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오드 Oct 31. 2022

국민적 트라우마가 시작되었다

지난주 토요일(10.22)은 서울 시청역 집회에 있었다.


경찰 추산 1만 6천 여명이라고 했지만 적어도 열 배 이상, 10만 명은 거뜬히 넘어 보였다. 시청에서 삼각지역까지 가는 시민 행렬이 3.5km가 넘었다. 가는 길마다 경찰은 차도를 확보해 시민들이 걸어 나갈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많은 경찰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대규모의 경찰차와 경찰인력이 동원되었던 집회는 그 수가 무색하게 1만 6천여 명으로 집회 참가자를 최종 추산했다. 경찰 발표 1만 6천여 명에서 많게는 2만이 되었을 그 집회에서 나는 1m 간격으로 서 있는 경찰을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그날 선두에 서서 먼저 삼각지역에 도착한 시민들은 거기서 해산 후 저녁을 먹었고, 숙명여대까지 걸었던 후발대는 숙대 역에서 해산하겠다는 집회 주최자들의 의견을 따라 그곳에서 해산했다.


2011년 10월 31일 이태원에 있었다. 친구와 지중해식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이태원 대로를 걸었다. 대로를 가로지르는 멋진 퍼포먼스들에 행진하는 이들을 따라 함께 걸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태원의 할로윈 모습이었다.


2022년 10월 22일 시청역 / 같은 날 서울역 행진 중/ 2011년 10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는 13만 이상의 시민이 모였다. 거기서 154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나는 창녕 우포늪의 숙소에서 이 뉴스를 듣게 되었는데,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누군가가 할로윈 데이에 짓궂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같은 시간 이태원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도, 바닷가 마을의 예고 없는 쓰나미가 들이닥친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저 사람들이 할로윈 데이를 즐기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가족의 죽음도, 아는 누군가 죽음도 아니지만 마음에 납덩이가 걸린 듯 답답해졌다. 2014년 4월 내도록 무거웠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주최자가 없기 때문에 책임도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은데, 화면에 나오는 분들은 아무도 책임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게 어딨을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오버 랩 되는 상황은, 지워서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뿐이다. 청와대는 국가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나는 이상하게 느껴진다. 아침 일찍 민트색 방위복을 입고 용산 이태원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장례에 관한 모든 것을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분을 보고 있자니 사후 약방문 다섯 글자로 심정이 정리가 된다. 지금 같은 빠른 대응으로 사전에 대비했으면 이런 어처구니없고, 허탈하기까지  일이 2022년에 일어났을까. 지금은 2022 아닌가.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 할로윈이 아니다. 코로나19 이전 매년 10월 말일이면 사람들은 할로윈 축제를 즐기려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별스러운 건 지금이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 왜 이렇게 크고 잔혹하게 우리의 일상은 찢어 놓는가.


행정안전부 장관은 자신이 이 사건에 대해 느낀 솔직한 심정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전국에 생중계했다. 경찰을 더 배치했어도 참사는 피할 수 없었다. 뉴스에 나온 이태원의 가게 사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밀려드는 인파에 비해 경찰은 턱없이 부족했다. 행안부 장관은 같은 날 서울 시내에서 열린 집회와 시위에 경찰인력 소요가 많았다고 했다. 이태원의 할로윈 축제와 연관관계가 없는 집회, 시위의 인과 관계를 만들어 낼까 봐 나는 겁이 났다. 집회 인원수는 축소하면서도, 경찰 배치는 최대로 늘리고 있었다.


그럼 대체 서울 시내의 집회는 왜 열리는 걸까. 모든 것은 맞물려 있었다. 제대로 대의되지 않는 민의는 시민들을 불러냈다. 답답한 마음은 나 혼자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집회는 10 여 차례가 넘게 열리고 있지만 언론은 별로 주목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 많이 불러내는 효과를 낼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태원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턱없이 부족한 구조인력에 심폐소생술에 나섰고, 운집하는 인파를 걱정한 시민들은 200여 차례 넘게 관할 경찰서와 소방서에 신고를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오늘 아침 화면에 얼굴을 비춘 이들이다.


블루칼라 출신의 부모님은 누굴 뽑아도 우리 사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 변한 건 하나밖에 없다. 나는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다. 엄마, 변한 건 한 사람뿐인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있어. 지금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사자성어는 ‘각자도생’이라는 거. 그럼 우리는 왜 우리 주권의 일부를 나랏님에게 위임할까.


2022년 10월 29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괜찮을 수가 없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라는 인사가 새삼스럽다. 밤새 안녕하기란, 여기 지금 안녕히 아침을 맞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Title Photo by Paul Bulai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나는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