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오드 May 23. 2021

여자들의 테러

- 브래디 미카코 신작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을 통해 최초로 노동조합이 합법적으로 인정되었고, 이전까지 자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단결 금지법’이 무력화되면서 단체교섭과 같은 활동이 가능해졌다. 이는 이후 차티스트 운동으로 보통선거 요구를 기초로 한 참정권 운동으로 맥을 이어간다.


도시의 중산층 이상에게만 주어졌던 선거권이 차티스트 운동을 통해 노동자에게까지 확대되었지만 이 역시도 ‘남성’ 노동자에게 한정된 현실이었다.


여기서, 여자들의 권리는 누가 주창하는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여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책을 읽었다.


브래디 미카코의 <여자들의 테러>. 전작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서 영국 학교 내 존재하는 아이들의 계급의식과 현현하는 문제들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여자들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여자들의 권리는 어떻게 획득되었는가? 역사적 노동운동, 참정권 운동을 보아도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가정의 담당자이며, 가사노동, 돌봄, 재생산을 해오면서도 그림자처럼 머물렀던 여자들이 어떻게 권리를 찾아가는지, 어떻게 자기 자신을 한 사회에 올곧게 세우는지에 대해서 3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별로 주목받지 않았던 그들을 조명한다.


이준익 감독의 <박열>에 등장하는 주인공 박열의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

가부장제이면서 호주제가 지배한 아시아 사회의 여성상은 국적 상관없이 비슷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호적자가 된 그녀는(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존재) 한국과 일본을 전전했고, 개인이 겪은 계급사회 내에서 스스로 아나키스트로의 삶을 선택한다.

<박열>의 영화 포스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내가 느낀 전율은 아마도 박열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가네코 후미코가 느낀 것과도 비슷했으리라.


“이 시의 어떤 부분이 좋습니까?”


“어디가 좋고 그런 게 아니에요. 전체가 좋아요. 좋은 게 아니라, 그냥 강한 힘이 느껴져요. 오랫동안 찾고 있던 것을 지금 이 시에서 찾아낸 것 같아요.” p125


후미코는 3.1 만세운동이 펼쳐지던 때 조선에 있었다. 그녀는 만세운동을 보며 황홀한 감동을 느꼈다. 그렇지만 일본인으로부터 압제를 받은 적 경험이 없는 그녀는(당연하다, 그녀는 일본인이다)  진심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에 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는 혁명이 하나의 권력을 다른 권력으로 치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계급사회에서 자라며 배웠다. 민족 운동 또한 한 사람의 압제자를 쓰러뜨리고 다른 압제자를 세우는 일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겼기에 그녀는 아나키스트의 삶을 택했다. 그녀 스스로 택한 박열도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첫 만남의 대화를 통해 확인하고 그와 삶을 함께하게 된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이는,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몸서리쳤고, 그리고 전할 바 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진 에밀리 데이비슨이다. 그녀는 서프러제트라고 불리는 영국 내 무장 투쟁단체 (궁극적 목표는 여성 참정권을 얻는 것)에서 활동한 1인이다.


세상은 ‘날뛰는 여자들’을 두려워했다. 특히 기득권층은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들의 반역이 대영제국의 존속을 위협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p134


에밀리는 지방 신문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신문에도 편지를 기고하여 여성의 가사 노동에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의 노동자 계급 가정의 여성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또 에밀리는 이 시대에 남녀 동일 임금의 실현은 당연한 일이며, 기혼 여성과 기혼 남성의 고용 대우가 동일하지 않은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p171, 172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읽으면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노동은 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가 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회 시스템, 계급, 국가의 역할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페미니즘이라 칭하는 권리 운동이 이제야 주목받는 한국에 살면서 100년 전에 에밀리가 주창한 내용은 얼마나 급진적인지를 느끼며 몸이 떨렸다.


결국, 영국 왕의 경주마가 출전하는 더비(축제)에서 달려오는 경주마에 맞서 경마장으로 걸어 나간 에밀리의 결정, '그녀의 죽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계속 이야기되고 있는 죽음이다. 


(이때 에밀리의 모습은 2013년 채널 4가 방송한 영상을 통해 100년이 지난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세 회사가 서로 다른 앵글로 찍은 영상을 복구, 분석한 이 영상 클립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p218)


여성의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건 것으로 알려진 에밀리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에밀리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서프러제트에게는 여성 참정권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이는 사회 구조의 변화라는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에밀리가 실현하고자 한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p275


서프러제트 가운데서도 특히 사회주의 사상이 강했던 에밀리는 착취당하는 계급 안에서도 상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래쪽 사람들, 즉 여성을 제대로 포섭하지 않으면 노동 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100년 전을 방불케 하는 경제적 격차가 나타나고, 새로운 노동 운동의 존재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현시점에서 다시 절실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p277


페미니즘이라고 칭해지는 여성 운동은 단순히 여성의 권리 신장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할 가치, 권리라는 것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닿는 것. 비단 여성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 소수자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형태의 평등과 차별금지. 에밀리가 100년 전 쏘아 올린 공은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도 그녀가 물었던 질문은 제대로 답해지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주인공은 마거릿 스키니더다.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외치며 일으킨 부활절 봉기 때 활약했던, 여성 저격수.


브래디 미카코는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아일랜드 독립에 가장 중요한 날은 부활절 봉기에 대해서 보고 듣게 된다. 이때 참여했던 (스코틀랜드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아일랜드 본토로 건너간 이, 마거릿) 77명의 여성에 대한 책을 읽으며 그녀의 삶에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고유한 역사와 언어를 가졌던 켈트족의 후예인 아일랜드는 수백 년 간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열두 살 때 학교에서 배우는 ‘영국화 된 역사’가 아니라 ‘아일랜드 사람이 쓴 아일랜드 역사’ 책을 읽고는 부모의 조국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성장한 마거릿은 글래스고에서 아일랜드 의용군과 아일랜드 여성 평의회에 참여한다.

아일랜드 출신이 많이 사는 스코틀랜드에서는 고국에서 독립의 기운이 높아지면 아일랜드로 건너가 싸우겠다는 예비군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도 마거릿은 눈에 띄는 존재였다. 놀라운 솜씨를 가진 여성 저격수였기 때문이다. p37


빈민가 아이들과 노인들은 쇠약해져 죽어갔다. 15년 동안 아일랜드의 인구는 반으로 줄었다,

이것이 영국이 통치하는 아일랜드의 모습이다. 모든 것은 영국과 한 줌 밖에 안 되는 유복한 아일랜드인을 위해 존재한다. 소수의 부유층은 언제나 부유하고, 다수의 서민은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는데도 여전히 가난할 뿐이다. 궁극의 격차 사회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가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통치받아서는 안 된다. p43


근래 아이들과 반복적으로 보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속 독립 운동가들이 겹쳐진다. 그들은 그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한국 광복은 멀게만 보였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점점 더 촘촘히 언어 역사 문화까지 말살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무장투쟁을 펼쳤고, 거사를 성공시켰을지라도 목숨은 잃었다. 


여기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은 조금씩은 결이 다른 신념과 가치관을 지녔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인간이고 싶은,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하나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매 챕터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처음에는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컸기에 그녀의 부분만 찾아내어 읽었다. (실제로 작가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해 적은 인물이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인에 대한 서술(특히 그 시대상이 일제 강점기)도 흥미로웠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작가가 의도한 대로 읽어나갔다. 세 여성의 삶이 점으로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되었다.


‘테러’라고 칭해진 제목은 투쟁으로 바꾸고 싶다. 테러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 부정적 느낌을 덜어내며, 자신의 권리를 얻고자 행동으로 세상을 바꾼 세 여성의 투쟁과 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출처. 촬영/  YES24 (여자들의 테러 - YES24)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itle. Photo by Miracle Peleti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나의 시절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