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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Feb 05. 2021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 (윤혜준 저)

- 돌, 물, 피, 돈, 불, 발 꿈으로 풀어낸 독특한 시선의 인문 기행

유럽의 도시들은 이토록 친근하다. (유럽에 다녀온 적이 없다.)


많은 여행책 중에서도 유럽은 단연 압도적이다.


최근 본 BBC의 '노멀 피플'대사가 떠오른다. (마리앤이 갓 이탈리아에 도착한 중등학교 동창에게 구겐하임 미술관에 가보자고 말한다. 그때 마리앤의 남자 친구가 거들며 하는 대사)


<우리 굳이 베니스에 갈 필요 있을까? 사람 엄청 붐빌 거야. 이탈리아 사람들 말고. 사진만 찍어대는 아시아인들로 말이야.>


물론 political correctness로 보자면 적절치 않은 대사지만, 보통의 유럽 사람이 보는 아시아 여행자에 대한 이미지의 단면이란 생각에 납득은 갔다.


2019년 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1'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다소 비인기 종목인 인문분야에서 베스트셀러로 올랐다. 유럽 도시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는 늘 높다.(+유시민 작가님 네임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로마 콜로세움, 파리 노트르담, 밀라노 두오모, 체코 프라하성, 피렌체 성 베드로 대성당

이름만 들어도 이미지와 글로 수십 번은 다녀온 듯한 이곳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책 서두에 재밌는 키워드가 나온다. 돌, 물, 피, 돈, 불, 발, 꿈. 일곱 개의 키워드로 나누니 전에 본 곳이 새로워 보인다. 저자가 피렌체 대학교의 초빙교수로 있던 시절부터, 20여 년간 서양의 문학, 철학, 역사를 현지에서 느끼고 연구한 이력화려하게 발휘한다.


지난가을에 읽었던 '유럽 도시 기행1'은 *지정학적으로 여기는 어디고, 다음은 어느 길을 따라 무엇을 보러 갈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 역할>과 같다면,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는

*너는 어떤데 관심이 있어? 물에 대한 이야기 해줄까? 하며 말을 붙이는 듯 친근하게 다가온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부터 로마의 트레비 분수까지, 물에 얽힌 장소들모자이크처럼 거칠게 이어진다. 매번 가는 단골집인데도 그때그때 재료에 맞게 내어줘서 늘 다른 메뉴를 먹는듯한 기분으로 유럽 도시들을 만나게 된다.


피렌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7개 코드에 두루두루 나오는 작가의 최애 장소는 피렌체!) 단테의 '신곡' 단막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마치 희곡의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단테가 망명하며 피렌체를 그리워하듯) 피렌체를 바라보게 된다. 이 책 저자인 윤혜준 교수님은 주변에 있는 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는 하루 쌓이는 동전의 양이 3,000유로(한화로 약 450만원)라고 한다. 로마에는 곳을 포함한 유명한 분수가 3곳이 있다. 로마에는 왜 분수가 많을까?


<분수를 재건하거나 새로 만드는 것은 교황들이 로마 서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었다. 1년의 반은 덥고 건조한 이 도시에서, 멋지게 조각한 분수대에서 공짜로 맑은 물을 받아 마신다! 교황님 감사! p89>


로마는 먼 곳에서 물을 끌어와 도시에서 쓸 수 있게 수로를 정비했지만, 실제로 모든 도시민 모두가 이 수로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귀족과 부유층만이 깨끗한 물을 편리하게 사용했고, 그 외의 서민들은 그 시대의 다세대주택(인술라 유적)에 거주하며 3층부터는 수도시설 자체가 없어서 인근의 분수에서 물을 떠 와서 사용해야 했다. 빈부는 사회를 구성하는 양과 음처럼 존재했다.


부자들은 고단한 삶의 도시민들을 위한 무료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오늘날 3S정책 같은 격; Sports, Sex, Screen) 그리스와 로마에 지어진 거대 야외극장들이 바로 그것이다.

아테네의 야외공연장과 로마의 콜로세움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바로 '피'였다

비극이란 장르의 시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인데, 실제 아테네 야외공연장에서 즐겨 상영되던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아테네는 연극무대에서도 그렇지만 무대 밖에서도 직접 사람의 피를 보는 것을 꺼렸다. 무대 밖에서 처참히 벌어진 일들을 배우들이 말로 관객에게 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아테네를 무력으로 누르고 지중해 지역 문명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한 로마는 달랐다. 아테네 극장을 모방한 건물들을 짓고, 실제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피를 흘렸다. 그래야 관객이 열광했다. 잔인함을 따져보자면 로마는 지옥이었다. (죄수, 동물과 사람, 검투사간의 대결 실제 경연이 이루어졌다, 입장은 무료, 도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오락거리였다.)


'피'라는 키워드는 인간이 가진 야만성에 대한 축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만성의 극대화는 바로 지배 세력이 다른 나라 간 전쟁이었다.


헝가리 부다 페스트는 두 나라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연원을 따져보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제국 체제가 그 시초였다. 양차 대전을 겪으며, 이념 간의 전쟁에 휩싸인 헝가리에서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결과 그로인한 시민의 피로 얼룩진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념 간의 대결 이전에는 종교전쟁이 그 자리를 채웠다. 전, 유럽 대륙을 휩쓴 가톨릭교와 루터와 칼뱅을 주축으로 등장한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기존의 가톨릭교에서 탈피한 개혁교회)의 대립으로 일어난 수 차례의 종교전쟁들을 빼고선 유럽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유럽 도시 기행1'에서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이번 책을 읽으며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많다.(!) 특히 가톨릭교가 유럽의 국교가 되는 상황에서 왜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했는가에 대해서는 길지 않은 내용인데도, 그 정황이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훨씬 이해를 도왔다. 교황의 세속화, 대성당의 변신을 위한 재건축에 착공하며 자금이 필요한 교황세력은(성 베드로 성당을 허물고 새로운 건축물을 짓기 시작하며 자금이 필요했다) 대륙 전체를 향한 면죄부 영업을 펼쳤다.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독일을 시작으로 나타났다.


<교황에게 반기를 든 루터,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세력에 의해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로마 교황청은 종교적 권위에 큰 타격을 입는다. 결과적으로 브라만테의 옛 성 베드로 대성당 파괴는 서유럽 기독교 공동체의 붕괴를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p180-181>


<'개혁교회'를 내세워 스페인 왕실(가톨릭의 수호자로 행세하는 합스부르크 왕실)을 물리친 네덜란드 공화국의 대표도시 암스테르담. 이곳의 상인들이 서명한 이 문건에서는 일반적으로 있을 법한 '이 모든 행운이 하느님의 은총이다'같은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p193>


저자가 전하는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들도 7개 키워드에 고루 들어가 있는데,


역시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 유럽이다. 미술작품은 대부분 성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책 속에서 거론되는 작품을 보고 나니 예수에 탄생과 그가 활동한 시대의 이야기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저자는 '피'라는 주제로 세 십자상과 산타크로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산스피리토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엮었다.

<전형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한 도나텔로의 예수,

합리적인 신체 비율을 갖춘 브루넬레스키의 예수,

온화한 얼굴의 미켈란젤로의 예수의 영성이 한자리에 p150>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토록 피렌체를 찾고자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십자가상을 직접 보면, 그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글을 보니 마음이 들썩였다. (책에 세 십자가상의 모습이 모두 실려있다. 친절한 책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기 힘든 작품이 바로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인데, 마지막 키워드 '꿈'에서 등장하는 그림이다. 아담과 하나님의 검지가 맞닿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그림은 사실 천장화의 (매우) 일부다.


<천장 프레스코의 반을 1511년, 나머지 반을 1512년에 공개할 때 미켈란젤로는 아직 30대의 젊은 화가였다. 그에게 이 일을 시킨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처음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를 그려보라고 제안했다. 화가의 야심이 만족할 수 없는 주문이었다. "싫습니다. 역사의 시작,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그리겠습니다." p309>


젊은 작가의 패기는 대단했고, 실제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모든 이가 감탄을 내뱉게 만드는 걸작이다.

그러나 이 시절 역시 종교의 충돌(교황과 황제의 대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527년, 로마는 교황들이 이 도시를 다스린 이후로 가장 끔찍하고 가장 참혹한 고초를 당한다. 그해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진 '로마 약탈'. 숱한 겁탈과 살육, 방화와 파괴의 연속이었다. 교황이 신성로마 제국 황제 카를로스 5세에게 대든 대가는 혹독했다. 황제의 독일인 용병들은 로마로 진격했다. 이미 루터와 개신교를 받아들인 용병들은 루터를 분노하게 한 르네상스 도시 로마를 마음 놓고 짓밟았다. p310>


다행히 시스티나 천장화는 파괴되지 않았다. 20여 년이 지나 60이 된 미켈란젤로는 현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1535년부터 <최후의 심판>을 그리기 시작했다. 밝고 아름답고 자신만만한 그림을 그리던 화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렸다. 균형은 사라지고, 구원받은 영혼들, 저주받은 영혼은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영생과 영벌이 갈리는 치명적인 순간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두 그림을 연이어 보면, 역사적 경험과 전쟁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바를 목도하는 듯했다.


유럽 대륙에서 종교가 만들어낸 역사란, 실로 대단했다.


다음번에 읽어야 할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신, 만들어진 위험> (김영사, 2021)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유럽 도시 기행1' 에서 유시민 작가는 말했다. 각각의 도시들은 모든 이야기를 품고 있고, 여행자들은 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서 건축물과 인물, 사건을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고.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콘텍스트(context)로 읽어내는 것이다. 콘텍스트란 문맥, 맥락이다. 이를 여행에 적용해 말해본다면, 도시 안에 존재하는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로 존재할 뿐이다.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로 파악해야 한다.


도시는 친절한 가이드가 아니다, 그저 형성된 그대로를 보여주기만 할 뿐, 여행자인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는 매우 친절한 길라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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