주 (5.9~15)



 봄이 왔다, 어린이의 계절

꿈에 그리던 일이 일어났다.


문익점이 붓 통에 겨우 숨겨 들어와 전했다는 그 소중한 목화씨 - 그것도 재래종 목화씨앗이 드디어 빼꼼 싹이 튼 것이다. 물에 계속 하염없이 불릴 때는 전혀 싹이 틀 기운이 없었는데, 그냥 흙에 심으니 역시 효과가 바로다. 흙의 기운 빠샤!

그다음 날, 다른 목화 씨앗들도 쑥쑥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흐앙. 감탄! 솜털 같은 껍질을 예쁘게 모자 쓰고 힘차게 뿌리를 아래로 향해 고개를 드는 새싹들. 

우산이 펴지기 직전이다.

짜잔! 우산 폈다! 이것이 목화의 떡잎. 아주 크고 넓다. 신비롭고 기뻐라.


3알 심었다가 혹시나 발아가 안 되나 싶어 2알을 더 심어주었는데, 글쎄 5알 모두 싹이 잘 나버렸다. 목화가 5개나 되어버리다니. 더 자라나기 전에 부지런히 제2부지를 또 마련해야겠다.

흐억!! 이게 뭐야. 바로 그다음 날 글쎄 보육원 아침 순시를 하는데, 목화밭에서 이 사건 현장을 발견하였다. 잘 자라나던 소중한 목화 새싹 하나가 뿌리째 뽑혀서 내동댕이라니!!


이 옥상 낙원에서 이 정도 (신 급)의 물리적 힘을 부여할 수 있는 인간 존재는 나뿐이다. 그 누구도 집 안에 있는 계단을 뚫고 올라가 침범할 수가 없는 구조이다. 사방에 이어진 곳도 없어 고양이들도 절대 올라올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정도 움직임을 가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단 하나, 범인은 '새'들뿐이다.


어느 놈인지 새가 날아와서 콩알인지 알고, 혹은 새로 보는 것이 태어나니까 맛보고 구경하려고 쑥~ 뽑아냈다가 그냥 버리고 간 현장 같다. 오늘도 이렇게 범인의 흔적만으로 추리를 해내는 명탐정이 된다. "이놈 새끼들~" 하면서 얼른! 뽑힌 새싹을 다시 잘 심어주었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하지만,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연달아 돋아나는 새싹들의 힘찬 에너지. 토종 검은콩(서리태)이 껍질 모자를 벗고 아주 기운차게 솟아났다. 콩 가운데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분명 그쯤은 이겨내고 속 잎들을 무사히 펼쳐낼 거라 믿는다.

예쁜 발레리나의 포즈 같은 토종 북방 오이. 오이씨 껍질 모자를 곱게 머리에 앉히고 양 날개를 펼치기 직전이다.

후앙~ 드디어 싹이 나왔구나! 오래 기다리던 토종 뿔 시금치의 안테나 같은 떡잎들도 빼꼼~ 하늘을 향해 솟았다.

흑흑. 콩들은 발아되기가 쉽지가 않구나. 습기가 많아서인지 강낭콩과 검정땅콩의 씨앗들이 썩어버렸다. 

비상용으로 겨우 몇 알 남겨두었던 귀한 토종씨앗 봉투에서 다시 조심조심 한 알을 꺼내본다. 예쁜 무늬의 토종 강낭콩.

토종 검은 땅콩은 이것이 마지막 총알이다. 단 2알. 비장한 마음으로 껍질을 깐다. 한 놈이라도 꼭 살아나야 한다! 다시 심어줄게. 화이팅. 이번엔 잘 자라나길 바라며!

2알 밖에 없는 토종 검은 땅콩을 심어 두고 가슴을 졸였는데, 며칠 후 둘 중 하나에서 우렁차게 땅을 가르며 새싹이 나왔다! 야호!! 슬프게도 한 놈은 또 역시 소식이 없고.. 그렇게 마지막 씨앗 한 알로 검은 땅콩을 길러내게 되었다.


* 후에 알게 된 사실 : 이것은 정말 미스테리한 사건인데, 이 놈은 커서 강낭콩이 된다. 결론적으로 검은 땅콩은 옥상낙원에서 유일하게 태어나지 못한 놈이 되었다. 분명 검은땅콩을 심은 자리인데 왜 강낭콩이 자라났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사건.  

우와~ 새싹 모양이 제일 귀여운 동글동글 바질들. 씨앗들을 조금 더 뿌려두었건 것이 동시에 기지개를 켜서 올라오고 있다.

토종 조선파도 아직은 애기지만 실 같은 와중에 2~3줄기로 점점 분화하면서 파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가장 빠른 성장과 큰 잎을 자랑하는 강낭콩이! 역시 씨앗이 크니 스케일도 크다. 강낭콩의 잎 모양이 예쁘고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내 사랑 완두콩이. 


완두콩은 잎의 모양과 생겨나는 모습이 다른 콩과와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처음엔 그 구조가 잘 이해가 안 되어 한참 지켜보았는데, 동글이 잎이 접혀있다가 하트 모양으로 펼쳐지면서 위, 왼쪽, 오른쪽.. 덩굴손을 뻗치면서 자라난다.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이 덩굴손이 심어준 나뭇가지를 잘 붙잡을 수 있도록 걸어주어 봤는데 과연 어떻게 되어갈지?

강렬한 무 밭에 둘러싸여 겨우 자라나고 있는 연약한 두 콩들. 퇴비함에서 싹이 나서 구출했던 쥐눈이콩으로 추측되는 두 아이. 세입자 무들이 점점 세력이 강해져서 조만간 원래 주인이었던 이 콩들이 이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기다려봐~


이렇게 날마다 온갖 종류의 새싹들이 세상을 향해 자라나고 있다. 5월은 역시 어린이의 계절이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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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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