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정의는 살아남는다
'야 너 참 이기적이다'
통상 이기적이라는 말은 좋은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듯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지적했다면, 기분이 나쁘거나 내가 뭘 잘못했나 돌아보게 됩니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조언도 듣습니다. 이타적으로 행동해 주는 것은 "호구 당하가 쉽다"면서요. 이 세상에 믿을 것은 나 하나 뿐이니, 겉으로는 협력하더라도 언제든 경계하고 최대한 내 몫을 챙기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는 이기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Homo Economicus)는 통상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기적(Selfish)'이라는 뜻과 차이가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의 뜻은 : '합리적인 기대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 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내 몫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놈이든,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이든, 남들 인생 신경쓰기보다 자기 할 일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기 좋은 세상으로 보입니다. 남들에게 호의적이고, 협력해주는 사람은 호구 당하기 쉬울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사회에서 협력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합니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아 온 것일까요? 남들에게 호의적으로 협력하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유전자를 가진 조상들은, 호구 당해서 금방 손해를 봤을 것 같은데요. 이런 유전자를 가진 조상들은 금방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생물학, 경제학에서는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추론합니다.
게임이론은 LOL, 오버워치같은 게임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ㅋㅋ) 소수의 당사자끼리 이익과 손해를 두고 다투는 게임을 말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치킨 게임, 죄수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치킨게임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게임인데요. 두 운전자가 서로를 마주보는 방향으로 달립니다. 계속 달리다 보면 부딪힐 수 도 있습니다. 부딪힐 것 같아서 먼저 핸들을 꺾은 쪽은 '겁쟁이(치킨)'가 되고 계속 악셀을 밟은 사람은 상남자(?)가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상남자가 되려고 한다면 둘 다 부딪혀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즉, 치킨게임의 당사자들은 이 게임을 계속하게 되면 큰 손해를 보며, 손해를 못 견디는 상대를 패배시키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2000년~2010년대에 반도체 메모리 제조업체들간의 치킨게임이 있었습니다. 반도체 회사는 초기설비 투자비용과 기술진입장벽이 높아서 일단 독과점하게 되면 이득을 많이 남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회사는 메모리의 가격을 원가 이하로 낮춰 계속 업계 전체가 손해를 보면서도, 먼저 경쟁업체가 파산하도록 치킨게임 전략을 택했습니다. 메모리 치킨게임 결과 국내기업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살아남았고, 경쟁기업인 독일의 퀴몬다와 일본의 엘피다는 부도가 납니다.
죄수의 딜레마 역시도 굉장히 유명한데요. 두 공범 죄수가 취조 중에 있습니다. 죄수들은 아래와 같은 상황에 처합니다. 양 쪽다 묵비권을 행사해 침묵하기만 하면, 둘 다 형량은 1년이 됩니다. 그런데, 한 명이 배신해서 자백을 한다면, 자백한 쪽은 풀려나고 침묵한 쪽만 10년의 형량을 받습니다. 양쪽다 배신해서 자백으로 이득을 보려고 하면, 둘 다 죄를 자백한 꼴이 되므로 5년의 형량을 받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취해도 배신-자백이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이 됩니다. 상대방이 침묵했을 때, 같이 침묵하면 1년이지만 배신해버리면 나는 석방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배신했을 때, 같이 배신하면 5년이지만 내가 침묵하면 10년이라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타인이 어떻게 선택할지 경우의 수를 따져서, 나의 선택을 결정하고, 모든 참가자의 선택이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내쉬 균형이라고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죄수가 반드시 배신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게 되고, 둘 다 배신을 하게 됨으로써 내쉬 균형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두 죄수 모두다 합리적 판단을 하게 된다면 5년 형에 처하게 되는데요. 둘 다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배신을 했는데, 함께 협력했을 때보다 오히려 손해가 나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죄수의 딜레마 문제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은 두 죄수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면 분명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소통을 했다고 하더라도 뒤통수를 때리게 된다면 별 수 없지만요.
이 죄수의 딜레마는 단발성(1회성) 게임이라는 점도 주목해볼만 합니다. 이 게임의 결과를 형량이 아니라 이득-손해로 치환하고, 이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한다면 어떨까요? 처음 게임에서 배신과 협력으로 손익이 갈리게 되면, 그 다음 게임에서 상대방의 선택을 추론하고 나의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이때는 상대방의 배신과 협력에 대응해서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내도록 하는 전략이 매우 중요하게 됩니다. 그렇담, 이러한 게임에서는 어떠한 전략이 우월전략이 될까요?
죄수의 딜레마와 게임이론이 초창기에 알려지기 시작하고서는 큰 파장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애덤스미스의 자본주의는 '합리적으로 나의 이익을 추구하면, 사회 전체의 선이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적으로 안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임이론에서는 합리적 참가자가 어떤 전략을 선택하느냐까지도 중요하게 됩니다.
참가 전략에는 단순한 전략부터 복잡한 전략까지 다양한 전략이 존재하는데요. 무조건 이기적(배신)인 전략부터 시작해서, 네가 도우면 나도 돕는다는 전략, 두 번까지는 배신해도 봐준다는 전략, 무조건 협력하는 호구 전략(?), 기본적으로 배신하지만 가끔 협력하는 전략까지 많은 형태의 전략이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전략이 게임에 참가한다고 했을 때,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고승률 전략은 무엇일까요? 사실, 이 고승률 전략은 몇개 되지 않아, 결국 최종적으로 생존을 독식하게 됩니다.
다음 글은 이 전략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