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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May 16. 2021

너는 나의 시절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의 작가 정지우 사랑 애(愛)세이

내 마음에는 마치 감정 제어장치라도 달린 듯, 돌이켜보면 기쁨이나 슬픔을 맘껏 표현한 적이 없다. 그런 행동들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누가 나의 ‘고유한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겠어‘라는 식의 생각이 거의 평생 이어지기도 한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고, 고해성사를 하고, 심리상담가를 찾아간다지만, 가끔은 그 모든 게 바보 같아 보이기만 한다. 어째서인지 그런 일반적인 방식으로 나는 도저히 이해받을 수 없을 것만 같다. p24>


<왠지 남들과 다 똑같은 방식으로 이해받는 것만으로도 모욕감이 느껴지고, 참을 수 없고, 오히려 더 화가 나는 것만 같은 경험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에 대해서는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더 감추고 숨기면서, 더욱 타인들을 불신하면서, 끝까지 자기 안의 상처와 기억을 품고, 이 세상을 적대시하는 일까지도 일어난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과 자아를 다루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p25>


작가는 자신의 마음부터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한다. 나는 그시절 왜 그렇게 자의식 과잉이었을까? 상대방이 내 눈을 바라보며 토로하던 모든 고민들을 토끼눈으로 들어주면서, 왜 상대방은 나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 것이란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까?


<사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물어보고, 요청하는 일이 나에게 그리 익숙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고, 타인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타인도 나에게 의존하지 않는 그런 단독자적인 생활 방식이 언제나 편했다. p22>


왜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돌아오는 길은 이렇게 외로울까. 하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상한게 아니라고 손 내미는 듯한 문장이었다.


<삶이란 홀로 고고히 서있는 바탕 위에서 타인들과 적당히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절실히 타인들에게 기대어 있는 것이다. 매 시절마다 있는 그 몇 사람 때문에 그 시절이, 그 시간이 살아지고 정의된다. p22>


그런 내게도 세상이 아름답고, 좋다고 여겨지게 만든 이들이 있었다.


아직도 10월이 되면 생각나는 친구의 생일, 1년에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더라도 그녀를 위해 책을 고르고 손편지를 적어 주소가 적힌 라벨을 붙여 보내는 것은 내 나름대로 시절을 기억하는 방법이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이다. 나는 작가가 말하는 시절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본다. 사랑 애(愛)세이라고 부제가 붙었지만, 여기서 ‘너’는 단순한 연인이 아닌 시절을 겪으며 만났던 그때의 모든 관계들을 부르는 대명사라고.



<살아가면서 틀어 막히는 마음들이 어느 시절마다 만나는 인연들 앞에서 무너져내리고, 마음과 마음이 닿고, 그리고 다음 시절로 건너가고, 자기 안에 갇혀 쌓인 타인들에 대한 불신을 털어내며, 삶의 다정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삶일지도 모른다. p27>


감정에 치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고등학교 시절, 누군가의 신뢰와 마음을 얻고 싶은데 서투름에 오해하고 미워하고 지나치게 혼자 좋아했던 대학 시절, 열정만 앞선 채 상사이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채 끝내버린 첫 직장, 그리고 다음 직장. 시절이 지나면서 멀어지는 인연들에 마음이 무거웠고, 잊혀져가는 관계 속에서 서글픈 몇 날을 보냈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낮의 시절에 있는 듯하고, 종종 밤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 시절이 마음이라는 걸 기억할 수는 있어도, 삶의 영역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건 참 이상한 일인데, 내가 그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고, 그 마음으로 오늘 밤을 가득 채우면, 다시 ‘그때의 그 밤’이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p80>


<그 시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만의 것으로 끝났다. p92>


<살아갈수록 그런 것을 배운다. 하루하루를 그것 자체로 인정하는 것, 이곳이 아닌 먼 곳의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는 것, 이 순간의 다정함이 전부라는 것, 그 속에 안착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p103>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내 앞에 놓여있는데, 때로 나는 지나온 과거가 너무도 소중해 그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시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만의 것으로 끝났다고 말한다.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내 마음 속에는 나이들지 않는 10대의 나와 20대의 나, 30대의 내가 중첩되어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지극히 30대의, 두 아이의 엄마로, 한 사람의 배우자로 역할로 그에 따른 선택을 해나간다. 모험도, 실험도 없는 안전한 방법으로. 사실 지금의 나는 과거와는 아주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낀다.


정지우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라는 인문사회과학분야의 책이었다. 소위 제목(혹은 표지에서 시선강탈인) 후광효과를 많이 받는 책들 중 하나라 생각하고 읽은 책인데, 내용이 너무나 충실하며 매 장을 쓰기 위해 작가가 들였던 노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수작이었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분석이 아닐까. (‘90년대생이 온다’ 와는 다른 결)


그런 작가의 신작이 에세이라서 의외의 반가움.

4살 아이를 키워가며 얻게 되는 삶의 행복들이 소소하게 전해짐에, 같은 육아인으로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읽은 페이지 몇몇이 작가의 현재 생활의 행복을 가늠하게 했다.


이 책은, 음 누구에게 추천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20대를 지나 30대에 안착한 이에게.

혼자였다가 둘이 된 이에게, 또는 둘이었다가 셋이 된 이에게. 나를 닮은 아이를 바라보며 드는 감정, 그 오묘한 순간들이 하루를 가득채우고 있는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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