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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Apr 12. 2021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전성배 저)

농산물 MD의  우리 작물 이야기

상차림에 부담을 가진 엄마(→나)는 과일을 한 가지씩 예쁘게 담아 올리며 비어있는 식탁을 채워본다.

과일 각각이 뽐내는 색감과 향 그 자체만으로 식탁의 분위기를 바꾼다.

그래서 장을 보러 나가면 꼭 과일 한 가지씩은 빼먹지 않고 사게 된다. (사실 종류별로 한 보따리씩 사 온다)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의 삶은 기온의 변화로 절기를 느낄 수 있지만, 과일가게 혹은 마트의 매대에서 한껏 쌓여 있는 제철 과일을 볼 때면 아 봄이 왔구나, 여름이 다가오고 있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다.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를 쓴 전성배 저자는 과일가게에서 일하게 되며 농산물을 팔게 된다. 저자는 귀금속 공예를 전공했는데, 운명이란 그런 것인지 우연한 계기로 과일가게에서 일을 배우게 된다. 현재는 온라인으로 소비자와 농산물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농산물 MD로 활동 중이다.


농산물 MD만이 알려줄 수 있는 수많은 과일에 대한 정보들(멜론과 참외(멜론의 한국화)의 기원은 아프리카 대륙! , 딸기의 대표적 품종은 설향이지만, 장희, 육보, 매향, 금향, 죽향, 킹스베리까지 일본 품종과 국내산 품종의 쉼 없는 경쟁)을 알아가며 혼자 알고 있기엔 아쉬운 맘에 쉴 새 없이 재택근무 중인 남편에게 주저리주저리 읊으며 책을 읽었었더랬다.


"여보 그거 알아?"

하면서 왜 수박 꼭지가 T자 형태에서 I자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꼭지만 보고 품질을 판단하면 아쉬워요, 윤기와 색깔, 냄새와 경도 등 품질을 평가할 기준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아두시길. 그리고 T자형 꼭지로 만들려면 한 수박당 3번의 가위질을 해야 했기에 인건비 절감과 유통의 원활함을 높이기 위해 2016년 표준규격이 T에서 I자로 변경되었다)


"여보 좋아하는 캠벨포도가 확실히 예년만큼 안보인 이유가 있었네."

라며 포도계의 여왕 샤인 머스켓의 등장과 FTA와 함께 칠레에서 수입되어 들어오는 다양한 종류의 포도들에 대한 썰도 풀어주고,


"그때 재래시장에서 복숭아 한 박스 샀었잖아, 특품으로. 근데 반은 물러 있어서 우리가 많이 노여워했었지, 우리가 어리숙해 보이니까 속여 판 거 아닐까 하고." 그 부분의 오해도 살짝 풀어보았다.


책 속의 문장은 우리에게 설명을 전한다.

<그래서 사계절 중 가장 기온이 높은 여름은 복숭아의 제철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계절이다. p81>


<복숭아가 장마철에 취약한 이유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복숭아는 과육이 약해 수확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쉽게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는데, 꼭 비가 침투하지 않더라도 온도와 습도가 높다면 그곳을 중심으로 빠르게 썩기 시작한다. 거기다 복숭아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박스 내의 다른 복숭아까지 순식간에 전념이 된다. 또 썩는 부분도 윗부분이 아닌 캡으로 싸여 보이지 않는 밑동부터라 소비자의 오해는 더욱 깊어진다. p79, 80>


과일장사의 애환도 글로 다 표현하자면 한 권이 모자랄 것이다. 그만큼 생물인 과일은 각각이 가지는 특성이 다 다르다 보니 오늘의 장사가 어제와는 같을 수 없다. 그렇지만 단골손님은 "지난번에 사간 수박이 맛있던데, 같은 걸로 주세요."라며 찾아오기 마련이니 참 과일장사 언뜻 보면 수월히 과일만 팔면 되지 싶은데, 모든 고객의 입맛이 다르기에 참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자연이 하는 일이기에(볕, 강수) 같은 밭에서 같은 사람이 농사를 지어도 매년 (당도와 품질이)달라질 수 밖에 없는 농작물)


모든 과일들은 제각각의 추억을 담고 있었다. 저자가 가진 추억이 있고, 그 과일을 바라볼 때 내게서 이는 추억도 있었다. 과일 하면, 어린 시절 용달 트럭 한차 가득 과일 박스를 싣고 장사를 다니던 외삼촌이 떠오른다. 늘 여름이면 파지 난 제품이라며 박스 떼기로 복숭아를, 가을이면 사과를 놓고 갈 때는 '미안하다' 하셨지만, 사실은 너무 기뻤다. 엄마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수제 황도들, 복숭아 주스, 사과 잼이 냉장고 한편을 가득 채우던 풍경은 내게 기억되는 여름날의 한 장면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건 과일 이야기이기도 하고,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흥미롭다. 다가올 계절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이야기들이다. 부지런한 저자는 온 오프라인의 과일 유통을 하면서도 우리 농산물을 키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왔다. 오랜 시간 글을 쓴 사람의 문장. 그 문장이 주는 편안함에 기대어 일상 속 잠깐의 휴식을 취해본다.


<감이 소쿠리에 가득 담기면 할머니는 그것을 하나하나 손질해 평상에 펼쳐 말리셨다. 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말랭이로 변해갔다. 감말랭이와 곶감을 만드는 일은 시골에서는 가을과 겨울을 보내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p145>


봄은 벚꽃의 개화시기와 맞물려 시작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대저토마토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할 때(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딱 두 달간 즐길 수 있는 봄의 전령), 겨울 내 귀한 대접을 받던 딸기가 진열대 한가득 차지하고 '한 다라이에 6천원, 두 다라이에 만원' 하는 팻말이 보일 때 '봄이구나' 하는 감각이 살아나기도 한다.


봄에 잘 어울리는 책을 봄꽃이 지는 동안 읽었다. (삽화도 인상적이다.)


<매년 겨울, 설향이 나오는 때가 되면 그 모녀가 떠오른다. 봄의 온기를 갖고 태어나지만 겨울을 살다가는 설향. 그것을 다정하게 나눠 먹는 모녀의 모습이 자연히 상상된다. 추운 겨울 서로를 배려하는 그 말들 속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때 나는 그들에게서 봄을 품은 겨울을 보았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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