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 덕후의 과학-기술 소개
휴대폰을 떨궈서 깨져버린 액정...?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를 자주 떨어뜨리다보면 깨집니다. 심하게 깨지다보면 화면도 안보이고 터치도 오류가 생기곤 하죠.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강화유리를 몇 번이나 갈아도 또 떨어뜨리고 깨지고...
이렇게 깨져버린 화면을 보며 우리는, "아, 액정 깨졌다!" 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건 액정이 아니라 액정을 감싸는 유리와 터치스크린이 깨진 것 뿐이라고 하네요! 실제로 깨진 것은 액정이 아닙니다. 액정은 안쪽에서 더 잘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액정은 뭘까요. 이번 주제는 그래서 액정디스플레이(LCD).
LCD는 Liquid Crystal Display의 약자입니다. Liquid는 액체, Crystal은 결정, Display는 우리가 아는 그 디스플레이(뭔가를 보여주는 그것)입니다. 한글로 하면 액정 디스플레이죠. Crystal은 뭔가 보석같은 이미지를 주지만 사실 주기적으로 배열된 원자, 고체를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액정은 액체와 고체의 뭔가 중간적인 성질을 띈다는 것!
액정은 액체처럼 흐를 수 있지만, 고체처럼 규칙적인 분자 배열을 갖는 독특한 물질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액정이 깨졌다는 표현은 좀 어색하게 되는 거죠. 액체처럼 생긴게 깨질 수가 있는지?? 아무튼 이걸 어떻게 우리 휴대폰과 컴퓨터 모니터로 쓴다는 걸까요?
LCD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빛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뜬끔 없지만 빛은 전자기파입니다. 죄송하지만 그냥 받아들여 주시길(__)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라는 것이 서로 진동을 하면서 진행합니다. 사실 빛을 설명하는 관점은 이것 뿐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관점이 있고 그 어떤 문제 상황이냐에 따라서 어떤 관점을 적용할 지가 달라집니다. 그 중에서도 빛을 파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그 유명한 맥스웰이라는 사람입니다.
맥스웰에 따르면 빛 파동은 공간을 죽 진행하는데, 진행 방향에 수직인 방향으로 전기장이 진동합니다. 이때 전기장이 특정 방향으로 진동하고 있으면 편광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편광판이라는 골키퍼에 대해서 소개할 차례입니다. 편광판은 편광 방향에 따라서 빛을 필터링합니다. 수평 방향 골키퍼는 수평으로 날아오는 공을 막습니다. 수직 방향 골키퍼는 수직 방향을 필터링합니다. 아래 그림을 참조해보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LCD에서는 액정 분자들의 앞, 뒤에 각각 수평, 수직 편광판을 둡니다. 액정에 전압을 가하지 않으면 빛이 그냥 투과하게 됩니다. 수평 편광판을 통과한 빛은 수직 편광판에서 막힙니다. 반대로 수직한 빛은 수평 편광판에서 걸러질 것이구요. 그러면 결국 수평, 수직 편광판을 거친 빛의 세기는 거의 0이 됩니다. 위아래로 막는 골키퍼, 좌우로 막는 골키퍼를 하나씩 세워뒀더니 공이 전혀 골대안으로 안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액정의 전압을 가해주면 분자의 구조가 변하게 됩니다. 변한 분자구조로 인해서, 액정을 통과하는 빛의 편광이 수평->수직으로 회전합니다. 따라서 수평 편광판을 통과했던 빛이 수직 편광판도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치 공이 수평으로 날아갔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수직낙하해서 골로 연결되는 느낌이랄까요. 이와 같은 원리로 LCD는 신호에 따라서 켜짐/꺼짐을 구분합니다.
결국 액정은 빛의 편광을 조절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빛을 내주는 광원이 필요합니다. 이를 Back Light Unit, 줄여서 BLU라고 합니다. 이 BLU의 존재로 인해서 디스플레이의 두께가 다소 두꺼워 질 수 밖에 없는 단점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자의 배열이 바뀌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우리도 갑자기 몸을 움직이려면 힘든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신호가 도착했을 때 재깍재깍 응답하지 못하고 조금 딜레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검은색을 표현하기 위해서 빛을 끄는 것이 아닌, 빛을 통과시키지 않으려 한다는 것 역시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빛이 새어 나갈수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있으니까요.
분자가 앞에서 봤을 때와 옆에서 봤을 때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액정 분자를 옆에서 보면 빛을 아예 통과시키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옆쪽 분자구조가 빛을 막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단점을 시야각이 좁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단점 때문에, 시장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껏 LCD가 살아남았냐고요? 이유가 있습니다. 굉장히 소비 전력이 적고, 대 화면을 만들기가 간단합니다. 게다가 소자마저 작아서 휴대 기기에도 적합합니다. 물론 이러한 장점들을 상회하는 새로운 디스플레이가 여전히 개발중이고, 상용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액정과 빛에 대해서 읽어주신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리학에서 빛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덕분에, 우리는 빛을 점점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양자역학이 있는데, 앞으로도 차차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이 휴대폰으로 이 글을 읽으셨든, 컴퓨터로 읽으셨든 거기에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LCD가 있습니다. 일단 그들의 노고에 감사해보는게 어떨까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는 어디가서 액정 깨졌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