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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Feb 21. 2021

다른 세계에서도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가, 이현석 소설집

2020년 11회 젊은 작가상에 오른 수상작들은 정말로 쟁쟁했다.

우선 대상을 받은 강화길 작가님의 <음복>은 현대의 유교문화를 대리하는 시어머니와 나, 남편과 할머니 사이를 서스펜스로 그려냈기에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던 작품이었다.


<음복>에 이어 나오는 세 번째 소설이 바로 이현석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이번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다른 세계에서도>는 나머지 5편의 수상작과는 그 결이 다르게 다가왔다. 2019년을 논쟁이 뜨거웠던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그 법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 임신, 그리고 산부인과 전공의인 ‘나(화자)’의 이야기가 헌법불합치가 결정되던 2019 봄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나 격렬히 때로는 인류애와 이기심이 충돌하며 서사가 펼쳐지기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이현석 작가님은 의료계에 계신 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디테일이 강한 작품이었다. 이번에 소설집 전체를 읽고 나니, 분명 의료계에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덧붙여 4번째 단편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에서는 일말의 소름을 느꼈다. 그건 마지막 장의 작가의 말을 읽으며 더욱 강한 감정으로 바뀌었는데, <부태복>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는 귀순한 북한 출신 의사인 ‘부태복’과 시립의료원의 내과 봉직의인 ‘내’가 함께 근무하며 겪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본문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이 이야기가 언제 쓰여진 것일까? 궁금해졌다. 코로나19는 이제는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2018년에 발표한 단편 작이었다. <부태복>의 마지막에는


“신종감염병 경고”


라는 문자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그 감염병의 검체를 가진 환자의 담당의인 ‘나’에게 도착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말 소름이었다. 마치 2년 후의 우리 사회를 예견이라도 한 듯 쓰인 소설을 마주하고선 한달음에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구분하여 말하자면, 본문에서 나오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유발되는 일반적 감기 중 상당 부분의 원인인 바이러스다. 인간 코로나바이러스에는 7가지 변종이 있는데 사스(SARS), 메르스(MERS)가 대표적이고, 전 세계 팬데믹을 일으킨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발현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작가님도 이 점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셨는지, 우연이면서도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 단편에 관련한 후일담을 <문학동네> 2020년 여름호에 수록한 산문 <이전의 세계>에 상세히 기록하셨다고 한다. (꼭 읽어보려고 메모를 해두었다)


각 단편들이 내포하고 있는 동시대의 윤리적인 문제들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2009)의 한 챕터를 끝낼때마다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질문처럼 고스란히 내게 남았다. 내가 이현석 작가님의 소설에서 받은 인상은 그러했다.


<그들을 정원에 남겨 두었다>는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내’가 담당하는 환자의 보호자인 ‘유나’와의 이야기이다. 나는 간간이 소설을 쓰는 의사다. 나의 이야기에는 두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건 유나 씨의 아버지인 ‘이시진’씨 사연 때문이다. <판타스틱 우먼>이라는 영화를 보면, 생활 동반자이지만, 동성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관계로 실제 동거인이 쓰러진 응급상황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연인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연인의 가족들로부터 치욕을 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이시진’씨 역시 동성의 연인과의 삶을 위해 가족을 떠났고, 쓰러져 병원에 와서야 오래전 돌아선 가족, 자신의 딸을 다시 만나게 된다. 딸인 ‘유나’는 어떻게 아빠를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담당의인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의사인 나는 그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게 맞는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가족의 구성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체 인구는 줄고 있지만, 1인 가구 비혼 가구가 늘어나며, 그에 따른 생활 동반자법의 필요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그 속에 성소수자, 연명치료 중단과 같은 민감한 이야기들을 한 데 묶어내는 능력이 바로 이현석 작가님이 가진 내공이 아닐까.


<다른 세계에서도>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 ‘나’와 인턴의(doctor)인 여동생의 삶을 대조하며 임신 중지에 대한 처벌법 폐지에 대한 내용을 다른 이 이야기는 정말 극적으로 다가왔다. 2019년 가을에 쓰임 직한 이 이야기는 마치 그때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듯한 생생한 현실감을 담고 있다.


<라이파이> 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조금 안타깝게도 루이소체 치매라는 병을 얻게 된 아버지에게만 보이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라이파이를 동경했던 아버지는 야간 통행금지를 어긴 행인이 무자비하게 경찰에게 취조를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때 아무런 행동도(그 경찰들이 부당했음을 알리는)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가 무의식 중에 남아 노인이 된 그를 자극한다. 아들 영우와 충동적으로 떠난 몽골 여행에서 그는 안하무인이며 늘그막히 발휘되는 영웅심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진땀을 빼지만, 아버지 마음속에 남아있던 그 응어리를 처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컨프론테이션> 법학자인 아버지와 유년시절을 프랑스에서 지낸 '내'가 이후 법조인이 되어, 지적재산권을 공부하는 변호사 모임에서 김한서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단순한 사랑이야기로만 남을 수 없는 이유는, 두 사람의 사랑에는 법조인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가 예술과 미학이라는 지점이 이야기를 특별한 곳으로 이끌고 간다. 둘의 연애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에 대한 감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둘의 연애의 시작과 끝에는 이 작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빛이 없어> 희곤이 J시 M군(시 군 구 주소를 명칭)에 몇 달간 수업을 위해 머물며 우재의 집에 세를 들어 살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우재는 하는 일없이 옥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집 주인이다. 희곤은 바닷가에 위치한 주택의 로망이 있었기에, 이 집에 부합하는 우재의 집을 부동산으로부터 소개받아 계약하게 된다. 그 지역은 드넓은 바다 한켠에 화력발전소 공업탑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공업단지이며, 우재 역시 그곳에서 일을 했었다. 우연한 계기로 부동산 소장 준모와 우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며 화력발전소 내 40M가 넘는 거대한 보일러, 그 속에서 부품처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거기에 얽히 우재가 겪은 비극적인 사건까지. 우리가 뉴스에서  이라고만 접하는 그곳의 모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두방망이질쳤다. 우리는 현실을 너무나 모르고, 소설가의 역할은 저 한 줄 뒤에 가린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를 따라가면> 은 간호사를 독일로 파견하던 시대상과 우리 역사 속 슬픈 사건인 5.18에 대한 이야기가 간호사인 ‘정혜’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그 시절 항쟁에서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던 병원까지 안전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시대상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참 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의학 자문을 맡게 된 ‘나’는 교도소 내 재소자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교도소 내 의무과에서 책임감을 다했는지에 대한 사실조사를 맡았는데 그 과정에서 재소자들의 인권과 양형의 적법함, 한 사람의 죄를 누가 단죄하는 것이 옳은가. 복잡한 윤리성을 따져야 하는 사안들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 작품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 퇴고한 작품이 첫 투고에 당선되어 오히려 당혹스러웠다는 작가님의 말이 덧 붙었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치열하게 고민하여 쓴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 *제목인 '참'의 뜻_ ex) 역참을 설치한 목적은 명령의 전달로가 공적 임무를 띤 여행자의 편의 제공에 있다.)



나는 2020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서 이현석 작가님을 처음 만났지만, 작가님은 수상 이전, 2017년부터 꾸준히 작품을 써오신 부지런한 필력의, (발문을 맡은 소설가님의 이야기를 빌려)

< 다양한 인물들만큼이나 넓은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집을 (...중략)

p300 발문_ 우리의 가능성, 한정현>

존경하고, 앞으로도 서가에서 이현석 작가님의 이름을 자주 찾아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Chris Barbalis on Unsplash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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