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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Apr 08. 2021

번아웃 엄마에게 필요한 것

엄마는 누가 돌봐주나요

3월은 내내 온라인 수업을 하던 첫째의 전일 등교가 시작되었으며, 가정보육으로 집에 있던 둘째가 병설유치원 정규과정에 입학하게 된 달이다.


주 5일의 일과가 당연한 것인데도, 매일매일을 건사하는 것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다.

아침-점심(집에 오면 '배고파요' 하는 아이들, 학교 급식하고 나오면서 대체 왜?)-저녁을 차릴 때마다 과연 내 인생에 내 손으로 차려야 하는 삼시 세 끼는 몇 번이나 남았을까, 의미 없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이어가면서 대학원 수업까지 듣느라 오히려 수업이 있는 월, 화는 더욱 과중한 한 주의 시작이 되었다. 아이들은 '들어가면 안 돼요, 아빠 공부하고 있어요.' 하면 기어이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 어쨌든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자 한다.(방에 들어가려는 아이들과 데리고 나가 달라는 남편과 그 사이에서의 나의 고군분투)


그렇게 월화수목금이 지나고, 주말은 주말대로 일정이 가득히 한 달을 보내고 나니, 혓바늘이 돋는다.

혓바늘만 돋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목이 심하게 부었다. 어깨부터 시작한 근육통은 엉치까지 예외가 없다. (마치 어제 등산이라도 다녀온듯하다)


아침 알람 소리가 들려온다. 그 누구도 알람을 끄기 위해 일어나는 이가 없다. 이대로 2-3시간만 더 자면 개운할 것 같은데 하면서도 물먹은 솜뭉치 같은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켰다.


둘째를 차에 태워 등원을 시키고 나니 조금의 여유가 든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겸 친정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내가 주차하자마자 키를 받아 셀프 세차를 해주신다. 집으로 가니 엄마는 왜 전화할 때마다 목이 잠겼냐고, 아이들 보내 놓고 낮잠이라도 자는 거냐며 속 모르는 소리를 한다.

"아니, 엄마 잠을 자서 그런 게 아니고 피곤해서 그래 ㅠㅠ 난 좀 고되면 목부터 잠기더라고..."


엄마가 흙침대에 전원을 켜더니 이부자리를 펴준다.

세차 후 귀가한 아빠는 침대에 누워있는 날 보더니, 엄마랑 의원 가서 링거 한대 맞고 오라고 성화시다. 눈을 감고 긴장했던 어깨와 종아리의 힘을 빼본다. 바닥의 온기가 따뜻하게 올라왔다. 엄마가 덮어준 이불은 적당히 몸을 감싸주어 편안했다. 그렇게 얼마간 누워있다가 엄마가 내어온 딸기와 쑥떡을 먹었다.


"더 누워있어, 딸기는 누워서 먹어도 돼."

"(눈을 감고 피식 웃었다) 에이 그럼 안되지, 앉아서 먹어야지. 좀 누워있으니 낫네."


냉장고에서 갓 나온 딸기가 입 안에 들어가니 오감을 깨우는 기분이다. (모든 감각이여 잠에서 깨어나라) 더 누워있으려니 아침에 난리법석을 하고 나온 집안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갑니다. 또 들를께요~)


집으로 오니 연락 없이 안 오는 아내를 대신해 남편이 집을 치워놨다.

(괜스레 미안한 맘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밥 단무지와 유부가 보였다. 계란지단을 만들고, 오이를 길게 썰어 몇가지 재료를 넣은 김밥을 몇 줄 싸고 나니 1시가 다되었다. 아이들은 1시반에 나오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서는 발걸음이 "어?" 가벼워졌다.


주 5일의 일과를 건사하는 것과 사이사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서평, 글쓰기)은 생각보다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 같다. 결국 번아웃으로 4월을 맞았으니 말이다.


번아웃을 겪은 엄마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돌봄이 필요하다. 내 엄마 아빠의 돌봄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험이 있었다. 짧지만 확실한 효과! 나는 두 아이를 낳으면서 내게 지어진 책임감이란 것에 무척이나 힘들어했는데(아이가 아파도, 한글을 못 떼도, 인사를 안 해도, 추운데 얇은 옷 입고 나온 것 까지 모두 다 엄마 책임), 사실은 내 부모로부터 받던 돌봄에서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거부한 것인지도 모른다.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Tully'에서는 두 아이를 돌보며 셋째를 낳게 된 엄마(마를로)가 밤에 셋째를 돌봐주는 야간 보모 툴리(Tully)를 들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툴리(야간 보모)의 등장으로 지쳤던 일상에서 말로는 활력을 얻게 되고, 결혼 생활에서 육아로 놓쳤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되찾아 간다.


사실 툴리는 실제 존재하는 보모가 아니었다. 마를로(샤를리즈 테론)가 산후우울증과 육아 스트레스(그녀의 둘째는 발달장애로 학교생활마저 원만하지 않다)로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의 존재였다. 툴리는 마를로의 결혼 전 성(last name)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정말 절실할 때가 있다. (친정) 엄마는 내게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도 가고 유치원도 가니 너가 좀 수월하겠다'라고 지나가며 이야기했었지만, 내게는 수월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침 상담주간이었다.

수요일에는 둘째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마를로(샤를리즈 테론)가 겪었을 당혹감을 그대로 경험했고, 목요일에 있었던 첫째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선 처음으로 성적표가 없는 육아에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모두가 잠든 밤에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툴리(Tully)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툴리가 없는 나는 가끔씩 친정집으로 가 부모님의 변함없는 돌봄을, 나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과 애정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엄마도 때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_ T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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