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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Apr 06. 2021

결혼의 아이덴티티

신혼 땐 집에 갈 때 뛰어갔는데, 이제는 최대한 둘러 둘러 집으로 갑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정작 그녀가 연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금남의 구역처럼 높고 높았던 콧대? 

는 아니었지만 남자 동기들과도 유달리 가깝던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연애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왔다.


하나 둘 SNS를 타고 전해져 오는 그녀의 연애를 랜선으로 접하고 있으니, 마음속의 간질간질함이 올라온다.

<눈 뜨자마자 보고 싶을 줄은> 이라는 상태 메시지나, 먼 거리에 있는 연인의 동네를 찾아가 그의 단골집을 하나씩 섭렵하는 모습은 나의 첫 연애의 기억, 이라기보다는 그 '감각'을 이끌어냈다.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같음을 확인하던 그 순간은, 가슴이 서늘했다. 놀이동산의 바이킹이 제일 높은 곳까지 닿았다가 하강할 때 몸속으로 흐읍하고 들어오는 그 찬바람. 정말 유치한데 노래 가사 그대로 <오늘부터 1일 할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세상이 내 허파로 빨려 들어오는 것처럼 찬기운이 온몸을 훅 감쌌다.(거기가 바닷가 전망대라서 그랬을까?)


친구는 2호선 인근에서 근무 중이고, 남자 친구의 집은 경기도였기에 이동거리가 만만찮음에도 기꺼이 보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가는 모습에서, 내가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에 대한 기억도 떠올랐다.


장거리 연애도 아니고 <볼까?> 하면 차 타고 30분이면 닿는 거리였음에도 그땐 왜 그렇게 헤어지기가 싫은지, '안녕'하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게 왜 그렇게 아쉽기만 했던지, 주중에 퇴근 후 짬을 내어 만나 차 안에 앉아있으면 그게 왜 그렇게도 좋던지. 


결혼도 10년, 육아도 10년을 향해가는 지금 '내가 왜 내 무덤을 파고 들어왔나' 하며 자조를 날리는 날도 있지만, 연애할 때 최종적으로 닿고 싶었던 곳은 여기, 바로 지금이 아니던가(우리 둘이 법적으로+슬하에 자녀들로 얽히고설켜버린 지금).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이 10여 년의 시간을 보내며 달라진 걸까?


신혼 때 우리는, 6시에 퇴근을 하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빨리 집으로 가는 게 목표였다. 집에 가서 만나려고(남자 친구를, 아니 남편을!). 이제는 밖에서 안 만나도 된다, 시덥잖은 밥에, 카페에, 숙박업소에 전전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 둘의 스위트홈이 있다네! 하며 최단거리로 집으로 가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주로 1호선을 이용하던 내가 더 빨리 귀가하곤 했는데, 집에 돌아와 대강의 정리를 해두고 밖을 내다보면 저기 골목을 돌아 뛰어오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남편은 잔반을 버리러 잠시 나가면서도 핸드폰을 챙겨 나간다.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아파트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핸드폰도 확인하며(혹은 통화), 최대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귀가할 때도, 지하철 역에서 아파트 셔틀을 타면 5분 만에 올라오는 거리를 도보로 15분 정도 혹은 루트를 조금 달리 택하면 20분이 더 걸리는데, 기꺼이 그렇게 귀가한다.


우리는 최대한 천천히 집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왜 그럴까? 이제는 남편을 연애시절 남자 친구만큼 좋아하지 않아서?

아이 둘을 낳고 달라진 와이프를 보면 이젠 시큰둥해서?


가끔 마주하며 나누는 스킨십을 통해 느낀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좀 좋아하고 있네?> 


다만, 신혼 때처럼 집을 향해 뛰어올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 생겨난 책임감 때문이리라.

아내와 남편에서 나아가 '엄마'와 '아빠'라는 역할이 더해진 우리는, 때로는 그 역할로 페어링 돼야 하는 순간이 조금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회사일이 생각보다 과중했고, 팀 내의 소통이 조금 꼬였고, 예상치 못한 메일로 늘어난 근무시간에 기진맥진한 날을 보냈기에.


늘 아이들과 집을 지키는 내겐, 가끔씩 가지는 지인과의 만남 후 귀가할 때 그런 마음이 든다. 그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습에 조금 더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하며, '그땐 내가 그랬었구나' 라며 추억을 곱씹는 저녁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조금더 늦춰본다.


매일 보던 남편의 모습은 이제 집 안의 가구처럼 익숙하다. 남편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화장 안 하고 푸석푸석한 민낯의 모습의 홈패션을 한 나를 더 오래 기억하겠지.


뜻밖의 친구 연애 소식은, 후회와 자조로 덮여 이젠 없을 줄 알았던 연애시절의 남편을 찾아내게 했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 모습을 끄집어냈으며, 그 시절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던 내 마음 또한 찾았다. 그래, 결혼을 결심할 땐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으로 얼마나 충만했던가. 인과관계가 딱 맞아 떨어지는 인생! 


Title. Photo by Yeshi Kangr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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