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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민 Oct 26. 2018

요즘에 과학글을 쓰지 않는 이유

굳이 과학 공부를 해야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활동들을 한다. 그 모든 활동들이 항상 수치적인 보상이나 리턴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족, 정신승리 역시도 굉장히 중요한 동기가 된다. 예쁘고 멋진 옷을 입으며 화장하는 것은 남에게 잘보이기보다 자기만족때문이라는 슬로건을 본적이 있다. 내가 과학글을 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스스로 공부를 하고, 그냥 공부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어떻게든 재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굉장히 자족적인 이유로 글을 계속 써왔던 것 같다.


그런데 요 몇달간 글을 그냥 안 썼다. 글을 안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과학공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물론 전혀 과학관련된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양자역학 연습문제도 풀고, 일반역학 내용도 정리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해야지-하는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했던 활동이었을 뿐이다. 어느순간 진지하게 과학을 "업"으로 계속해도 될지에 대한 의문이 내 마음속에 들면서 부터는, 그저 그냥 시간 떼우기 위해서 물리를 읽었을 뿐이지 다양한 과학 내용을 찾아보거나 하지를 않았다.


과학 공부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재미는 있고 시간을 떼우기에도 좋지만, 그것을 전공으로써, 업으로써 계속 지고갈만큼의 확신이 없다. 그러다보니까 전반적인 의욕이 떨어진 상태였다.브런치에 쓰는 글의 내용이나 주제를 선정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가벼운 작업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최소한 -전공자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글이라면 나는 어느정도 세부 전공지식을 다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물리학같은 경우에는 대중들의 인식과 실제전공의 연구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았고 그 내용을 다루려고 했다. 그러나 의욕이 떨어진 이후로부터는 세부적인 과학 지식을 찾아보면 재미보다는 피곤함이 더해졌던 것 같다.


물론 취미로라도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충분히 널리고 널렸다. 대신 글 자체가 내 생각에 별 재미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굳이 기를 써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죽어라 문제를 풀려고하지 않는다면 물리는 꿀잼이다. 아니 그렇다면 물리를 서브로, 취미로 하지 말아야할 이유 역시 없는 것 아닌가? 특히 내게 이런 마음을 부채질한 것은 한 사건의 영향 때문이다. 나는 물리학 문제를 물어보고 풀기 위해서 오픈카톡방에 들어갔었는데 거기서 고체이론을 전공한 물리학 박사 분을 만나게 되었다. 고체 이론은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여러가지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은 박사학위를 받고 더는 물리를 하지 않고 있었으며, 물리를 굳이 업으로 삼으며 공부할 이유는 없다고 조언해주셨다. 물리를 업으로 삼아서 나쁠 건 없다고도 덧붙이셨지만.


물리학 전공을 택한 것은 분명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평생 한번은 꼭 배우고 싶었으니까. 게다가 학부 내용을 실제로 배우고나니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내용이 많았다. 내게 좋은 경험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라는 것도 자각하고 있다. 대학원 인턴을 하면서 이미 느끼지 않았던가. 수년간에 걸쳐 물리학을 연구하고, 연구해서 학위를 받은 뒤에도 계속 그것을 공부하며 산다는 건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마음에 더해서 모종의 각오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집에 돈이 많고 물리를 개잘하는데다가 걱정이 적다면 예외일수도?)


뭐 우리나라의 과학계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만큼 풍토가 좋지 않다는 것도 한 몫할 수 있다. 지도교수-대학원생의 관계, 불안정한 수입구조, 학위를 볼모로 한 여러가지 좋지 않은 문화들....하지만 그런걸 전부 뒤로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진짜 물리를 계속 연구할 만한 적성이나 자질 혹은 흥미가 있는지를 모르겠다. 다른 훨씬 적성있는 것을 뒤로 제껴두고 할만큼 물리를 좋아하는가? 그것도 모르겠다. 다른 훨씬 적성있는 것은 있는가? 그것도 사실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부딪혀봐야 알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바쁘고 조급하게 과학을 탐닉해오다가, 한발짝 즈음 떨어져서 스스로를 조망하다보니까 여유가 생긴다. 이 여유를 바탕으로 생각해보건대, 아직 나는 많은 것들을 결론내리지 못한 상태다. 물리를 계속 할만큼 좋아하는가, 아니면 다른 잘하는 걸 찾아보고 싶은가? 공부를 확실히 더 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그냥 일단 직장을 구해볼 것인지? 어차피 인생은 항상 미결정의 상태다. 고민해봐야 끝없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냥 닥치고 하나씩 해보는 게 낫지않을까? 그리고 나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람은 성장하는게 아닐지...


뭐 일단 결국 과학공부를 조금씩이라도 해보려고는 하겠지만 이전처럼 의욕적으로 과학 관련 글을 쓸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여러가지 다른 글도 좀 써보고..다른 공부도 좀 해보고...그리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봐야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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