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가, 이현석 소설집
<그들을 정원에 남겨 두었다>는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내’가 담당하는 환자의 보호자인 ‘유나’와의 이야기이다. 나는 간간이 소설을 쓰는 의사다. 나의 이야기에는 두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건 유나 씨의 아버지인 ‘이시진’씨 사연 때문이다. <판타스틱 우먼>이라는 영화를 보면, 생활 동반자이지만, 동성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관계로 실제 동거인이 쓰러진 응급상황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연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연인의 가족들로부터 치욕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이시진’씨 역시 동성의 연인과의 삶을 위해 가족을 떠났고, 쓰러져 병원에 와서야 오래전 돌아선 가족, 자신의 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딸인 ‘유나’는 어떻게 아빠를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담당의인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의사인 나는 그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게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가족의 구성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체 인구는 줄고 있지만, 1인 가구 비혼 가구가 늘어나며, 그에 따른 생활 동반자법의 필요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그 속에 성소수자, 연명치료 중단과 같은 민감한 이야기들을 한 데 묶어내는 능력이 바로 이현석 작가님이 가진 내공이 아닐까.
<다른 세계에서도>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 ‘나’와 인턴의(doctor)인 여동생의 삶을 대조하며 임신 중지에 대한 처벌법 폐지에 대한 내용을 다른 이 이야기는 정말 극적으로 다가왔다. 2019년 가을에 쓰임 직한 이 이야기는 마치 그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생생한 현실감을 담고 있다.
<라이파이>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조금 안타깝게도 루이소체 치매라는 병을 얻게 된 아버지에게만 보이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라이파이를 동경했던 아버지는 야간 통행금지를 어긴 행인이 무자비하게 경찰에게 취조를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때 아무런 행동도(그 경찰들이 부당했음을 알리는)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가 무의식 중에 남아 노인이 된 그를 자극한다. 아들 영우와 충동적으로 떠난 몽골 여행에서 그는 안하무인이며 늘그막히 발휘되는 영웅심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진땀을 빼지만, 아버지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 응어리를 처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컨프론테이션> 법학자인 아버지와 유년시절을 프랑스에서 지낸 '내'가 이후 법조인이 되어, 지적재산권을 공부하는 변호사 모임에서 김한서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단순한 사랑이야기로만 남을 수 없는 이유는, 두 사람의 사랑에는 법조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가 예술과 미학이라는 지점이 이야기를 특별한 곳으로 이끌고 간다. 둘의 연애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에 대한 감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둘의 연애의 시작과 끝에는 이 작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빛이 없어> 희곤이 J시 M군(시 군 구 주소를 명칭)에 몇 달간 수업을 위해 머물며 우재의 집에 세를 들어 살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우재는 하는 일없이 옥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집 주인이다. 희곤은 바닷가에 위치한 주택의 로망이 있었기에, 이 집에 부합하는 우재의 집을 부동산으로부터 소개받아 계약하게 된다. 그 지역은 드넓은 바다 한켠에 화력발전소 공업탑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공업단지이며, 우재 역시 그곳에서 일을 했었다. 우연한 계기로 부동산 소장 준모와 우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며 화력발전소 내 40M가 넘는 거대한 보일러, 그 속에서 부품처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거기에 얽히 우재가 겪은 비극적인 사건까지. 우리가 뉴스에서 이라고만 접하는 그곳의 모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두방망이질쳤다. 우리는 현실을 너무나 모르고, 소설가의 역할은 저 한 줄 뒤에 가린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를 따라가면> 은 간호사를 독일로 파견하던 시대상과 우리 역사 속 슬픈 사건인 5.18에 대한 이야기가 간호사인 ‘정혜’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그 시절 항쟁에서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던 병원까지 안전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시대상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참 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의학 자문을 맡게 된 ‘나’는 교도소 내 재소자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교도소 내 의무과에서 책임감을 다했는지에 대한 사실조사를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재소자들의 인권과 양형의 적법함, 한 사람의 죄를 누가 단죄하는 것이 옳은가. 복잡한 윤리성을 따져야 하는 사안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 작품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 퇴고한 작품이 첫 투고에 당선되어 오히려 당혹스러웠다는 작가님의 말이 덧 붙었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치열하게 고민하여 쓴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 *제목인 '참'의 뜻_ ex) 역참을 설치한 목적은 명령의 전달로가 공적 임무를 띤 여행자의 편의 제공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