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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Mar 02. 2022

나만 이제 알았어? ‘국민취업지원제도’

복직의 뜻은 크지 않았다.


현모양처, 좋은 엄마가 꿈은 아니었지만, 낳고 보니 어른 팔 하나 정도 되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다시 일하러 간다는 것은 꽤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모성애가 마구 솟구쳐 올라서가 아니라, 내 몫의 책임감을 온전히 느끼게 된 첫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될 대로 되겠지’, 도저히 내 의지로 밀고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될 대로 되라지’의 스텐스를 고수했었는데, 이건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니면, 10개월간 안전과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던 곳에서 떨어져 나온 (갓 나온) 이 아이를 누가 이렇게 돌보지? 정확한 심정은, 돌볼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우선순위의 최상위를 차지한 아이는, 무려 하나에서 둘이 되었고(둘째 탄생) 바깥세상의 일들은 점점 더 요원해져 갔다. 어떤 스타일이 유행하는지, 무엇에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어떤 사건들이 오르내리는지에서도 점점 멀어져 갔고, 시간 날 때마다 접속하는 세상은 7개월 아이의 낮잠시간이라든지, 집안 곳곳의 모서리 방지대라든지, 이유식을 시작하면 분유는 몇 번으로 줄여야 적당한지, 아기, 육아 템, 육아맘이 전부인 곳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 곳곳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은 분유, 이유식 수저, 범보 의자, 바운서가 되고 그 자리에는 공룡, 카봇, 지붕카 들이 들어찼다가, 바닥 매트와 색색의 블록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풍경이 한 동안 펼쳐졌던 것 같다. 닳도록 쏟아붓고 다시 담고를 반복하던 장난감들은 이제 꽤 오랜 휴식기를 갖고 있다. 이러다 ‘토이스토리3’의 친구들처럼 다시는 상자 밖을 나오지 못하는 때가 되려나. 아이들의 관심사는 이제 딱 손바닥만 한곳에 집중된다. 핸드폰이거나 콘솔 게임기. 


아이들 세상에 태양 같던 내 자리는 이제 지구 옆 옆 옆에 있는 수성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제는 집에 있는 것보다 태권도, 토요 축구, 학교 가는걸 더 좋아한다. 엄마가 같이 태권도장에 따라가서 회비 내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 먼저 뛰어서 후다닥 들어간다. 뒤도 안 돌아본다. 컸다. 훌쩍 자랐다.


벌써고 휴먼 계정이 된 워크넷 아이디를 찾아 휴면 해제를 시키고 들어가 보니, 이력서는 2011년에 멈춰있고, 공인 어학성적은 10년 전 만료되었다. 


10년 후 이력서 업데이트할 것이 없다. 10년 돌봄 노동은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지 않는 한 전혀 쓸모가 없었다.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해본다. ‘그래 국비로 운영되는 자격증 수업을 찾아보자.’


그 와중에 로그인 창 왼쪽을 차지한 6개의 메뉴 중 <국민취업지원제도>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고용노동센터에서 주관하는 취업지원 서비스+ 구직촉진수당 50만 원씩 x 6개월을 지원받는 제도였다.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니 비경제활동으로 지원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나는 만 나이 34세로 <<청년특례>>로 신청 가능했다. (아직 청년? 나라에서 인정하는 청년이구나, 나!)


https://www.kua.go.kr/uapca010/selectEmssRqutIntro.do 여기서 신청 조건을 확인하고,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 나의 기본적 인적사항과 함께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 정보를 함께 입력해야 하는데, 재산상의 증빙서류들이 필요해 약간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주거(+대출)와 소유한 차량과 부동산 등 생각보다 촘촘하게 기록할 것을 요한다. 


그리고 심사도 꽤 오래 걸렸다. 접수 후 17일이 지나서 1차 자격요건 심사가 끝이 나고 결재 서류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화 문의를 하고 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20여 일이 지나서야 서류상 수급자격인정이 되었고, 관할 고용센터에서 위탁한 직업상담사와 매칭으로 또 며칠이 걸렸다. 넉넉잡아 서류심사와 통보에 한 달을 보면 되겠다. (특히 수도권과 광역시가 시일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결과 통보를 기다리다 사이트나 문자 알림이나 통 없어서, 전화를 걸어보니 마침내 이름을 아시네? 네 접니다. 심사는 언제 되는 건가요? 네 결재가 올라갔으니 결재 승인 나는 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실 겁니다. 네.


나는 여러모로 불안했다. 다가오는 3월이. 상반기가. 2022년이. 36세가.

2월에 이미 면접에 한 번 떨어졌고, 미래의 내가 뭐라도 통보를 받을 수 있게 과거의 나는 지원 가능한 곳을 찾아 이력서를 넣어야 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지원대상이 된다면 6개월은 진로탐색을 위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19-34세 청년층이라 선발된다면 이전 취업여부, 재산소득(중위 120%) 조건 상관없이 50만원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다. 작년 낸 세금이 0원, 인스타 광고로 뜬 세금 환급 프로그램에서 조회해봤더니 이렇게 뜬다. 내 이름으로는 소득이 없었다. 1도 없었다. 나는 내 통장에 파란색 입금 내역이 뜨길 기대했다. 국민취업제도에 선발된다면 6개월은 파란색 내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사이트의 상태가 변경되었다. 


1유형(선발형-청년심사 상태- 수급자격인정


그리고 전화가 울렸다. 노란색이 시그니처인 마트의 스태프를 뽑는 인사담당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다. 


<정오드님이시죠? 구직하셨나요? 면접 보러 오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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