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하루의 일기& 똥두1, 똥두2
<지금의 기분도, 열다섯의 내 마음도 어른이 되면 사라져버릴까?>
- 마스다미리, 코하루의 일기 중
15살의 내가 걱정하던 것이, 어른이 되면서 사라졌을까?
아니 그때의 걱정은 그때 걱정 그대로 남았고, 지금의 나는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또 고민을 하는 30대가 되었다.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또렷이 그 감정이 떠오른다. 그 시절 고민은 그자체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어떤 내부가 잘보이는 유리방안에 그 고민은 독립된 채로 존재하는 기분이다.
(마스다미리의 '코하루의 일기'중) 코하루가 거실에서 얼굴 여드름을 걱정하고 있으니, 엄마는 어렸을 때만 나는거니 걱정말라고 한다.
쌜쭉거리며
'엄마 어릴 때 안 예쁘면 의미가 없단 말이야.'
라고 생각하는 코하루. 내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무궁한 관심과 애정을 쏟는 시기인 그때 우리는 예뻐야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도 받고,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도 받고, 기념일마다 넘치는 선물을 받는 셀럽이 되는 순간이 일생의 단 한번은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름과 타고난 외모 타입으로 내적고통을 받는 중학생 동두희(<똥두*>의 주인공)는 코하루의 일기에서 만난 주인공과 너무나 닮았다.
'예뻐지기만 하면 진짜 착하게 살텐데.'
라며 예뻐지고자 하는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왜? 이때 예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이 시절에 갖고싶은 사랑, 관심, 인기, 아름다움, 그 외의 모든 시선들은 마치 나의 자존감의 토대가 되는 듯 마냥 그것을 갈구한다.
나역시 얼마나 예쁜 친구들을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았는가. 차라리 꾸미지도 않고 그냥 공부만 하는 애로 컨셉을 잡고 무심한 척 했지만, 하늘하늘한 교복 자태, 매직 스트레이트따윈 필요없는 긴 생머리, 하얗고 그림같은 이목구비를 얼마나 흘깃 쳐다보았던가.
코하루의 주된 관심사 3가지는, 1. 예뻐지는 것, 2. 좋아하는 같은 학교 남자아이 1,2,3(세번째후보까지 존재)에 대한 것. 3. 연애하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이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 귀엽다. 그게 왜 중요한지를 알기 때문에, 그 시절 연애라는 것은 대단한 관심사이면서 당최 도달할 길 없는 미지의 세계의 것이기에 소중하고 애틋하다.
코하루와 달리 <똥두>에는 조금 다른 서사가 펼쳐진다.
<똥두>의 주인공인 두희는 자신의 3자이마, 장군턱을 몹시도 싫어하지만 그러한 외모따윈 상관없다는 듯 '너라서 좋아한다'는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3인방 중 가장 먼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는 주인공, 두둥)
별명이 똥두고 (이름이 동두희다) 못생김의 조건을 충족하고, 성격까지 모났을지언정 '그냥 니라서 좋아하는건 안되나?'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소년의 등장은,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분명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웹툰은 아니지만(책 표지를 보고 과연? 이 책 속에 사랑이야기가?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펼쳐야한다!),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내 20대의 첫사랑과 그 연애가, 그 연애의 시작에 가슴 속에 물고기 한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왔다갔다하는 듯한 간질거림이 그대로 전달된다.
겉으로 보면 똥두는 이름으로 매일 절친의 놀림을 받고, 독특한 외모에 예쁘다는 말 한번 듣지 못하고 유년을 보내는 듯 하지만, 기동이와의 만남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동시에 독자들은 기동이와 만나는 두희를 절친인 주본이와, 라이벌인 오바다의 질투를 (두희 본인은 알아채지 못하는) 느끼게 되는데, 이 점에서 앞서 찾아온 카타르시스가 한번 더 반복된다.
'우와 우리 주인공보다 모든 조건이 나은 주변의 여자친구들이 똥두를 부러워하고 있어.'
<똥두>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서너번 더 읽은 후 7가지를 꼽아보았다.
1. 까마귀라는 오브제
2. 마법의레시피(쿠키)
3. 들고나가면 비오는 우산
4. 나는 왜 하필 나일까
5. 2012년 지구멸망설
6. 이름에 관한 별명들
7. 우리 인생에 그나마 재밌는 사건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뿐이다
장면마다 까마귀가 종종 등장한다. 이 까마귀는 기동이와 두희에게 아주 중요한 동물이다. 기동이에게는 돌아가신 엄마를 상징하는, 반면에 두희에게는 자신에게 먹구름을 몰고올 것 같은 상징으로 존재한다. 까마귀의 등장이 후반부에 갈수록 매우 중요해진다.
마법의 레시피는 기동이가 엄마와 어릴적만든 쿠키만드는비법책인데, 기동이의 매력을 레벨업시키는 소품이기도 하다. 이책으로 쿠키를 만들다가 두희를 만나게 되고, 이후 같이 쿠키를 나눠먹으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결국 쿠키때문에 강제(?)고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키책이 나올때마다 즐거웠다. (기동이처럼 번개쿠키를 만들어봄↓ :-)
엉뚱한 면이 많은 기동이가 갖고 있는 물건 중, 마지막씬에서 다시 봤을 때 정말 심장이 멎을것 같았던 노란우산. 비가오지 않는 날에도 들고 나오면 비가온다는 우산으로, 비를 맞고 가는 두희에게 건네준 노란우산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된다.
1권의 메인 타이틀이기도 한 '나는 왜 하필 나일까'. 이야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15살, 이런 고민 한번 안하고 지나간 사람이 있을까? 이제는 나의 정체성은 누구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부모님의 딸 이렇게 디테일하게 설명이 되지만, 15살때는 왜 나는 나인가, 하필 나인가 하는 고민을 엄청나게 했었다. 바꿀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결국 비난의 화살은 나를 향해야했던 그 사춘기 시절, 눈만뜨면 고민 시작이던 그 유년기.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꽤나 혹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던 중 허무함이라는 벽에 도달한 두희는, 사랑은 이유가 없어도 허무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라는 것과, 곁에 있는 기동이가 나의 존재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깨닫고 기동이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니니나를 외쳤다.)
지구멸망설, 이제는 오늘 망하고 내일 망해도 이상치 않은 날이 되었지만, 그땐 뭐든지 의미를 부여했다. 두희가 기동이에게 던진 세가지 질문 중 마지막 질문이었던 지구멸망설. (아, 작가님 이렇게 멸망설을 낭만적으로 풀어내시다니...)
"그럼 니는 멸망했으면 좋겠나? 안했으면 좋겠나?"
"멸망 안했으면 좋겠다. 니를 만났으니깐..." (크아, 여기서 또 한 번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이름에 관한 별명들이 이야기의 주축이 된다.
동두희>똥두
변기동>변기통
김계숙>계XX
똥두라는 별명이 싫어 이름을 바꾸고 싶었던 두희가 카페를 운영하는 계숙이 언니를 만나며 별명이라는 것도 인기가 있으니까 존재하는 것이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로의 한자이름 뜻풀이를 하며 자신의 이름에 대한 미운 마음을 덜게 된다. 사실 나는 학창시절 생각나는 별명이란게 없다. 별명이라는 것도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붙여주는 애칭의 표현임을, 한편으로는 별명없던 시절은 서글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주제라고할까.
<그나마 우리 인생에서 재밌는 사건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이런 마음을 품을 시기가 이제는 많-이 지났지만,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는 법이다.
15세때 같은 학원의 남자아이를 아주 좋아해서 담당선생님께 수업모습을 찍은 사진을 얻기도 하고, 넘쳐나는 관심을 주체하지 못해서 고백도 하고 그랬다.
돌이켜보면 나는 마음 숨기기에는 능하지 못했던 것 같다. 10대의 아름다운 연애는 없지만, 그 시절의 숱한 '고백할까? 말까?'에서 늘 고민하고 설렜던 날들은 가득했다.
<십대의 삶은 왜인지 격렬하다. 태어나 보니 만나게 된 마음에 안 드는 부모와 내 이름...과 그에 따른 별명. 전생까지 따져 가며 충분히 자신을 비관하고서야 하루가 끝나 간다.
십 대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투성이지만 대개의 십 대는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온갖 단점(주관적인 생각으로)을 긁어 모아 비극의 주인공으로 치장한 후, 사뭇 초연한 마음으로 '나 따위가...'라며 자학으로 기워진 이불을 덮고서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중략) -윤태호(만화가, 미생의 저자) 의 추천의 말 중 >
십대에 관한, 내가 나를 좋아하기까지 필요한 모든 조건(나를 사랑하는 이의 존재, 내 못난 마음까지 다 알면서도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 가족)을 담은 이야기가 30대인 나의 마음을 많이 흔들어 놓은 책이다.
*다음에서 2015년 부터 2016년까지 연재되었던 웹툰이 2021년 출간되었다. 국무영작가님의 작품으로 <똥두1권, 2권>으로 나뉘어져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