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삼스레 왜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일까?

반항과 저항, 청춘 키워드로 본 음악과 삶

by 김종민

밴드 퀸과 그 보컬이었던 프레디 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열풍입니다.

1970년대에 발매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은 퀸이지만, 갑자기 2018년에 그것도 한국에서, 영국과는 지구 정반대의 이 반도에서 또다시 주목을 받을 줄 예측이나 했을까요? 사실 그만큼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이 많기에, 어떻게 보면 밴드 퀸은 불멸의 존재로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불멸의 곡을 남기고 불꽃처럼 산화한, 대체 불가능한 보컬 프레디의 존재도 마찬가지로요.


12_06_54__5afe434e1f297[H800-].PNG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그렇지만 그들의 곡이 어마무시하게 명곡인 것과는 별개로, 저는 밴드 퀸이 주목받는데에는 사회 경제적 상황을 비롯한 여러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세대를 뛰어넘어서 그들의 노래는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를 뒤집어보면, 세대 간의 관점 차이로 항상 갈등을 낳고 있는 청년과 기성 세대들마저도, 퀸의 노래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2018년 한국에서 지금 퀸이 떠오르는 데에는, 세대 간의 공통점이라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느 집안이 그렇듯...

아들인 저와 아버지의 대화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뜸해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원래 어른이 되면 아이 시절을 망각하고, 아이일 때는 어른의 사정을 알 턱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특히 저는 아버지에게 참 많이도 반항했었습니다. 호랑이도 때려잡는다는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듣는 노래도 상당히 저항적인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힙합에 그 자리를 내준 느낌이지만, 많은 분들은 저항의 상징으로 락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락알못이긴 하지만, 영국 락밴드들의 음악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퀸, 비틀즈, 레드 제플린, 오아시스 등등... 이들은 한창 중2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만들기엔 더없이 충분하지 않은가요.


평상시처럼 아버지께서 집에 오시든지 말든지 방에 틀어박혀 이어폰을 꽂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허세좀 부린다고 CD플레이어로 노래를 들었는데, CD 빈 케이스에 '퀸'의 이름을 아버지께셔 보셨던 듯 합니다. 아버지께서 추억에 잠기신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도 퀸의 노래를 많이 듣곤 하셨다고요. 그때는 한창 중학생 때 LP판에서 테이프로 바뀌던 시절, 그 자유롭고 강렬한 노래들이 어찌 그리 멋있었는지 싶더랍니다. 그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한창 방황하고, 반항하시다가 중학교 출석일조차 채우지 못할 뻔 하셨다니!


누가 락의 순수 혈통이냐는 논쟁은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비틀즈, 롤링스톤즈, 퀸 이후 계속 이어지는 락의 정신, 대중 음악을 유행시킨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반문화의 성격을 지닙니다. 비틀즈를 떠올려봐도 그렇습니다. 주류 문화에 저항하고, 권위주의의 거대 구조와 그 억압에 맞서 싸웠던 68혁명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비록 역사의 산 증인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서도요. 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음악과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모인 청년들. 과거 공연 영상만 보아도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 젊은 영혼이 느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동을 줍니다. 그 어떤 억압과 편견도 그들을 막지 못하는 진정한 순수랄까요.


1504597200-48.jpg 반문화로서의 히피와 비틀즈


어떻게 보면 아버지 세대야말로 격동의 시대에 저항을 품에 안고 살았을 것입니다.

60년대에 태어나, 유신 헌법을 토대로 교육받았을 것이며, 80년대에 정치적, 경제적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렸던 세대니까요. 비싼 LP판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카세트 테이프 하나 겨우 구해서 팝송을 듣던 그들의 학창시절. 그 때의 아버지께서도 '얌전히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그 말이 듣기 많이 싫으셨을까요? 시위에 맞서고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바뀌어야할 권위가 있다고 믿으셨던 걸까요?


00502902_20171013.JPG 자유에 목말라 자유를 노래했던 세대(출처: 한겨레신문)


아버지 세대 뿐만이 아닙니다. 90년대에 성인이 되신 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민주화라는 거대한 목적이 달성된 뒤에도, 끓어오르는 젊은 청년들은 그들만의 유행을 만들어갔습니다. 기존의 시선들에 저항해가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여 가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랬듯이 <교실 이데아>를 부르짖으면서요. 어느 세대랄 것 없이, 청년기의 문화는 반문화로서 언제나 주류문화를 향해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랬던 그들이...

어느새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고, 먹고 살기 위해 꿈을 접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생긴 나, 자녀들을 위해서 수모도 참고, 또 타협도 하셨을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었고, 쉴새없이 움직이는 세상은 또다른 청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퀸도 마찬가지입니다. 혈혈단신으로 모인 청년들이, 현역으로 공연하고 불멸의 명곡을 만들며 차트를 휩쓸었지만, 이제는 전설로, 재연으로 남은 것처럼요. 그 시기는 지나가고 그들의 이야기만이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과 이야기, 그 내러티브는 여전히 오늘날 청년들에게도 동일한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뜨거운 사랑에 충실한 순간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중심인 '나'를 표현하기 위해 가로막는 것들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패기와 함께요. 비단 청년들 뿐만이 아닙니다. 퀸의 이야기는 어느새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피와 주먹만 가지고 세상에 맞서던 한 때를, 시간이 지나며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영상속에서 살아 숨쉬는 젊음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청춘에 대한 서로 다른 감상, 그것들이 퀸의 음악 속에 녹아있습니다. 어디 퀸 뿐만이겠습니까. 저마다 자신의 청춘이 있지 않나요. HOT, 젝스키스도 마찬가지였겠죠? 무한도전 토토가가 신드롬이었던 이유는, 퀸이 새삼스레 다시 주목받는 이유와 일맥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freddie.jpg 영상에서 여전히 살아숨쉬는 젊음과 열정


누구보다 뜨거운 청춘이었던 어른들이,

어느새 타도해야할 적폐가 되고, 청산해야할 꼰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권위를 부수기 위해 싸웠던 그들이, 어느새 또다른 권위를 형성했습니다. 시대는 또다시 흘러 또다른 이슈가 등장합니다. 페미니즘, 군대, 스펙, 취직, 비정규직, 금수저, 헬조선....수많은 담론들은 반문화로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담론 사이를 청년들과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마치 프레디 그리고 퀸의 삶과 같지 않습니까. 순간순간에 충실했던,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참으로 충실한 삶. 청년들은 그것을 보고 공감하고, 보다 나이 드신 분들은 그것을 보고 지난 세월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 바로 접점이 있습니다.



2015032511332015354-540x462.jpg 과거의 청춘은 또다시 오늘이 된다


누구에게나 청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청춘은 결국 지나갑니다. 영화 <비긴 어게인> OST로 유명한 <Lost stars>의 가사에는 '청춘은 젊은 사람에게 주어지기에는 낭비이다'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까운 줄 모르고 그저 바보처럼, 그렇지만 무대뽀로 날려버리기에 청춘이 청춘인 것 아닐까요. 그 시기가 지나간 뒤에야 아까움을 느끼고, 또 복잡미묘한 후회도 하고. 그러면서도 출근길에 올라 차 막히는 것에 한숨 쉬고. 자녀들 학원비 걱정하고. '그 자녀들'은 또 '학원과 공부'보다는 친구와 함께 또 무대뽀로 부딪히며 살고. 그 모든 이야기가 바로 '청년, 젊음'이라는 키워드에 담겨있습니다. 그것이 새삼스레 <보헤미안 랩소디>로 퀸 열풍이 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요즘에 과학글을 쓰지 않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