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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06. 2021

심리상태가 쓰레기인 상태에서 심리검사를 받으면 생기는일

- 과장된 자기 제시 척도

다면성 인성검사(MMPI-2)

: 검사의 타당도 척도에서 [과장된 자기 제시 척도]가 76T로 높았고, 이것은 응답자가 검사 항목에 대하여 매우 방어적으로 답변하여 검사 분석이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심리상태가 쓰레기였다. 자주 무력했고,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싶었다. 쉽게 말하면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했고, 계획 없이 담금질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는 그냥 모든 것을 놓고 그대로 소멸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무간도에 등장하는 무간지옥이 자주 떠올랐다. 끊임없이 고통받는 지옥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혼에 있어서 내가 점차 소멸해가는 기분이었으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는 또렷한 엄마의 역할이 요구되었다. 나는 무엇도 선택할 수 없으면서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지사장 같은 꼴이었다. 


남편의 긴 해외출장은 한편으로는 숨을 돌리게 했으면서도, 또다시 육아에서 혼자 밖에 감당할 수 없음을 반복해 확인하는 무정한 일과로 작용했다.


7년의 성장과 7년의 아토피로, 내게는 전문의를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긴장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아이의 치료이면서도 동시에 엄마를 꾸짖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분야의 전문의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유치원으로부터 온 피드백. 발달장애가 의심된다는 조심스러운 의견 때문이었다. 소아정신과 대기가 3년 일 줄이야. 나는 세상 돌아가는걸 너무도 몰랐다. 내가 아토피에 집중하는 사이 세상은 이전보다 더 다양하게 엉망진창으로 복잡해졌다.


이럴 때는 엄마 없이 엄마로 병원에 가서 보호자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죽을 맛이다. 나 역시 아직도 치과를 간다면 곁에서 뭐라도 한 마디 더 거들어줄 엄마를 찾고 싶을 지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장 빠른 초진과 검사가 가능한 발달센터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았고, 마주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선생님은 아이 발달검사에는 엄마 검사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양육자로서 답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적응행동 검사, 양육스트레스 검사, 아이와 엄마의 기질검사) 엄마의 심리검사가 진행된다고 했다.


초진에서도 면담이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나의 바사삭한 심리상태를 의사가 간파할까 봐. 일반적인 양육자가 내뿜는 건강한 아우라가 아닌, 어딘가 찌든, 세상만사를 다 포기한 나의 심리를 그가 알아챌까, 그 음습한 기운이 내비칠까를 경계했다.


심리검사에서 우울감이 높게 나오거나, 폭력적인 기질이 나온다면, 결국 아이의 발달에는 그러한 양육자의 태도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불 보듯 뻔한 결말을 검사비 60만 원을 내면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로서 나는 무력한 부분이 있다. 아이는 엄마의 성적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어딘가 일반 아이들과 다른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는 모험이며 시련의 연속이다. 세상 모든 건강박사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우리는 정말 없던 대인기피가 생길 지경으로 많은 이들의 접근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 선생님이 아이가 원래 눈 마주침을 피하나요?라고 했을 때, 자폐나 자스를 의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었던 상황들에 대한 읍소를 이어갔다.)


양육자로 답해야 하는 검사지를 끝내고, 내 앞에 놓인 심리검사지를 펼쳤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 마치 대학생 때로 돌아간 듯, 나라는 사람에 대한 탐구를 떠나는 청연의 꿈을 안은 청년과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늘 구깃구깃 넣어둔 7번째 자아를 꺼내듯 자연스레 그를 불러내 길고 긴 검사지의 공란을 채워나갔다. 그래 나는 이런데, 이런 경우에는 보통 이렇게 하지, 범법을 가끔 하냐고? 아니 그렇지는 않아. 진실하게는 살려고 노력하지. 하면서 내가 생각한 이상적 나에 이입해 거침없이 답안을 채워나갔다.


그리하여 결과는 과장된 자기 제시 척도가 매우 높게 나왔고, (75T까지가 정상 범주, 그 이상이면 해석하지 않는다) 나의 심리는 간파당하지 않았다. 심리를 분석당하고 싶지 않다는 부분은 간파당했으니, 어쩌면 정말 잘 짜인 검사 모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지를 받고 보니 내가 우려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10장이 넘는 풀 배터리 발달검사 결과지에 내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 그것은 현재 아이 상태에 주양육자인 엄마의 태도에서 기인했다는 문서화된 확인을 받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Title. Photo by Jené Stephaniu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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