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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Feb 10. 2021

하는, 사랑 (김현주 저)

브런치 작가님의 소설 출간!

(중략) 성생활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체로 '성적 취향'이라는 화제는,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누군가와 주고받기엔 여전히 매우 껄끄러운 주제다. 사랑에 빠진 남녀 역시 자신의 욕망에 관해 상대방에게 매우 자세하게 털어놓지는 못한다('아주 조금'이라면 모를까). 파트너가 기겁하거나 혐오스러워할까 봐 걱정되어 본능적으로 억제하는 것인데, 그런 걱정은 대체로 괜한 기우가 아닌 경우도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플은 죽을 때까지 그런 얘기를 나눠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 인생학교 ; 섹스 How to think more

about sex , 알랭 드 보통(샘앤파커스, 2013)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않듯, 브런치에 들어오면 '브런치 나우'를 꾸욱 누른다. 새로 올라오는 모든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활자 중독일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의 '출간 소식'을 전하는 글들은 불문율로 꼭 읽게 된다. 어떻게 책 한 권을 쓰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출간 프로세서 자체에도 관심이 많다.


이번 작가님은 좀 남달랐다. 출간 분야는 '소설'이었고, 방법은 출판사 투고였다.


몇 개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을 챙겨 읽기에, 소설가란 모름지기 등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소설'이 투고를 통해서 등단 없이 출간이 될 수 있다니. 이제껏 통념을 깨는 창의적이고 (작가) 주도적인 출간 방법이었다.


브런치에서 활동 중인 작가 '현주'님의 이야기다.


소설 제목은 '하는, 사랑.'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나니 제목이 이렇게 적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짧지만, 책의 주제를 온몸으로 담고 있는 4글자. 작품을 쓸 당시에는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출간 과정에서 바뀌었는데, 흔하디 흔한 단어들이 이렇게 새롭게 다가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의 화자인 나, 윤주 언니.

그리고 그녀의 조언을 구하는 아는 동생, 희수.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서사는 진행이 되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결혼하면서 경험하는 모든 에피소들이 자연스레 녹아든 이야기들이 다가온다.


대부분의 우리는 결혼 전, 일과 연애, 정신적 물리적 사랑에 대해 시간과 정성을 다한다. 바쁜 주중의 일과를 보내고 주말에 만난 연인은 영화를 보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신다. 그리고 둘 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눈다. 달콤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이토록 달콤한 사랑을 나누던 남녀는 결혼을 하고, 둘을 닮은 아이를 낳고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아이라는 존재는 과히 내가 살던 세상을 뒤집어엎기에는 충분하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서로가 몸으로 나누던 대화에서 점점 멀어지며 마침내 아이라는 매개체를 빼고 나면 서로에 대한 이해에 노력하지 않는 두 사람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신혼 때는 등장하지 않던 부부간의 갈등이 이때부터 표면에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주와 남편이 택한 방법으로 유하고 부드럽게 위기를 넘기는 부부도 있으나, 대개는 희와 남편이 맞이하는 불협화음이 결혼생활에 쌓이는 게 대부분 현실인 것 같다.


< "그럼 왜 부부가 섹스를 안 하게 되었는지 먼저 얘기가 있어야지. 왜 섹스를 안 해서 급속히 사랑이 식었는데? 누구 잘못인데 그건?"

나는 왈칵 성질이 났다. 내 머릿속에는 섹스리스가 된 상황의 원인 제공자는 대부분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일 큰 문제는 임신, 출산, 육아의 삼연타겠지." 남편의 말에 나는 크게 분노하고 말았다.

"임신, 출산, 육아 이건 다 여자의 일이잖아. 얼마나 힘든지 오빠는 옆에서 고스란히 다 지켜봤잖아. 그것 때문에 섹스리스가 된다고? 아아~ 그게 제일 큰 원인이었네. 부인은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머리는 산발한 채로 힘들어서 죽을 지경인데 남자들은 그놈의 사정을 꼭 해야 하니까, 힘든 부인은 나몰라라 하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는 거지? 어?"

"그럼 제일 큰 문제는 여자가 남자를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는, 사랑 p156)>


여자는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몸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물학적인 특성상 남자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로 인해서 오는 차이점 +현실 생활에서 서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육아, 바깥일, 시댁, 기타 자존감등이 얽힌)이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대화를 부재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학교라는 책은 6부작으로,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6가지에 대해서 각 분야의 대가들이 적은 책이다. 그중 사실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섹스'는 알랭 드 보통이 썼다. 다른 작가였다면 모르겠지만, 이 예민한 분야를 알랭 드 보통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는 것은 그 선정성과 낯부끄러움을 모두 덜어내고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는 뜻이다. '섹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삶을 구성하는 6가지 요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사실은 우리는 책이 아니라도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요즘에도 어른들이 말하는 사주팔자, 결혼의 길일, 혼수, 예단, 남편과 아내 될 사람의 직업 등 너무나 부수적이고 얼마든지(해석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들이 주가 된다. 그 사람과 너는 잘 맞아(물리적)? 잠자리는 어때?라고 묻는 것은 경박하고, 미천한 것으로 여겨지기 일수다.


프랑스에서 사실혼을 바탕으로 하는 동거 관계 역시, 한국에 가져온다면 어떨까? 불 보듯 뻔하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돌직구 던지는 윤주 언니는 간접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오래도록 남는 문장을 기록하고 싶다.


<물론 그때도 사이가 좋고 지금도 좋대. 근데 그 전하고는 너무나 다른 관계가 됐다는 거야. 정말 신기하지? 자기는 그동안 우리는 이대로도 정말 행복하다,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고 자기의 행복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대. 근데 그게 오만이었다는 거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인생이래. 뭐라고 했냐면 예나 지금이나 행복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건 맞지만, 지금은 생활의 요소요소가 다 기쁨이래. 자기 남편도 당연히 그럴 것 아니겠냐면서, 사이가 좋은 거? 원만한 거? 그거랑 사랑하면서 애정을 나누고 사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거라고 했어. (하는, 사랑 p190)>


희수가 상담을 위해 다니는 병원 1층에서 오며 가며 마주친 50대 여인과의 대화에서, 섹스리스였다가 다시금 하는 부부가 된 50대 여인의 말이다. 너무나 적절한 표현에 컴퓨터를 켜고 타닥타닥 입력해둔 문장이다.


어쩌면 결혼을 하지 않은 20대가 본다면, 어머 너무 적나라한 거 아니야? 할 수 있는 초반의 내용이지만, 후반부의 이야기에 도달하면 결혼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삶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기에 20대 미혼도 읽어야 하고, 3-40대 기혼자도 읽어야 하는 소설 '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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