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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Feb 15. 2021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7인의 작가가 돌아가며 매일 글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

메일 구독 서비스를 만든 문학판의 잔다르크 이슬아 작가.


그녀가 독자에게 선보인 독창적인 서비스는 이후 입소문을 타고, 널리 널리 전해지며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단행본이 발간되고, '깨끗한 존경', '부지런한 사랑' 등 메일링 서비스를 뛰 넘는 글들이 묶어져 연이어 발간되기도 했다.


많은 글을 쓰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이슬아 작가에게 작은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인문, 철학과 관련된 글을 쓰는 '홍님'의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그의 글을 메일링 서비스로 받아 보았다. 


매일 자정 보내주는 (글에도 신선함이 있다면, 신선도 100%인) 글이 읽히기를 기다리며 메일함에 도착해 있단 것은 꽤나 즐거운 일상이었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서점가에도 구독 서비스로 선보인 글들이 묶여 단행본으로 발간되는 것을 종종 보았고, 오늘 골라온 책은 <책장 위 고양이>라는 타이틀로 독자들에게 메일링 된 에세이를 묶어 탄생한 책이다.


제목은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글쓰기에 관한 책인가? 아니다. 제목이 의미하는 건 독자에게 닿는 7인 작가의 글에 대한 은유랄까.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작가 순으로 매 회차마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뽕커리, 비, 결혼, 커피, 그 쓸데없는 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이야기를 썼다.


이 연작 에세이 시리즈가 재밌는 것은, 나의 독서 취향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점이다.

7인의 작가 중에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정지우 작가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구를 더 선호하고, 취향이고 없이 그냥 읽어지는 대로 맞아지는 대로 봤던 책들이다. 


그런데 참 이게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서 나온 순서인지, 원래 1주일간 연재되는 순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 연작 에세이 한 챕터를 읽어 나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월화(요일)는 워밍업 하듯 착착착 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기차가 수목(요일)에 도착했을 때는 높이의 수직하강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급격한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나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더라도,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남궁인(*응급의학과 전문의, 페이스북에 본인이 담당한 진료 관련 글, 사회적으로 의학자의 시선이 필요한 사안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의사 선생님은 본캐를 완전히 내려놓고, 작가라는 부캐에 충실하여 쓴 글들이 그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준다. 본인 역시 이를 의식하였는지 179쪽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책으로 제 글을 처음 보신 분이 있을 겁니다. (중략) 남궁인으로 돌아와 어떤 글을 써서 출판했는지 본다면, 아마 이 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으실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음 회차에 이어지는 문보영 시인은 4차원 세계에서 쓴 글을 우리에게 내려보내 주셨다. '뇌이쉬르마른(각 에세이 회차마다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인 서사에 디테일이 정확한 묘사가 이 글의 정수다. 이전에 읽었던 '준최선의 롱런'을 다시금 찾아서 책상에 올려 두었다. 


문보영 시인은 손글씨로 쓴 글을 편지봉투에 넣어 독자에게 보내는 일과를 보낸다. 그 일과에 내 이름 석자를 더하고 싶다. 문보영 시인은 궁극적으로 내가 잃어버린, 혹은 내 삶의 무대에서 한편으로 밀려난 고교시절 짝지와 필담으로 주고받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대단한 능력이다. 나는 실제적으로 30대가 훌쩍 지났지만, 정신연령은 그때에서 한 뼘도 더 나아가지 않았기에, 어쩌면 순수한 그 시절의 사고도 나의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를 끄집어 내주는 작가님이었다. 


7인의 연작 에세이를 읽는 것은, 과히 묘한 감상법이었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작가님들이 서로에게 부여했던 소재들을 내게로 가져와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소재는 늘 궁핍하고, 쓰고자 하는 욕구는 충만한 상태(브런치 작가인 나) 그럴 땐 내가 읽은 이들의 이야기를 내 삶에 끌어와 쓰는 것 역시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글쓰기 방법이 될 것이다.


남궁인 작가가 제안한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뽕커리'는 나 역시도 쓰기 쉽지 않을 듯 하지만, '결혼', '방', '비', '그 쓸데없는'에 대해서는 즐겁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는 묘하게 반복되는 것이 있다.


어떤 작가의 이야기에는 여자이기에 겪었던 부조리한 사회 관념들이 항상 녹아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세상에 대한 그림이 녹아들어 있다. 불안정하지만 자유로웠던 생활 끝에 결혼한 작가에게는 늘 가정이 주는 안정감, 아내에게서 얻는 지적, 사회적 공감 등이 자연스레 글에 녹아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결혼과 함께 늘 내 말에는 남편이-, 그러니까 우리 남편 같은 경우는- 하면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대화의 60%에는 남편이 늘 함께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결혼하지 않았던 친구는 그 점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연휴를 보내기 위해 고른 책인데, 페이지 터너가 매 챕터마다 숨어 있었기에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즐거웠다. (이렇게 글쓰기를 하시는군요, 깨달음 약간과.) 


과연 나는 내 글을 메일링 서비스를 할 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김민섭 작가님의 '언젠가, 결혼'에 실린 문장 중.

"민섭아, 왜 이렇게 많이 넣었냐."

"우건아, 내가 대학원생 때는 결혼식에 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돈이 없었거든. 내가 하루 동안 번 돈을 다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너에게는 내가 오늘 번 돈을 그대로 다 주고 싶었다."


늘 많이 벌지 못했던 나는 이 문장이 오래도록 남았다. 결혼식에 초대장을 받으면, 늘 최고의 것을 제일 많은 액수를 넣고 싶었지만, 오늘의 기분으로 보내고 나면 다음 달이 막막해지는 그런 시절들이 떠올랐다. 제일 많은 금액을 넣었던 것이 15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에도 봉투에 넣어 건네기까지 몇 번을 확인했는지...


이은정 작가님이 '언젠가, 방'은 제목에서 남다른 경험치를 내뿜었다. 제목; <최고의 풍수> 

거긴, 집이 아닌 방. 

어릴 적 살았던 엄마의 장어구이 가게 안에 딸린 기다란 방 한 칸의 이야기다.

여긴, 방이 없는 집.

지금 작가님이 살고 있는 집은 아주 옛날에 지은 초가삼간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반려견을 위해 방문과 부엌문을 떼어 냈기에 사실은 방의 구분이 없는 집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게 엮으니 이야기가 또 좋았다. 옛 생각에 마구 상념에 빠지지도 않고, 현재 삶이 초라해 보이지도 않는 균형감이 글에 실려 있었다.


연휴를 채워준 책은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와 마스다 미리 작가의 '행복 이어달리기' 2권이었다. 이렇게 설 연휴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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