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바라본 오늘날의 40대
‘영포티’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이 단어는 2015~16년경 처음 마케팅 용어로, 긍정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소비력이 증대된 40대들: 자기관리에 적극적이고, 문화적 감수성이 살아 있으며,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40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다. 마치 오늘날의 액티브 시니어같은 개념이라고 할까?
그러나 지금의 영포티는 “억지로 젊음을 흉내 내는 사람들”이라는 조롱의 뉘앙스를 더 강하게 지닌다.
그리고 그 조롱의 뉘앙스와 함께 더 폭발적으로 관심을 받고있다.
'영포티' 조롱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나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그것이 추함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납득은 된다.
그렇지만 주변의 40대들을 바라보며, '영포티' 현상의 중심인 40대를 좀더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다.
1) 사실 영포티는 진짜 영하다.
한국의 중위연령은 이미 40대 중반에 올라섰고, 연령 전체로 보면 허리같은 느낌이다.
2) ‘나는 여전히 중심에 있다’는 감각을 유지해야한다는 압력이 있다.
중위연령 뿐 아니라, 사회·경제의 허리 역시 40대에 놓여 있다.
40대가 책임져야하는 범위는, 30대에 비해서 훨씬 크다.
소비력·직장 영향력·가정 책임 모든 것이 그렇다.
3) 젊어보이는 것이 생존이기 때문이다.
40대가 젊어 보이려는 시도는 단순 취향이 아니라 생존·경쟁·커리어 유지의 심리가 작동한다.
한국은 외모·패션·트렌드 감각을 ‘능력’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다.
문제는 실제 트렌디한 것들은 20~30대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감각 차이’가 발생하고, 그 틈에서 조롱이 발생한다. 젊음이 생존의 압력이 되는 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고 싶은 40대와 트렌디함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4) 그 윗세대(586 이상 세대)와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은 과도기적 세대다.
X세대~밀레니얼로 불리며, 그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감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아 찬란했던 과거여~' 하고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민주화 세대, 트로트 세대와는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중년 이미지’에 묶이기 싫어하는 정체성 투쟁의 일종이라고 볼 수있다.
세대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기성 세대는 기존 주장을 고수하면 고였다고, 새로운 주장을 도입하면 '영(Young) 한척' 혹은 아는 척 한다고 비판받곤 한다. 다들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불안과 투쟁이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언젠가 내가 속한 세대도 그 투쟁의 결과로 조롱받게 된다면 마음이 편찮을것 같기에, 누군가를 세대로 묶어 조롱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