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사소하다.
무언가 열중하고 있는 동생에게 치근덕되는 첫째에게 할거리를 만들어 준다.
< 좀 한가해보이네? 수학문제나 좀 풀어볼까? >
뜨억하는 표정으로 굴러다니는 연필 한자루를 쥐고 문제를 건성건성 풀어나간다.
< 다풀었어요~ >
하고 휘리릭 사라지는 첫째. 빨간 돌돌이 색연필을 들고 두 바닥에 걸친 문제들을 매겨본다.
< 아니 갑자기 여기서 5가 왜 나오냐고? (474를 10씩 뛰어서 징검다리의 빈칸을 채워가는 문제였다. 어쨌거나 끝자리는 4로 끝나야 하는 문제의 답이 535라고 되어 있다) >
그리고 다시 식탁 앞에 등장한 첫째와 왜 틀렸는지를 살펴본다. 왜 틀렸는지 함께 풀면서 나는 또 참지 못하고 거든다.
< 실수도 자꾸하면 실력이 되는 건데, 좀 집중해서 풀어 보지? >
이해가 잘 안됐다거나, 혹은 아 실수에요. 라는 말이 주 레퍼토리로 등장하는데 갈수록 느는건 확실히. 말대답이다.
내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간 것은 아마도 오늘 아침의 대화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침 먹기 전에 첫째 둘째가 사이좋게 게임 한판씩을 하고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 와 오늘은 그리랑프였어요 >
< ? >
< 뚱안이랑 나랑 그리랑프로 했는데, 내가 이겼어요. >
그니까 지금 말하고 있는게 '그랑프리'라는 말이지? 그랑프리가 그리랑프가 되는 마법같은 표현능력.
비슷한 예로 엄마 오늘 문제장 풀까요? 는 수학 '문장제' 문제집을 말하는 것처럼, 마치 단어를 거울에 비춰 보듯 말하곤 하는데, 나는 그게 참 심려스러웠던 것이다. 이건 분명 난독증이 아닌가.
평소에 도서관에 출근하듯 드나드는 나는 매번 동화책과 학습만화를 가방 한가득 안고 귀가한다. 오늘 골라온 동화책이 얼마나 재밌는지 책을 펴서 세상 다정하게 너 한바닥 나 한바닥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읽어나가는데, 꼭 아이는 문장 중간중간 단어를 빼먹는다. 자연스럽게 빼고 넘어간다. 급하다. 빨리 읽고 본인의 볼일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니 내가 보기엔 님이 난독증이 좀 있는것 같은데, 정성스레 읽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첫째 너님 아니세요? 하는 것이 오늘 한데 뭉쳐져서 한 문장으로 아이를 향해 날아갔다.
< 너무 건성건성 하는거 아니에요? 집중해서 하면 안되요? 밖에 나가서 엄마 아들이라고 하지 마세요. >
아이의 자존감을 납작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떤때는 가족사이가 더 잔인한 법이다.
그 말을 들은 첫째는 뭐라고 항변을 하더니, 흠 그럼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지라고 하면서 식탁 위 A4에다가 슥슥 무언갈 적어놓고 욕실로 사라졌다.
노트북 앞에 놓인, 반 접힌 종이를 펴서 보니 간략히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충분하다!'
실소가 나오는데, 이건 슬픔도 좌절도 기쁨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이었다. 그래 내가 졌네, 화내고 너의 인격을 깎아내린 나란 엄마는 소인배 인정. (요즘 친구들말로 킹정하는부분)
올해 10살이 되는 첫째는 생각보다 괜찮은 회복 탄성력을 보여줬다.(이정도인줄? 이건 정신승리 비슷한 요법 아닌가?) 나랑 닮은 구석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서면으로 정리해서 제출할 때면 어쩐지 나랑 비슷한 구석을 발견하게 되고,
(ex) 아빠와의 갈등으로 즐겁게 다니던 태권도를 그만두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이럴거면 태권도도 가지말고의 전술에 빠져들었는데) 급히 빈종이에 무언갈 적어서 아빠가 있는 방문 밑으로 슬쩍 밀어 넣었다. '내가 계속 태권도에 가야하는 이유' 라는 설득의 글이었다)
나도 저 나이때 저렇게 단어를 틀리게 많이 적었을까 하는 맘에 들여다 본 초등일기장에서 꽤나 빈번한 오탈자가 등장했다는 걸 확인하고서는 아이 일기장에 오탈자 찾아내기를 그만두었다. 그래도 국어 문법에 대한 책들아래 달린 숱한 부모 리뷰에서 5학년인데도 아직 국어 문법이 서툴러서- 라는 글을 볼때면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차차 나아지겠지가 아니라, 이대로 오류있는 단어대로 고착화되어 기억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든다. 전형적인 K부모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라는 육아서의 고귀한 문장은 오늘도 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