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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Mar 07. 2021

우한일기 (팡팡 저)

-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Whitstleblower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 내부 고발자)의 호루라기를 빼앗은 건 누구일까. 


우한 중신병원에서 12월 치료되지 않는 폐렴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전염병 초기의 징후를 알아차린 의사들은 이를 당국에 보고 했지만, 1-3차까지 나온 조사위원회에 의해서 묵살되었다.
그리고 이를 최초 보고한 의사 8명은 괴담 유언비어 유포죄로 징계를 당했다. (이후, 이 중 3명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유명을 달리했다.)




재난 위기 대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2가지에 대해서 작가는 반복적으로 말한다.
공고한 관료주의 체계 그리고 관영매체를 주축으로 한 가짜뉴스들.

우한시는 1월 22일부로 봉쇄된다. 물자 이동과 교통이 멈추고, 통행 금지령에 의해 주민들은 통행증 없이는 밖으로 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마스크가 부족했으며, 겨우 구한 마스크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아졌고,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은 부당한줄 알면서도 그 값을 치뤘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혹은 인민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든 이들은 대규모 연회와 파티를 진행했다. 이로인해 더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수많은 인민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중국 각 지역 공무원들의 평균 수준,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고질병까지 들춰냈다. 이 병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악랄하고 끈질긴 병이다. 게다가 언제쯤 치료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고치려 노력하는 사람도, 치료 받으려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p48>

우리 보다 먼저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던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 전반에 만연한 관료주의의 문제점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었다.

우리 역시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전도를 일삼았던 종교 집단의 그늘과, 음지에서 활동하던 다단계 조직 등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의 존재를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우한에 왔던 전문가들에 관한 글이 급속도로 퍼졌다. 맞다. 그 고고하고 얕잡아 보는 듯한 태도의 '전문가들' 말이다. 그들이 성급하게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 그들은 이미 천벌을 받을 만큼 큰 죄를 범했다. 양심이 남아 있다면,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인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들도 필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당연히 후베이성의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나라를 지키고 민생을 안정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나라도 어지럽고 민생도 불안하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p49>

첫번째로 Whitstleblower의 소리를 막은 사람이다. 우한을 방문했던 유관기관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집단의 판단력을 과신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한 작가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완승'이라는 두 글자를 언급한 것을 보았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한의 꼴을 보라! 나라 전체의 꼴이 말이 아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화살에 놀란 새처럼 위축되었고, 수많은 목숨들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병원에 누워 있고, 가정 경제가 파탄나버린 집은 셀 수도 없다. 무엇이 '승리'이고, 무엇이 완벽하다는 말인가? 같은 작가로서 정말 욕하기도 부끄럽다. 당신은 아무런 고민도 없이 말을 뱉는 것인가? 아니다. 윗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말 고민해 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p53>

두번째는 작가와 기자 집단이다. 작가는 기록으로 사건을 역사 속에 남기고, 기자는 탐사보도를 통해 제기된 의혹을 파헤치고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공산당 정권에 아부하는 작가, 의혹을 축소하며 내부고발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후베이성의 관영매체를 향해 작가는 끊임없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내가 이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이유는, 오늘 아침 왕광파 선생의 인터뷰를 보았기 때문이다. 왕선생은 두번째로 우한에 온 전문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라는 말을 한 후, 감염되었다. 나는 그가 어느 정도는 스스로 뉘우치고 후회하고 또 반성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설령 그 잘못된 결론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구성원 전체의 결정이었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우한 사람들에게 경솔한 결론을 내렸다. 후베이성 우한의 공무원들이 얼마나 관료주의적이고 무능한지,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정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와 관계없이 왕선생이 의사로서 발표할 때 조금 더 신중할 수는 없었을까? 꼭 그렇게 단정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또한 왕선생은 1월 16일에 바로 감염되었으니, 그때 이미 바이러스가 '사람 간 전파된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이전에 내렸던 결론을 제때 수정했다는 이야기를 결코 들은 적이 없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애썼다는 소리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p59-60>

세번째는 조직에 소속한 개인이다. Whitstleblower가 된 사람은 징계를 당하거나, 자리를 보존하지 못했다는 선례들을 볼 때, 책임감 있고 살아있는 양심을 가진 개인이 되기를 주저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감염 초기 단계부터 이후 20여일이 지나도록 민, 관이 전염병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한다.

작가 팡팡은 76일간의 도시 봉쇄를 경험하며, 실제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한은 밖에 나가보면 사람이 적고 등만 밝다는 것 외에 사실 모든게 아직은 질서정연하다. 생필품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병난 사람만 없으면 모든 집이 다 평온하다. 모르는 사람이 상상하는 그런 무간지옥은 아니다. 평온하고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도시다. 다만 일단 집에서 환자가 나오면 그때부터 혼란이 펼쳐진다. 전염병 아닌가! p62-63>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균형감있게 다루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필력이 대단하다. 그녀가 말하는 우한여성의 특징이 모두 드러나는 글을 읽다보면 같이 눈물을 훔치게 되고, 다음 장에선 다시 주먹을 불끈쥐게 된다.

<오후에 한 젊은 기자와 연락을 나누었다. 그는 심한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오직 숫자(확진자는 얼마가 나왔고 사망자는 또 몇 명인지)뿐인데, 숫자 뒤에는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p63-64>

나 역시 이부분에서 같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코로나19가 1년 넘게 한반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핸드폰에 안전문자가 오면, 또 몇 명 확진자가 늘었나보다 이정도로 넘기고 마는 무심함에 때로는 나조차도 내가 서늘히 느껴졌다.

재난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연대는 계속되었다.


<수만 명의 청년들이 전염병의 최전선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순전히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그들은 위챗 단체대화방을 통해 모였는데,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두 있다. 정말 대단하다! 예전에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간다고 걱정했다. 지금 이렇게 씩씩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 나이든 사람들이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다. 사실 어떤 시대든, 그 시대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p65>

젊은이들은 물품을 조달했고, 공동구매를 통해서 각 가정마다 식재료들을 보급했으며,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스마트기기 사용법, 이외의도 생활을 유지해나가기 위한 도움의 손길이 되어주었다.

작가는 중반부에 매우 중요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번 전염병으로 모두가 정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인도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느냐 하는 것이다. 전염병이 지나가고 나면, 아마 인도주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이 역시 시급한 문제다. 인도주의라는 것은 본래 기본 상식 교육에 속한다. 영화에서도 의료진들이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치료할 때는 민족이나 지역이 다르다고 배제하지 않고, 적군과 아군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사람이면 모두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기본적인 인도주의 정신이다. 지금 코로나19 사태가 바로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인도적 수준은 정말 입에 담기 부끄럽다! p132-133>

우리 역시 선진국이니, OECD국가 순위를 들먹이며 나라의 발전과 함께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고 설파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내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보였던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돌아 본다면 부끄러워 할 일이다.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 외국의 교민들을 이송하는 데에 반대를 하거나, 외국발 비행기는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차별의 언어가 국론의 반을 지배했었다.

전염병은 나라를, 인종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침투한다. 인도주의 정신이 필요함은 그때문이다.


<어쨌든 봉쇄는 장기적인 계획이 될 수 없다. 나라도, 인민도 버틸 수 없다. p185>
닫고, 분별하고, 감추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배웠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한 나라의 문명 수준을 말할 때는 국가에 얼마나 높은 건물이 있고 얼마나 빠른 차를 만들어내며 국가의 무기가 얼마나 강하고 군대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국가의 과학기술은 얼마나 발달했고 예술은 얼마나 수준 높은지를 보는게 아니다. 국가의 공식 행사가 얼마나 화려하고 불꽃놀이가 얼마나 화려한지는 더더욱 보지 않으며, 심지어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호방하게 외국으로 나가 전 세계를 휩쓰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다. 바로 약자들에 대한 국가의 태도다. p208-209>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주제의식을 담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경험하며, 지구촌의 경찰국임 자처하는 미국이 자신의 나라국민조차 지켜내지 못함을 두 눈으로 보았다. 우리가 선망하는 유럽국가들의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것 역시 보았다.

약자들의 대한 국가의 안전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의 논리, 국가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맡으며 복지재정을 삭감하고, 공공의료를 민간으로 떠넘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체득했다. 

<나도 몇 가지 이야기해야겠다. 중신병원의 의사 아이펀은 스스로를 '호루라기를 건넨 사람'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이 호루라기는 아이펀의 손에서 리원량의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리원량이 전해 받은 호루라기는 누구에게 가야 할까? 비록 리원량이 처벌은 받았지만, 경찰은 그의 '호루라기'를 압수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그 호루라기 소리를 더 널리 퍼뜨려 주었다.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2019년 12월 31일에 이미 세상에 알려졌다. 적어도 나는 이날 이 소식을 알았다. 그리고 다음날 경찰이 '네티즌 8명'을 계도 조치했다는 소식이 신문뿐만 아니라 CCTV에 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이 소식도 결코 '호루라기'를 빼앗겼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호루라기를 이어받아 계속 불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즉, 다음 내부고발자는 누구일까? p351>

최고 내부고발자였던, 리원량 의사는 유명을 달리했다. 우한과 후베이성 시민들과 함께 나도 그의 명복을 빌고 싶다. 최초의 Whitstleblower였던 리원량을.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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