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에 마음이 흔들린다.
면접.
그간 그 일도 이제 돌이켜보면 10년이다. 떨어진 면접들이 생각난다. 면접관에게 도달하지 못했던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대답들이 또 생각난다.
왜 나를 안 뽑는 거지?
그 시절 나를 괴롭히던 물음들. 다시 오버랩되는 기분이다.
면접이라는 단어는 설레면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공식적으로 거절당하는 과정은 몇 번이고 경험해도 전혀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 일단 가보지. 지레 겁에 질려 못 갈 건 뭐야.
손으로 이력서를 써오라니 좀 쎄한데, 그래도 어려울 건 없지. 하면서도 혹시 몰라 이력서 서식을 같은 걸로 두 장을 출력했다. 볼펜으로 썼다가, 2.5mm 하이테크 펜으로 다시 썼다.
그간의 공백을 뭐라고 말해야 납득이 될까. 회계 서류 쓰는 건 안 해봤으니 배우면 잘할 수 있다고 할까? 그나마 있는 경력을 보고 부르는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다 일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바로 “네 다음 지원자.” 려나?
집에서 멀지 않아 걸어갔다. 걸어가다가 대충 사무실 근처인 것 같아 종이가방에 따로 담아온 구두로 갈아 신고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입구에는 긴 회의용 테이블이 놓여있고, 안쪽으로는 책상이 두 개씩 마주 보는 식으로 되어있는 아담한 공간에 한 자리만 사람이 앉아 있다. (들어보니 다들 외근이 잦다고 한다.)
가장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질 것 같은 자리는 어제 전화를 준 직원의 자리다. 5명이 근무하는 작은 회사로, 당연히 대표와 면접을 볼 줄 알았는데, 전화 준 여직원과의 면접이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대체 근무자를 뽑는 건가요?>
<아뇨, 정직원 뽑는 거고, 일을 하게 되시면 저랑 같이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회계 장부는 수기로 쓰고 있어서 필체가 너무 알아보기 힘들면 좀 어려운 일이라 이력서 자필로 써오라고 한거구요.>
아, 왜 대표 면접이 아닌지를 알겠군. 본인의 업무 보조가 필요한 거군.
<아 일을 꽤 오래 쉬셨네요. 결혼은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계속해 방어전이 펼쳐지는 면접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이제 학교 가면 쭉 일과 보내고 오후 5시에나 집에 오니, 손이 갈 일이 없고, 남편은 2년 전부터 재택근무라 제가 이제는 일을 해도 되는 상황이라 최근부터 구직활동을 시작했어요.>
이상하게 대답하면 할수록 구차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남편은 자신이 전적으로 서포터를 하니 그 점을 어필하고, 이 정도 회사 규모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 등 나름의 팁을 미리 주었지만.
전적으로 내 앞에 앉은 직원이 원하는 포지션의 경험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었음을 면접이 이어져가며 알게 되었다. 그 외에 다른 말로 포장하려 해도 그녀가 원하는 바와 내가 말하는 바는 평행선처럼 제각각 뻗어 나갈 뿐이었다.
<혹시 일하시다가, 아이 때문에 일찍 가셔야 하고 그러시면...>
<저도 그런 거 제일 싫어합니다. 예전에 근무할 때 눈이 많이 와서 출근은 안 한 직원이 있었어요. 눈이 많이 내리는 상황에서 신발 다 젖어가면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좀 놀랐었죠.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쪽 업무 경험만 더 있으셨어도...>
라는 말로 짧게 마무리된 면접은 사실 “다음 지원자.”라는 뜻과 같았다. 그래도 결정되면 연락 주세요. 안되더라도 연락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르려고 골목골목을 지나쳐 걸어 내려오는데, 아닌 걸 알면서도 아쉽고 한편으로는 최저 시급에 맞춘 월급의 이 보조 격인 일에서도 거절을 당하니 서글프고.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나의 일을 10년간 하면 그래도 그 분야의 전문가 비슷한 인정을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돌봄과 가사노동에 올인하는 ‘엄마’라는 역할에는 그 모든 것이 하나도 인정되지 않음을. 기혼여성에게 엄마는 디폴트 값처럼 당연히 그래야 하는 미덕처럼 여겨지는 이 모든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목요일 금요일 이틀 더 지원자 면접을 봐도 충분히 보겠네.
그리고 1주일이 지나 들어간 채용사이트에서 내가 지원한 회사의 공고는 내려가고, 채용 완료로 상태가 변경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