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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Nov 07. 2020

남편과 24시간 같이 일하는 기분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남편을 맞이하는 법

남편은 작년 한 해 대한항공 100회 탑승을 달성했다. 

그만큼 출장이 잦으며, 주 업무의 특성상 외근과 출장이 필수적이다.

그것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

코로나19가 퍼지면서, 마지막으로 다녀온 일본 출장 이후로는 발이 묶이게 되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에 본사인 핀란드에서는 모든 직원의 안전을 위하여 재택근무를 결정하게 되었다.


처음 재택근무를 하던 때는 아이도 학교를 가지 않는 온라인 개학이 함께 였고, 위험에 대처하는 모든 처방들을 전 국민이 취하던 때이다.


그러면서 상반기, 여름방학, 두 계절이 지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활 방역인 1단계로 격하되며 다행히도 아이가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월, 목에는 주간 정규 미팅이 오전에 한 번, 본사인 핀란드 시간에 맞춰 오후에 한 번 열리는 식이었다.

나머지는 그때그때 올라오는 안에 따라 온라인 미팅의 인원이 구성되며 시간은 랜덤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부부가 되어 한 집에 살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남편이 일하는 것을, 일하며 주로 어떤 전화를 받는지, 어떤 회의가 열리는지,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언제 아이를 등교시키고, 아침을 치우고 점심을 준비하는지, 한낮에 큰 아이 학교 마친 후 어딘가 들러 아이들을 활동시키고, 양 손 무거운 장을 봐와서 어찌어찌 후다닥 저녁을 해 먹이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두 아이를 2년 터울로 키우면서 육아휴직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남편은 작년 12월 둘째를 출산한 팀 내의 다른 동료에게 그 기회를 양보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가졌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의도치 않은 육아휴직과도 같은 일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곤히 단잠에 빠진 작은 아이를 깨우지 못하고, 내가 큰 아이를 데리고 후다닥 등교를 나서더라도 둘째를 건사하여 아침을 먹인다던가, 작은아이와 아내가 마실을 나섰다가 미처 큰 아이 하교시간을 맞추질 못할 때 대신해서 큰 아이를 맞으러 학교 앞에 간다던가.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보이지 않는 손 처럼 일상을 보조해 나갔다.


남편이 다시금 회사로 일상 복귀를 하려고 하던, 여름휴가가 끝나가던 8월에 광복절 집회로 인해 전국발 코로나19 재유행으로 회사는 재택근무 시스템을 연장했고, 본사 역시 전 세계적 2차 유행을 예견하며 영구적인 재택근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사무실을 반으로 축소하며, 오픈 오피스 형태를 통해 필요할 경우 오프라인 미팅을 진행 나머지는 현재와 같이 셀프 매니지먼트(self-management), 온라인 미팅을 통해 안건을 논의하는 재택근무형태 유지.


나는 8년간 아이들을 키워오면서도 매 순간이 버거웠다.

아이를 깨워 아침에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그 순간도 늘 두려웠고(안 가고 싶은데... 하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서 나서지?), 저녁을 하면서도 이렇게 시간과 노력 들여 저녁상을 차리는데 잘 안 먹으면 어떡하지? 하는 별의별 쓸데없는 걱정들까지... 있다가 없는 남편에 대한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 전이된걸가. 여하튼 많이도 두려워했고 버거워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덜어준 것이 바로 남편의 재택근무였다.

비록 내가 제대로 완벽하게 못하더라도 내 자리를 메워 줄 남편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서도 다음날 아침 눈뜰 것이 두렵지 않았고, 한 아이만을 돌보더라도 육아 동지가 다른 아이 하나를 나만큼 돌봐줄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든든했다.


남편의 재택근무로 삼시 세끼 까지는 아니지만, 삼시 이끼 정도의 부담감을 안고 주방에서 에이프런을 두르기도 하지만, 육아 동지를 위해 삼시 이끼의 복지는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쁨의 밥상을 차린다.


남편은 영구적 재택근무를 맞아, 둘째가 태어난 뒤 처음으로 앞날을 계획할 수 있는 일상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못했던 공부 더 해보는 건 어때? 대학원 과정 한 번 알아봐.> 하며 가슴속의 잠든 꿈마저 깨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그러나 오랜 시간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바로 <Yes!> 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남편 먼저 해보는 건 어때요?> 라고 답했고, 엊그제 동네 우체국에 들러 남편 이름이 적힌 대학원 지원서류를(지원은 온라인으로, 입학 관련 증명 서류들은 우편으로 접수) 특급 등기로 부쳤다.


재택근무하는 남편을 위한 내일 두 끼를 위한 레시피를 뒤적거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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