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의 담임선생님은 <경계성*>이라고 말했고, 우리 집은 마치 폭탄을 맞은 듯한 꼴이 되었다.
*경계선지능 지능 지수가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 71~79, DSM 기준 71~84로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으로 분류되는 상태로 느린 학습자라고도 한다. 평균 지능에 비해 학습능력과 사회성이 낮으나 비장애인과의 차이가 적기 때문에 경계선으로 불린다. 지적장애에 포함되지 않으며 사실상 비장애인에 포함이 되지만 지능 수준이 비장애인과 지적장애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경계선 지능이라고 한다.
우리가 미처 모르고 지났던 것 아닐까?
아이가 묻는 말에 답하지 않는 건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닐까.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도 겁내지 않는 것은 아이가 용감하고, 대범해서가 아니라 위험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닐까.
아이가 알파벳과 숫자 배열에 집중하는 건 규칙과 패턴에 집중하는 자폐의 주요 증상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아이가 버스를 기다리며 인도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은 감각추구를 위한 상동 행동이 아닐까.
한순간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유의미하게 보였다.
자폐스펙트럼에서 보이는 행동들과 겹쳐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고, 보통 또래가 할 법한 의사소통 기준에 확연히 떨어지는 언어능력이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경계성이라고 검색했을 때 함께 나오는 지적장애. 장애. 두 글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이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부모가 도착하는 곳은,
부모로서 제대로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최악의 진단명. 그 두 가지이다.
우리는 가장 결정적인 조기 개입이 이루어지는 36개월이 지났음을 확인했고, 우리 아이 앞에 놓인 길은 자폐나 자폐스펙트럼일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병원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으셔야 합니다.
정보를 찾고자 가입한 카페에서는 다들 한 목소리로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빨리 예약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병원에 갔다가 정말 진단이라도 나오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 그렇지만 이럴 땐 자폐 같은 행동인데, 이런 부분은 또 괜찮지 않나? 하는 건 정말 자기 위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은 진단이 가능한 병원 리스트를 정리하고 전화를 돌렸다.
<어머님 예약 가능한 날은 2023년 3월입니다. 오전 오후 언제가 좋으세요?
지역에 유명한 소아정신과(재활과)는 2년의 예약이 다 차 있었다.
아이의 문제가 문서화된다는 두려움은 곧 과연 초진 진료와 검사를 제때 받을 수 있기나 할까 하는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언제부터 소아정신과가 이렇게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되었을까? 내가 몰랐던 세계의 문을 연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기민한 엄마들이 많구나. 아니, 나처럼 무딘 엄마가 드문 거겠지.
이름난 전문의를 찾아 기약 없는 2년 후, 3년 후 대기를 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디든 검사가 가능한 곳이면 최대한 빨리 내원해보자는 생각으로 더욱 촘촘히 병원을 살피기 시작했다.
발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B소아청소년과는 초진 후 그다음 주에 바로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초진 펀치에(내 태도를 문제시 말했다. 엄마가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계셨나요? 엄마는 아무런 감정이 안 드나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기에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검사는 3시간씩 이틀에 걸쳐 6시간이 소요됩니다. 비용은 60만 원입니다.
막상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 자체는 긍정적이었지만,
그와 함께 과연 아이가(산만한 아이가) 6시간의 검사를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대개 10만 원-20만 원 선에서 진행되는 검사가 60만 원이라고(검사 결과를 받고 보니 풀 배터리 검사, 종합검사 격이었다) 친히 안내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앞에 두고 과연 이렇게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하고 60만 원의 거금을 들여 이 사람과 또 만나야 할까라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검사가 필요했고, 그것이 가능한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