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혹은 4월 초에 열리는 여호와 증인의 '만찬' (예배)은 꽤나 심적 부담이 되는 행사다.
처음에는 '만찬'이라고 해서 비신도인 가족과 친지들을 초대해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라이트(?)한 예배를 보는(마치 주일 친구 초청과도 같은?) 건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결혼하고 극초반이었기에 참여를 당연하게 여기기도 했고.(나름 며느라기 시절) 사실 여호와 증인에서 지내는 큰 예배격인 '만찬'은 그런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라이트하지 않은 예배이기에, 더욱 참여가 꺼려진다.)
올해 같은 경우는 3월 말이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두 아이 학기 초라 정신이 없었고, 개인적인 일들로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찌든 내가 남편에게 지나가는 말로 '얼른 주님 곁으로 가고 싶을 뿐'이라고 농을 날렸는데, 남편은 "어, 안 그래도 내일 주의 만찬이라서 주님 만나게 될 거야." (내 반응) "응?(올해도 기어이?)"
잊고 있던 연례행사가 소환되면서 배시시 웃던 미소를 싹 거두었다.
'흐음'
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조명하며, 둘 사이서 미묘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들을 잘 그려놓은 에세이라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었다.
평생 인생의 주연으로 살아온 나라는 사람이 얼떨결에 조연의 역할을 기쁘게 해내야 하는 그 지점. 아, 그 지점이... 그 지점이, 딱 잘라 시어머님 곁에 사람 좋은 들러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시어머니를 공격적인 태도로 묘사하는 걸까? 그 애매한 지점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우리 엄마가 그러자고 했으면 '별로 안 내키는데?' 혹은 '그냥 안 가련다' 하고 넘기고야 말 역할들이 결혼 후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들로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진짜 '나'의 고뇌의 몸부림이 시작된다.
"아니,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실한 마음으로 하면 좋지, 나처럼 믿음도 없는 사람이 억지로 거기 참여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믿음이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야, 안 그래?"
또 피가 역류해 올라올 것만 같아 나에게 다짐하듯 한 마디 덧붙였다.
"난 내일 참여 안 합니다."(코로나19라 줌으로 원격 예배를 본단다. 그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남편에게서 뭐라 대답이 돌아왔지만, 크게 요동치지 않고 자리를 파했다.
신실하게 토요일 일과를 보냈다. 아침 축구 수업에 첫째를 데리고 갔다가 마칠 때 함께 올라와, 점심준비를 하고, 주말에 먹을 국 한 가지를 더 끓이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 될 만한 것들을 손질해 하나씩 반찬통을 채웠다. 연이어 나오는 설거지들과 음식 잔반을 비우고, 슬슬 아이들 분위기를 살피며 나설 타이밍을 기다렸다.
어젯밤 내 뜻은 전달했고, 오며 가며 "5시에 나갑니다"라고 넌지시 말을 해놓았다. (이렇게 까지 조심스럽게 해야 하냐고? 만약 내 쪽에서 거칠게 나가면 1주일간은 냉랭한 분위기. 그것 역시 견디기 힘들답니다)
출타 15분을 남기고 후다닥 샤워를 하고, 현관문을 음소거시킨 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못한 인간관계와 DM으로 도착한 메시지 건을 처리하러 나섰다. 밖은 만개한 봄 꽃이 가득했는데, 집을 나서는 내 심정처럼 거친 비가 내리는 날이라 작금의 현실 탈출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밤이 깊어가며 비가 더욱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자 남편은 메시지를 남겼다.
"다 끝났으니 얼른 집에 오세요, 비가 많이 내립니다."
우산의 빗물을 탁탁 털고 올라오니 피하고 싶던 모든 시간은 지나고 불 꺼진 거실에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좀 더 현명한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한 주동안 고생한 내게 주어진 토요일을 그저 내팽겨진 기분으로 보내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어머님 마음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