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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Apr 10. 2021

사토시의 서

나카모토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창시자이다

1.

머릿속으로 실험을 하나 해보죠. 금만큼 희귀하지만 다음과 같은 성질을 가진 기본 금속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따분한 회색, 전기 전도성이 좋지 않음, 특별히 단단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펴서 가공하기 쉽지도 않음.

실용적이지도 않고 장신구 용도로도 쓸모가 없음, 그러나 마법 같은 특별한 속성 하나를 갖고 있습니다.

*통신 채널을 통해 전송 가능


이 금속이 어떤 이유에서든 가치를 갖게 된다면, 자신의 부를 먼 거리로 전송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금속을 사서 전송하고 수취인이 그것을 팔도록 할 수 있을 겁니다.


- p281 사토시의 메일 중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2.

나카모토 사토시는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사토시의 서'는 2009년 비트코인 버전 0.1을 배포하며, 이에 관심을 보인 사용자(암호학자이거나 개발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와 사토시가 주고 받은 메일과, 포럼에 게재한 글들을 모은 내용이다.


3.

컴퓨터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비트코인이 작동하는 원리는 알고리즘과 암호학과 관련한 수식과 복잡한 공식이지만, 비트코인이 가진 경제적 의의에 대한 것은 어쩌면 컴퓨터 공학자이지만 '경제학자'의 면모를 더 많이 보여주는 사토시의 설명들로 꽤나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4. 

비트코인은 자산가치를 가진다? 1비트코인당 몇 USD인가? 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이 현재 주조되고 있는 화폐시스템을 대체할 것인가, 아닌가?' 이다.


<화폐 시스템으로서 비트코인이 미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비트코인이 미친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은 통화 영역으로, 특히 단순한 통화가 아니라 화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던 나라들을 기억한다. 1920년대 독일은 1차대전의 패전국으로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했고, 이때 마르크화를 발행해 빚을 갚으며 29,500%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2000년대 짐바브웨는 대통령 무가베의 포퓰리즘으로 231,000,000%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처럼 '통화'와 달리 '화폐'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쉽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화폐는, 정부가 필요에 따라 돈을 더 많이 찍어내 시중에 유통시킨다면 그만큼 평가 절하가 일어날 수 있다. 오랫동안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음) 화폐공급이 제한되어야 하지만, 달러화는 현존하는 다른 국가의 통화와 마찬가지로, 걷잡을 수 없이 계속 팽창하는 통화가 되었다.



5. 

비트코인 버전 0.1 런칭


<저는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오픈 소스 P2P 전자화폐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신뢰 대신 암호화 증명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 서버나 신뢰하는 단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존 통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신뢰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중앙은행은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신뢰를 얻어야 하지만, 명목화폐의 역사에는 그러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은행은 돈을 보유하고 온라인으로 송금하는 데 신뢰를 얻어야 하지만, 지불 준비금도 거의 남겨두지 않은 채로 신용 버블 속에서 대출을 남발합니다. 우리는 은행에 개인정보를 맡겨야 하고, 은행 계좌가 개인정보를 도용하는 사람들에게 털리지 않을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한 막대한 간접비용으로 인해 소액결제는 불가능해집니다. p112>


제1 금융권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KT도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노린 해커들에게 전산망이 뚫리며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고객정보가 유출되었고, 이는 실제 피해사례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제와 관련된 개인정보를 이용, 수집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반해 사기업이 유지하고 있는 보안 인프라는 매우 취약한 수준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개인정보는 우리도 동의하지 않은 제3자에게 넘어가거나 악용될 소지가 매우 높은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네트워크 상의 강력한 '암호화 기법'이 개발, 적용되며 시스템 관리자의 신뢰가 필요없어졌다. 데이터는 어떤 이유에서든, 얼마나 사유가 정당하든 물리적으로 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암호학적 증명에 기반한 전자 통화를 사용하면 중간에 개입하는 제3자를 신뢰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으며 송금도 용이해집니다


비트코인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던 포럼이 존재했다.


새로운 전자결제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던 이들이 모이고, 질문과 답변이 오고가며 점차적으로 비트코인은 초기 나타났던 시스템 상의 버그들, 충돌등을 해결하며 점차 안정적인 서비스로 나아갔다. 비트코인 버전 0.3이 런칭되면서 사토시는 좀 더 자신있게 자신의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아래에↓)



6.

비트코인 버전 0.3 런칭


<P2P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버전 0.3을 소개합니다! 비트코인은 암호화 기법을 활용하는 디지털 화폐로,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중앙 서버가 필요없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중앙 관리형 통화의 인플레이션 리스크에서 탈출하세요! 비트코인의 총 통화량은 2,100만 코인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코인은 CPU파워를 기반으로 네트워크에 기여하는 노드에 점차적으로 배포됩니다. 여러분도 유휴 CPU 자원을 기여하면 그 비트코인 중 일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p180>



7. 

비트코인의 작동원리에 대해서는 초반 25쪽부터 45쪽까지 상세히 설명 되는데, 이는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결제 승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인키와 공개키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구현되는지는 그래도 도식을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개인키, 공개키, 트랜잭션, 암호화, 해시함수, 블록, 노드(채굴자), 작업증명, 프로토콜 등 계속해서 등장하는 용어들에 익숙해지며, 중반을 넘어서면 읽기에 가속도가 붙는다)


8.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중지불'에 관한것(예를 들어 하나의 블록(코인 지갑)을 복사해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의와 답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 했다. 


< 사토시 씨는 이런 설계 작업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오셨나요? 꽤나 세심하게 계획하신 것 같아요. 많은 브레인스토밍이나 토론 등이 선행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코딩만으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두들 비트코인의 결함을 찾아내려고 뻔한 질문들을 하고 있지만 비트코인이 잘 버티고 있네요.


Re: 2007년 언제쯤인가부터 위와 같은 결제 과정들을 신뢰가 전혀 필요없는 방법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코딩보다는 설계 작업이 훨씬 더 많았어요.


다행히도 지금까지 제기된 이슈들은 이미 고려해서 계획은 세워놨던 것들이었습니다.>



9. 

이중지불과 매점매석(누군가 시중에 비트코인을 다 사버리려는 행위), 공개키를 가지고 개인키를 찾을 수 있는 방법(공개키와 개인키 두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코인을 송금할 수 있게 됨) 등 제시될 수 있는 모든 취약점들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을 한다. 


대부분의 답은 CPU가 작업할 해시함수, 암호학에 대한 것이지만,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쉽게 설명하고 답을 끝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나카모토 사토시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점점 커져갔는데, 현재 그는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추어 행방이 묘연하다. 이 포럼과 개별 사용자와 사토시가 주고 받은 메일 이후에는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 (단, 이 책의 초판은 2014년 출간되었다.) 


사토시가 초기 비트코인을 만들어내며 기대했던 반응보다 더 빠르게 사람들이 갖고자 하는 전자화폐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 가치가 급등하게 되었으므로(시스템 런칭 초반에는 비트코인 수도꼭지라고 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비트코인 5개씩을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또한 기존화폐유통의 근간을 뒤흔드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인식되기 시작) 


개발자 본인에겐 신변의 위협이 될 수도 있는 현재 상황과 그의 사라진 행방에는 연관성이 있었다. 익명으로 남는게 더 나을수도 있다.(지금으로선) 


포털 검색창에 비트코인, 또는 가상화폐라고 입력하자, 가치가 폭락했다, 휴지조각, 화폐로 인정, 혹은 불인정 등 다양한 타이틀의 기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가 의도한 것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을 당장 손에 넣고자 한다면 거래 중개소를 찾아가는 것이 빠르겠지만, 우리는 비트코인이 함의하고있는 미래 결제수단의 변경, 화폐라는 개념 정의가 달라질 앞날을 미리 내다보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으로 쓴 리뷰입니다


Title. Photo by Mathieu Ster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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