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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13. 2022

31화) 꽃이다! 꽃. 첫 꽃이 피다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4째 주 (5.9~15)


꽃이다! 꽃. 첫 꽃이 피다

보통의 날과 같이 일어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와서 하는 식물 보육원 순시. 매일 같이 새로운 일들이 빵빵! 일어나긴 하지만, 오늘은 무척이나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변함없이 같은 모양으로 자라나던 싱그러운 비타민의 잎이 가운데가 갑자기 길쭉하고 얇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더니 그 안에 작은 꽃들 봉우리들을 가득 만들어낸 것이다.

하루 만에 우뚝 솟아났다. 그 자라나는 속도가 얼마나 놀라운지! 내가 직접 뿌린 씨앗들이 자라나서, '꽃'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지중지 키운 아들딸이 벌써 커서 상견례하고 결혼식 일정 잡는 그런 느낌 같은 것인가!

또 다음 날.


이놈이 옥상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게 되는 존재이다. 다른 아이들 다 아직 초딩처럼 몽글몽글 자라고 있는데, 이 아이가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고 성숙하여 꽃을 피우겠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 아이의 영향을 받았는지 하나 둘 꽃 눈을 따라서 준비하고 있는 놈들이 보였다.

우와!! 이게 뭐야! 이날은 옥상에 올라가서 기쁨의 감격에 벅차올랐다. 


"꽃이 피었어! 내가 뿌린 씨앗에서 난 첫 꽃이~"

이토록 아름답고 귀여운 꽃이라니. 비타민의 꽃. 


첫 꽃이 활짝~ 무척이나 싱그럽게 그 스타트를 끊었다. 하룻밤 사이에 옆의 아이도 키가 자라나 따라서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고, 하나 둘 꽃 부대로 무장할 태세이다.

그다음 날, 이번엔 두 번째 아이가 꽃을 같이 피웠다.

아래부터 시작하여 점점 위로 올라가며 하나씩 총알을 터트린다. 장전한 무기와 같다. 오랜 시간 수정이 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번에 모든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아래부터 한 줄씩 한 줄씩 차츰 위로 올라가면서 꽃이 계속 천천히 생겨난다. (완전 한 개씩만 피우면 벌들이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 잘 보이기 위해 약간은 무리 지어 피우는 것이겠지!)

아직 식물에 있어서 꽃과 수분, 그리고 씨앗.. 그 과정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공부를 못했는데 꽃부터 생겨나서 이 학생은 또 마음이 급해졌다. 자연학교는 이렇게 강도 높게 매일매일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다.


농사(얻고자 하는 식량으로서의 수확물)의 포커스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꽃은 피우지 못하게 잘라주어야 하는 것 등.. 온통 그런 지침들로 가득했었던 것 같은데.. 최대한 인위적인 가공을 하지 않은 채 생명 순환과정을 지켜보고자 하는 나로서는 우선 이 식물 변화 과정들의 각 단계에 의미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 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대부분의 원예/농사 안내 책들에 꽃과 씨앗 이야기가 이상하리만큼 없다. 아예 그 부분은 언급도 되어있지 않아 황당했다.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고 수분하고 씨앗을 맺어 다시 번식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자 순환고리인데, 그 과정의 개념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응용하여 행동을 선택하면 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꽃을 피울 준비중

무 잎 사이에서도 꽃송이들이 생겨났다!


이제 진짜 큰일이다. 지금 유일하게 무가 일반 무(새싹채소용 씨앗들을 키운 것 - 유럽 수입산)와 토종 게걸무 2종류가 같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이 같이 꽃을 피워버리면 섞이게 되어 혼잡이 일어날 수 있으니 큰일이 나는 것이다. 토종 게걸무의 순수 혈통 씨앗을 잘 만들어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도 어서 빨리 공부해야 한다. 꽃들이 생겨나고 있다. 기쁘지만 지식 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마음이 바쁘네.

양배추 썰어 먹다가, 꽃이 생겨나려고 하길래 심어주었던 조각. 용케도 꽃줄기를 만들어 있는 힘껏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참으로 놀랍지. 잎과 꽃을 만들어내며 형태를 변화시키는 모습이.

우오. 돌나물의 끝부분에서도 새로운 변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돌나물의 꽃이 되려는 모양인가 보다.


돌나물은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기하학적인 반복 패턴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인데, 역시 꽃의 구조는 더 상상 초월이다. 어떤 예쁜 꽃이 피게 되는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깻잎이 옆에 이름 모를 아주 작은 새끼 풀에서 보이지도 않는 하얀 꽃이 만개했다. 아이고. 이렇게 작은 존재에서도 봄이 왔다고 부지런히 꽃이 피어났다. 봄은 정말 만물을 소생시키는 존재인가 보다.

흙 속에서 씨앗의 에너지를 깨어나게 해서 식물로 탄생시키고, 그 식물들이 자라나 과 풍성한 잎들을 만들어내고, 줄줄이 곤충과 미생물들이 소생한다. 그리고 인간이 먹고, 동물이 먹고, 식물은 모든 생명들을 살린다. 생을 다하는 모든 존재들은 다시 가장 작은 존재인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이 되고, 그것은 다시 식물이 된다.


결국 우리는 이 드넓은 바다의 파도 같은 존재. 구별 지을 수 없는 각개 찰나의 형상들이로구나! 오늘도 이 작은 꽃이 말없이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주어지는 알쏭달쏭 주어지는 자연학교의 숙제들을 풀어내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해 가야겠다 :)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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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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