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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ul 26. 2021

시어머니 앞에서 흘린 눈물의 효용

결론은 5월 8일 어버이날, 시어머님 앞에서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코로나19로 친정집에서는 설날도, 할아버지 제사도, 엄마 환갑도 프리패스로 지나갔다. (친정아버지의 뜻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고, 그간 못한 효도 차원에서 5월 9일 우리 집으로 친정부모님을 초대해 밥 한 끼 차려드리려 했다. 대신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시어머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그래야 맘은 편하다)


당일, 어머님은 도련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다. 장사를 하는 도련님네에겐 바쁜 날인 오늘 같은 날(어버이날이며 주말)은 보통 가게를 닫고 오면 7-8시,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돌아오며 9시 반 10시가 훌쩍이다. (내 마음의 소리) 장보고 장만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언제쯤 귀가하려나? 

조바심에 남편에게도 확답을 받았다. (12시에 출발하며) 오늘은 저녁 7시에는 나섰으면 좋겠다고. 


도련님 집에 도착해 아이들은 어울려 놀고, 어머님과 이런저런 그간의 근황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에서 점심 요기를 간단히 하고, 저녁은 뭐 좀 먹어볼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은 <우리 오늘 일찍 가야 해요. 저녁은 못 먹고 가요.> 라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동생네 오면 얼굴 보고 저녁 먹고 가야지.> 어머님은 마치 중요한 사실을 잊었냐는 듯 반문하신다.


그런데 어쩌다 대화가 삐딱선으로 들어섰는지, <오기 싫은데도 왔고(나를 겨냥) 내일 일 있어서 오늘은 일찍 가야한다.> 는 대답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내일 친정부모님 만나는데 음식 좀 해가려고요, 그래서 장도 좀 보고> 내가 쭈뼛쭈뼛 덧붙였다. 

<갈 때 맛있는 거 좀 사들고 가면 되지>

라는 속 모르는 대답을 하셔서, 이미 남편의 저격을 받은 나는 얼굴 표정 관리가 잘 안되었다.


(작년 여름 가족 단톡방 사건 이후로 동서와 내 사이는 예전 같지 않다. )


<여기 오는 것도 불편해해요. (왜 자꾸 나를 끌어들이는지...)>

남편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좀 주체가 안되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왜 그럽니까. 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러는데요?>

라고 말하면서 (계획에는 없었던 눈물 한 바가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서로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까놓고 틀어져버린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나도 시댁에 오는 게 편하지는 않았다.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것과는 별개로 이미 서로의 바닥을 보여준 듯한 인간관계에 신물이 났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부부싸움) 되어버린 상황에서 어머님은 어쨌거나 앞에서 울고 있는 며느리를 달래주셨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을 알기에 (훗날에 또 이 일이 어떻게 입방아에 오를지... 그 와중에) 나도 나의 힘듦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저렇게 말하는데 제가 무슨 말을 못 해요. 오늘은 장보고 저녁 일과시간이 좀 필요하니 7시에는 나섰으면 좋겠고, 그렇게 말한 걸, 여기 오기 싫어한다. 불편해한다. 안 오고 싶었는데 왔다 이렇게 말하는데, 저도 너무 힘들어요.  오늘은 남편은 어머님이 하루만 데리고 계셔주세요. 저렇게 말하고, 몰아세우는데 정말 저도 너무 힘들어요.>


어머님은 여느 부부이야기를 하며 너네 정도면 괜찮은 집이다.( =큰 문제없는 부부 사이 아니냐) 뭐 시어머니가 힘들게 하나, 제사가 있나, 이래라저래라 하나, 둘만 마음 맞춰 살면 아무 문제없는데. 하며 속 모르는 이야기를 하시니 서러운 눈물만 계속 흘렀다.


< ...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어요.> (눈물 줄줄)

라고 마지막 포문을 열었다. 작은 방에 들어가 옷을 챙겨 입고 눈물을 닦고 앉아 있으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의 표정은 다소 허탈해 보였다.


<그래, 가자. 시어머니가 같이 가줄게. 가서 치료도 받고, 이야기도 하고, 가서 같이 울자. 예약해서 가보자.>

라는데 나의 우울의 원인은 모두 결혼과 함께 확장된 인간관계에서 시작된 것인데 싶어 속으로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작은방에 들어가 쭈그러져 울고 있는 며느리 등을 쓰다듬어주시는 어머님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분이셨다. 최악의 대화가 오갔음에도 둘 사이 치우침 없이 중재해주시는 어머님에게 일말의 고마움을 느꼈다. 파도처럼 일어난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세수를 하러 갔다. 아침에 정성 들여 한 화장을 다 지우고 깨끗이 세안제로 씻고 나왔다. 팅팅부은 눈에 조카 두 명과 아이 둘이 번갈아가며 얼굴을 보고 간다. 


어머님께 드리려 사온 꽃다발을 보니, 내 마음처럼 지친 꽃잎의 끝이 시들해 있었다.


<어머니, 이 꽃 오전에 화원에서 만들어 온 건데, 집에 가서 물병에 새 물 받아 담가놓으면 또 꽃이 해사하게 올라온데요.>


사랑해서 피운 꽃 같은 결혼도 어느 날은 시들해지고, 다시 새 물을 받으면 화사하게 피어나고 그런 것 같다. 그러다 새 물을 갈 기운이 없어 나 스스로 흘린 눈물로 다시 촉촉하게 적시고, 그런 게 결혼인가. 


이 눈물의 진짜 효용은 그 이후였는데, 그간 꿈에서도 괴롭고, 또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던 마음이 사라졌다. 신기하게 그날 내가 그동안 이고 지고 온 감정의 짐을 그 자리에 내려두고 온 듯했다.

마음이 편안해졌기에, 남편에게 <이런 게 심리상담이지. 고생했지만, 대신 병원은 안 가도 될 것 같네.>

라고 말하니 그날 본 듯한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Title. Photo by Rostyslav Savchy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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