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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Aug 11. 2021

결혼의 방정식

<결혼기념일마다6인상을차리는 이유>가 기록한4만 5천의조회수

5월에 썼던 글이 8월에 다시 메인에 (혹은 포털에) 게시되었는지, 한 자릿수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조회수가 다시 4 자릿수가 되어 있었다.


(브런치 발행 글 두 번씩 메인에 게시를 해주기도 하는군요!)


<결혼기념일마다 6인상을 차리는 이유>를 쓰고, 많은 분들이 안타까움에 댓글로 의견을 주시며 나도 작가님들이 남겨주신 댓글의 뜻을 너무도 잘 알지만 나는 왜 못 그럴까요?


6인상을 차리고 나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혼은 제도입니다. 제도의 사전적 의미는 '관습이나 도덕, 법률 따위의 규범이나 사회 구조의 체계'입니다. 그러니까 제도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지 인간의 본능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p16,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이지훈 지음


나름의 사회적 계약이랄까요, 결혼에 계약이란 단어까지 가져와 이야기하니 이 결혼이 너무나 계산적으로 느껴지나요?


사실은 암묵적인 합의가 있기도 하지요. 내가 이번에 이렇게 했으니, 다음번에는 너도 날 위해 배려를 해주리라는 믿음. 사랑하는 사이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저런 결혼은 말아야지. 할지도 모르겠지만, 1년 3년, 10년이고 마냥 연인 사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연인이라면 서로가 챙겨야 할 범위도 서로에게 한하죠), 결혼은 나와 너 우리 가족, 너의 가족,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확장된 친인척과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도리가 존재하지요. 아예 가족과의 교류가 끊어졌다거나, 해외에 거주한다거나 하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부부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요구됩니다. (설, 추석, 어버이날, 양가 부모님 생신(어머님, 아버님, 엄마, 아빠 생신 챙기기), 송년회 가족 모임, 저희 집 같은 경우는 어머님의 결혼기념일도 챙깁니다.> 행사를 챙기다 보면 12달 모두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어머님의 종교로 인해 제사가 없습니다. (친정집의 경우에는 큰집이며, 할머니도 모시고 있기에 제사가 큰 행사입니다. 해가 지나며 줄이고 줄여서 명절 외 2번의 제사를 지냅니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20년 전에 사별하셨기에, 아버님의 형제들과의 왕래도 거의 없습니다. 사실 며느리로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하는 때가 바로 4월의 결혼기념일이지요. 연중행사가 드물다고는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4월의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정말 귀찮습니다. 그렇지만 살아보니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더군요. (결혼 전에는 무척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상을 차립니다. 의미를 붙여보자면, 어머님 생일상과 아버님 제사상과 기타 축하할 일을 모두 끌어모으는 기분으로 상을 차립니다. 늘 사업으로 바쁜 시댁 식구들을 보면 내가 밥 한 번은 차릴 수 있지 라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상을 차립니다. 그러합니다. 더 당당하게 요구하고 MZ세대처럼 할 말은 하고, 자기의 권리를 찾아야 하는데, 좀 어설프게 MZ세대에 걸리는 본인은 은연중에 내 엄마의 행동을 내재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식의 기억이 별로 없는 유년시절, 그런 경험은 내 손으로 음식을 장만하게 하는 동기로 작동합니다. 이제나마 알게 된 집밥의 위안 같은 것)


결혼을 하면서 해가 갈수록 적응해가야 하는데, 더 많은 의문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요즘은 책을 읽으면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해주는 문구들에 오래도록 머무릅니다.


그 문장들을 갈무리해 덧 붙여 봅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버지나 남자 형제로부터 돈을 얻어내기 위해 매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의 권한으로도 경제적으로 그녀에게 벌을 내리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필요해서 종종 무의식적으로 찬탄과 반감이라는 감정에 휘둘렸다면 이제는 정말로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마침내 사심 없는 영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p117,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내가 -남편과 어머니로 대표되는- 시댁에 굴복한 것은 결국, 돈, 경제권 때문인가, 생각해보며)


저 완벽한 식탁을, 저 미소 짓는 아이들을, 저 흡족해하는 남편을, 저 반짝이는 주방을 보라. 이런 이미지들, 완전무결함의 이상은 구체적 세목들을 꼭 집어 가리킴으로써 거기 담긴 메시지에 새로운 성격의 유혹과 긴급성을 부여했고,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그 메시지들을 서서히 퍼뜨렸다. 가사 노동의 그 모든 고된 일들- 문질러 닦고 먼지를 털고 요리하고 양육하는 그 모든 기운 빠지고 단조로운 무보수 노동-은 완전히 지워버리고 오직 그 열매만을 보여주는 이미지들 말이다. (중략) 맛난 성찬을 차리기 위해 혹은 욕실 타일을 반짝반짝 빛내기 위해 혹은 남편과 자녀들을 평온하게 해 주기 위해 실제로 여자들이 해야 하는 고단하고 지루한 일들은 전혀 볼 수 없었고, 그 노동을 둘러싼 갈등의 증거나 그 뒤에 자리한, 연필처럼 가느다란 욕망이라는 개념에 대한 절망 역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p125, <욕구들>, 캐럴라인 냅


나는 어머니가 주기적으로 아버지의 동료들을 위해 칵테일파티에서 안주인 역할을 했던 것도 기억하는데, 어머니는 그 역할을 몹시 싫어하면서도 우아하게 수행해냈다. 점잖은 미소를 띤 채 집에서 구운 고기 파이와 크래커를 쟁반에 담아 나르던 여자. 거기에 따르는 수고(종일 먼지를 털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고기 파이를 만들고 욕실을 문질러 닦고 작은 비누들과 타월들을 채워 넣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하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시에 암묵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다음 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얼마나 피곤해 보였는지도 기억한다. 지금도 나는 그 뼛속 깊이 느껴지는 기진맥진함이 거의 전적으로 감정적인 피로였음을 안다. 그것은 사람이 주고 또 주고도 자신의 몫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받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분노 서린 피로다. p130, <욕구들>, 캐럴라인 냅


(내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의견과 취향에 대한 것을 답할 일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내가 답하는 말은 아이가 어떠어떠했어요. 네 이제 (둘째도)화장실은 가려요. 유치원에서는 몇 시에 돌아오지요. 와 같은 전적으로 내게 기대되는 엄마 역할에 관한 질문만이 있을 뿐. 육체적인 피로도 한 몫하지만 여기에 감정적인 피로가 빠질 날이 없다는 게 이 역할 속에서 느끼는 무력함이다.)



Photo by rawkki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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