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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un 13. 2021

탐라는 제주

귤귤 저자의 500일간의 제주살이, 여행기

아이와 7월 방학을 시작하며, 한라산에 오르려고 준비 중이다. 20대 때 스쿠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던 기억과, 엄마 아빠를 모시고 함덕해수욕장부터 서귀포, 애월까지 3박 4일간 가이드를 자처한 여행, 남편이 워크샵으로 떠난 제주에 아이와 둘이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간 기억까지...


또 그사이 제주는 많이 달라진 듯 하다. 한 동안 연락이 뜸해 궁금한 친구의 안부처럼, 제주의 안부가 궁금하다. 최근의 제주 소식을 알려줄 책을 만났다.


<탐라는 제주>는 저자 귤귤이 500일간 제주에서 근무하며 여행하며 남긴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여행 정보를 담은 책 보다는, 여행 에세이에 가깝다.





(유럽여행 중) 경비 계산용으로 가져갔던 가계부 수첩에 짧지만, 하루에 3-4줄씩 여행일기를 썼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 갈 때 들고 갔었던 핸드폰을 잃어버려 그때의 사진들은 모두 잃어버렸지만, 다행히 수첩은 아직 남아 있다.


방 정리를 할 때 한 번씩 그 수첩을 읽으면 짧은 글임에도 그때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게, 과거를 기억하는 도구로써 글을 쓴다는 것이 사진을 찍는 것 못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p246


스마트 폰이나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은 수량 제한 없이 찍고, 저장하고, 옮기기도 용이하다. 그러나 무제한에 가까운 저장용량은, 필름사진보다도 특정 사진을 찾기가 어렵게 하는 요인이고, 저장장치에 문제가 생기면 복구도 힘들다. 오히려 영원히 남는 것은 오래 전 필름으로 인화한 사진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글도 마찬가지다. 섬에서의 생활은 지난할 만큼 단조롭지만, ‘제주에서의 삶’ 그 자체가 다시는 없을 기회라는 생각에 매일 매일을 기록했다. 중간 중간 자신을 찾아온 친구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자 노력한 만큼 새로운 곳을 찾아 더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삶의 기록’과 함께 ‘여행일기’도 되는 것 같다.


나는 올 7월 한라산을 필두로 한 중산간 지역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라, 저자가 찾았던 많은 장소 중에서 중산간 지역은 더욱 유심히 보았다.


새로운 터전에서 1년 반을 살더라도 실제적으로 인근의 유명한 명소들을 다 방문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음번에 가야지 미루다가 결국에는 못가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일본에 거주할 때 집 인근에 일본식 정원(소라쿠엔)이 있었는데 관광객, 현지인의 웨딩촬영으로도 많이들 찾는 곳이라 오며가며 눈 여겨 보았다. 이번 주말 가봐야지, 휴가 때 가봐야지 하며 미루다 결국에는 다른 일정에 정작 동네의 명소는 못가고 돌아온 셈이 되었다.


그만큼 마음먹고 가본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저자는 멀리서 오는 친구들을 위해 맞춤형 여행가이드가 되며 제주 곳곳의 오래된 명소부터 최근 유명세를 얻게 된 식당, 카페, 갤러리까지 두루 두루 섭렵했다. (아재 감성을 지닌 친구에게는 레트로한 장소를 위주로 - 꾸밈없는 현지 분위기를 살린 곳들을/ 활발한 SNS 활동을 하는 친구를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인스타 핫플 위주로) 


저자가 공들여 쓴 부분 중 특히 제주 카페 이야기를 쓴, 4장 인생카페 는 요즘 여행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 전망대, 역사 유적지만큼 중요한 여행 스팟이 바로 카페일 것이다.


(ex, 강릉 테라로사가 유명해지며, 테라로사를 방문하기 위해 강릉을 찾는 이도 늘고 있다. 강릉 테라로사를 시작으로 제주, 부산, 서울 각지의 테라로사는 그 자체만으로 그 마을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허니문하우스와 원앤온리는 서귀포의 핫플레이스다. 오직 카페를 보기 위해 서귀포에 가도 될 정도로 육지에서 보기 드문 개성을 가지고 있다. p134, 오션뷰 카페 중


카페 휴일로는 처음 방문하면 이곳이 주택인지 카페인지 헷갈릴 수 있다. 입구의 거대한 돌담과 건물이 잘 지어진 고급 전원주택 같았다. 마당에는 부드러운 잔디가 깔려있었는데 너무 깔끔히 정돈되어있어서 돗자리를 깔고 눕고 싶었다. 라탄 의자와 잔디, 바다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친구는 마치 하와이에 온 것 같다고 했다. p138, 오션뷰 카페 중


20년 하반기 정식 오픈한 카페 테스틸은 일몰을 위해 지어진 카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사장님께서 일몰에 정성을 들이셨다. 처음 건축의 시작부터 차귀도 뒤편으로 지는 해를 잘 볼 수 있는 각도로 건물을 설계하셨다고 한다. 일몰이 예쁜 날은 항상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주셔서 검색해보면 이곳의 일몰 모습을 미리 바볼 수 있다. p146, 일몰이 아름다운 카페 중


제주에는 제주 토종 브랜드 ‘에이바우트’라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다. 2016년 제주 한라대학교 앞에서 1호점으로 시작한 에이바우트는 급성장하여 현재는 제주에만 28개 매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략) 그래도 한번 제주 토종 프랜차이즈 커피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함덕해변의 에이바우트를 추천하고 싶다. p153


바다 뷰... 바다 뷰... 이제 슬슬 바다가 보이는 카페가 지겨웠을 것이다. 파도 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때쯤 멋진 정원과 독특한 인테리어로 눈을 정화할 수 있는 색다른 카페들이 있다. p156, 멋진 정원이 있는 카페



이렇게 많은 카페를 다니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내가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카페인이 몸에 잘 받지 않아 이른 오전이 아니면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게다가 커피 맛도 고소한 것과 시큼한 것 정도밖에 구별 못하고, 카페에 가면 커피보다 주로 티나 초콜릿라테 같은 달달한 음료를 시키는 카페인 찌질이이다. p166, 167


카페인에 민감한 나로서 정말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이른 아침이 아니고서야 쉽사리 커피를 택하지 못한다. 그 커피 한잔의 카페인이 새벽녘까지 나를 깨워둘 것을 알기에. 여느 여행에세이와는 다른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어쩌면 저자는 임시 제주도민이었지만, 이 아름다움을 혼자만 알지 않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귤귤저자가 정리해준 제주 바다와 오름 부분도 좋았다. 좋다고 느끼는 부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제주 일주를 하면 보통 서쪽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끝나거나,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에서 여정이 끝나는데, 동쪽으로 갔을 때 만날 수 있는 함덕 해수욕장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바다이다. 서쪽의 얼굴은 협재해수욕장과는 또 다른. 넓고 고요한 바다가 주는 적적한 아름다움이 있는 바다랄까?


구름이 적당히 있는 맑은 날 썰물 때, 함덕바다에 가면 투명하고 얕은 물에 하늘이 비추어져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잘 찍으면 제주도에서 저 먼 남미의 우유니 사막 느낌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p94, 함덕해수욕장 중


오름이라는 아기자기한 이름만 듣고 만만히 생각했다가 언덕이 아닌 낮은 산과 다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용눈이 오름의 기억도 소환한다.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은 오름의 정석으로 제주도에서 여러 오름을 돌아다니다 제주다움이 뭔지 헷갈릴 때 방문하면 답을 알려줄 것이다. 뻥 뚫린 등산로와 사방이 트인 멋진 전망이 제주스러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p126, 동쪽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 중


높은 오름(큰노꼬메, 어승생악, 영실코스), 테마가 있는 오름(거문오름과 산굼부리, 물영아리오름), 숨겨진 억새 명소(따라비오름), 남쪽의 오름(송안산과 고근산, 군산오름), 연예인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오름(안돌오름, 금오름, 정물오름) 제주만이 가진 아름다운 산에 대한 이야기가 저자의 디테일한 경험 덕분에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이번 주에 읽었던 책은 재밌게도 500일간 제주에서 살았던 저자와 19년간 제주에서 살았던 저자의 이야기였다.


제주에서 태어나 20년 가까이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와, 500일간 제주에 살며 누볐던 이야기가 묘하게 충돌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함께 손을 대면서 만들어진 기억처럼, 슬픔과 기쁨이 혼재된 모습으로.)


그래서 여행지라는 곳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일상에서 벗어나 떠난 그곳에는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고, 올망졸망 오름들이 곳곳에 솟아있으며 넓은 활주로를 달려 비행기가 떠오르며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오는 환상적인 경험이 있다.


그러한 섬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인 것 같다. 현요아 작가의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를 한 번 읽어보며 제주도에서 살아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500일간의 제주살이 <탐라는 제주>는 감성과 이성이 충돌하는 청년 저자의 솔직한 제주이야기에서 우리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솔직한 입담이 매력적인 <탐라는 제주>는 올 여름 제주를 떠날 이들의 손에 들려주고픈 여행 에세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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