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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Apr 18. 2021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저자 심채경


심채경. 천문학자. 행성과학자.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 우주탐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박사 후 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신분을 바꿔가며 20여 년간 목성과 토성과 혜성과 타이탄과 성간과 달과 수성을 누볐다. 현재는 한국천문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 <네이처>가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미래의 달 과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과학자로 지목했다.




천문학자는 별만 보지 않는다.


수일에 걸쳐 관측된 자료들이 넘어오면 스펙트럼 하나하나를 분석해야 하는 천문학자는 어쩌면 남다른 과학적 시선, 감각보다도, 조금 전까지 137번쯤 해봤던 것을 138번째 다시 해보는 일을 진득하게 해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네이처>에서 선정한 주목해야 할 젊은 과학자 5인에 들어간 저자는 사실 그 명성 뒤에 놓인 실제 국내 과학자들이 당면하는 절차적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오히려 2부 이과형 인간의 <인터뷰를 하시겠습니까>를 읽으면 저자의 겸손하고 뛰어난 자기 객관화에 살짝 놀라게 된다.


<네이처>, <사이언스지>에 논문이 실린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다. 그로 인해 지금의 계약직 신분으로 매년 새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대신 정규직 자리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느 기관이나 네이처, 사이어스에 논문 쓰는 연구자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만큼 향후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 <네이처>에서 주목한 5인의 과학자에 선정된 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닐까?

(5인의 과학자는 미국, 캐나다, 중국,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연구자가 선정되었다.)


<제1저자로 논문을 실었다면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명한 과학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내가 국제적으로 큰 업적을 쌓은 과학자라도 된다는 듯이 국내 언론에서 조명한다는 건 조금 의아했다. 만약 언론에서 멋지게 포장해준 것처럼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다면, 국내 언론이나 한국 과학계가 그동안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게 낭패는 아니다. 그들은 옥석을 잘 가려온 것이다. p144>


달 탐사 50주년을 맞아 달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조명하는 기사 취재의 대상자가 되고, 이 인터뷰가 실린 호가 출판되면서 국내의 언론과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어쨌거나 저자는 ‘침소봉대’라는 표현으로 묘사했지만, 자신에게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주어진 것인데 이 거품을 싹 걷어내고 진짜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담담히 자신의 연구와 연구자로서의 불안정한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읽혔다. 젊은 과학자들이 맞닥뜨리는 날것의 현실 그 자체를 엿본 것만 같았다.


<정규직 교수는 연구 과제가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학회 참석이나 연구에 필요한 장비 구입이 어렵고 대학원생에게 연구비를 주지 못해 면이 안 서는 정도지만, 과제 기간이 곧 계약 기간인 비정규직은 과제가 끝나면 그대로 급여도 경력도 단절된다. 그래서 지금의 과제가 끝나기 전에 다음 먹고살 거리를 미리 찾아 나서야 한다. 나는 고용해줄 의사도 있고 마침 연구비도 있는 교수님을 찾아 약속을 받거나, 스스로 연구 과제를 수주해둬야 한다. 물론 오직 돈만 바라보고 과제를 따내려는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돈이 부족하면 학회를 덜 가면 되고, 사양이 좋지 않은 컴퓨터를 조금 오래 쓰면 된다. p146, 147>


모든 곳에는 현실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는 별과 천문학자, 그리고 행성과 우주, 보이저 1,2호가 보여준 태양계의 모습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느꼈던 황홀감 그대로를 전한다.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지구)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p156>


시간강사로 ‘우주의 이해’라는 교양수업을 하면서 만난 학생들에게 보낸 답신이 본문에 실려 있는데, 그 편지 속에는 그녀가 얼마나 학생들을 아끼고 동시에 대학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또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상하게 설명한다. 나는 ‘우주의 이해’와 비슷한 과목마저 들은 적 없지만, 저자의 수업을 청강했던 학생들이 가졌을 학문적 기쁨을 조금 나누는듯한 기분이었다.


<Q2. 한때 “OO을 안드로메다‘로 보낸다’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안드로메다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많은 것을 거기로 보내는가?>


와 같은 6가지 질문을 만들어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천문학이란 수업에 흥미를 가지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저자는 관측도, 연구실에 쌓여있는 자료 분석도, 논문도, 글쓰기도 열심히 했지만, 무엇보다도 수업에 임할 때 최선을 다했음을, 그리고 그 응답은 수강생들의 과제에서 나타났다.


<학생들이 낸 보고서에는 케플러 초신성의 광도 변화 곡선도 있고, 서리, 가뭄, 강설량 기록의 분석도 들어 있었다. 수상한 ‘검은 먼지’가 보고된 기록을 모아보았더니 백두산의 화산 추출 추정 연대와 비슷하더라는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받을 때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조선왕조) 실록>중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왕의 통치 기관만 조사하거나, 자신의 출신 지역이 언급된 기록에 집중한 보고서에서는 애착이 느껴졌다. P52>


어린 시절 장래희망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진로탐색과 같은 수업처럼 내가 되고 싶은 것을 그리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과학자’라고 적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그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요즘은 어떨까? ‘과학자’의 자리는 ‘크리에이터’가 차지해버린 건 아닐까. 과학자를 꿈꾸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에 스며들어 있다. 실험이나 관측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분석하는 사람도 있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이 필요한 기기를 개발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자들로 가득 찬 연구소를 잘 운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도 있고, 보다 효과적인 과학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혹은 자신이 속한 기업의 상업적 이윤일 수도 있고, 과학 지식의 발전을 도모해서일 수도 있고, 그저 자신의 월급일 수도 있다. 당장의 현실적 대가 없이 미래를 위해 과학을 배워나가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두가 과학자라는 점이다. p268, 269>


별자리를 보고 꿈을 품을 수 있는 누구라도 천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또는 지구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준 순수한 학문적 열정에 감응해 나도 그와 같은 열정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도 천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우주는 무한히 크기에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행성과 우주적 존재들이 남아있기에 누구라도 천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지난하고 평범한 과정을 헤쳐 나가는 게 연구자의 길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그리고 일상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한다. 그래서 하늘의 별이 조금은 달리 보이는 경험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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