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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Sep 18. 2022

나는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나는 운이 참 안 좋았다.

밤, 귀가하던 길에 들른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당했다.


나는 운이 참 좋은 편이다.

9일 만에 피의자는 검거되고, 증거가 되는 핸드폰도 압수되어 수사자료로 넘겨졌다.


나는 운이 참 안 좋았다.

지금 고개 들면 안 되는데, 고개 들어서 보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기어이 고개를 들고 피의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운이 참 좋은 편이다.

소리를 질러 화장실에 매달려 있던 그를 내쫓았고, 화장실 앞에 서있던 여성들은 목격자가 되어 함께 진술해주었다.


그는 잡혔지만, 나는 두려웠다. 


최초 사건 진술을 위해 관할 경찰서에 출두해야 하지만, 나는 성범죄피해센터로 운영되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여성 경찰과 국선변호인을 두고 진술했다.


김 이 박의 한국 3대 성씨가 아닌 나는, 내 이름이 그에게 기억될까 봐 두려웠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내 얼굴을 기억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압수된 그의 핸드폰과는 달리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자유롭게 활보를 하고 다닐 텐데. 흔하고 흔한 이름을 하나 떠올렸다. 나는 그 이름을 써서 진술을 했다. 나는 K면서도 Y였다.


공판이 진행되면서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스마일센터라는 곳에 나의 심리상담을 의뢰했다.


스마일센터는 법무부가 설립한 범죄피해자 전문 심리지원기관으로, 강력범죄 사건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리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의학적 진단, 심리평가, 심리치료, 법률상담, 재활교육 등을 진행하는 곳이다. (범죄 발생으로 주거지 내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주거가 가능한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나는 Y로 불렸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드리는 게 편하실까요?) 

Y님 요즘 수면은 어떠세요? 

Y라 부르는 상담사에게 대답을 하면서 어쩌면 나는 Y라는 자아 속에 사건을 당한 나를 가둬두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Y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지. Y는 어떻게 하면 괜찮아 질까.


심리상담사는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의도적으로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가급적이면 사건 관련된 뉴스나 기사들은 보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물론 Y님이 그러한 사건을 겪고 그 전으로 일상을 돌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Y님이 그 전처럼 살 수 없다는 말도 아니에요.>


신당역, 화장실이라는 키워드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기사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2022년 신당역, 화장실을 순찰하러 들어간 여자 역무원을 기다린 남자가 있었다. 그 사건은 정확히 나를 지난 11월로 데려갔다.


나는 그때 당시 그 사건으로 인해 약간 각성상태로 지냈었는데, 너무나 쉬운 범죄 상대가 되는 여자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10대, 20대, 30대가 많이 모이는 각각의 커뮤니티에 사건에 관해 글을 썼다. 자녀가 있는 여성들은 한 목소리로 성토했다. 


너무 무서운 세상이라고. 


11월 저녁 10시 반경, 1호선 지하철 역사 내 화장실에서는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마음먹고 화장실에 숨어든 그는 피해자의 저항을 대비해 무언가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의 손에 무엇이 들린 지를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나왔다. 그는 도망쳤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운이 안 좋으면서도 좋은 편이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라는 말 조차도 괴롭다.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쓰레기였다.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녀가 특별해서, 관계적인 특이점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녀는 참혹하게 상처를 입고,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졌다. 여기에 그녀의 잘못은 없다.  


나는 그 기사를 읽었다고 심리상담가에게 말했다. 마주 앉은 상담사는 아 하는 짧은 탄식 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왼손의 손목시계를 한 번 쓰윽 훑더니 될 수 있으면 관련 기사는 안 보시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그 기사를 안 본다고 일어난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듯한 안경과 머리를 하고 나오는 법무부 장관은 왜 검사가 강력범죄를 수사하면 안 되냐고 성토했다. TV 속 그의 모습은 어항 속에서 뻐끔되는 금붕어처럼 보였다. 350차례 전화를 걸고 스토킹을 하며, 이미 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던 피의자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강력범죄를 왜 수사하면 안 되냐고?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피의자를 왜 구속 수사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그녀를 가엾다고 생각해 신당역 추도 공간을 찾는 게 아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안고 그곳으로 향한다.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겠지.라는 두려움은 현실에서 증폭된다. 2016년 강남역은 2022년 신당역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photo by. Maarten van den Heu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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