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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Nov 04. 2020

무교인 며느리가 여호와 증인 시어머님을 만났을 때

결혼을 하기 전에는 어머님이 교회를 다니신다는 이야기를 흘려 들었다.

결혼 당사자인 우리 두 사람이 좋다는 한 가지 사실이 이 결혼의 시작과 끝이었기에, 혼수니 예단이니 사주니 팔자니 어느 날이 길일이라더라 하는 것은 우리 결혼에 고려사항이 되지 못했다. (전적으로 양가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를 신뢰하셨다. 네가 고른 사람이라는데.)


그리고 벚꽃이 한창인 봄날, 모교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그 후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머님이 교회를 다니기에, 보통 결혼 후 가족 행사의 구심점이 되는 제사가 없었으며,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식사 전 식탁에서 <하나님 아버지- >로 시작되는 기도 정도가 새로운 절차였다.


그러던 중, 어느 해 4월 초 어머님이 '만찬'이 있다며 오라고 하셔 갔더니, 내가 떠올린 만찬이란 이미지가 무색하게 조촐한 저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날의 진짜 중요한 행사는 따로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이 말하신 만찬 앞에 생략된 두 글자가 있었으니. '주(Jesus)'의 만찬.

<주의 만찬>이란 어머님의 종교에서 꽤나 큰 규모로 진행되는 예배로, 본인이 참가해 본 결과 <부활절>과 비슷한 의미를 담은 예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날에서야 나는 시어머님이 여호와 증인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무릎을 충분히 덮는 스커트낮은 구두, 단정한  투피스 차림을 보며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종교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남자 신도들은 블랙 혹은 감색의 정장) 자매님, 자매님 하면서 서로를 다정하게 일컫는 호칭까지.


사람 좋은 미소에 둘러싸여 쏟아지는 인사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형광색 면바지에 빨간 단화를 신고 참석한 나는 물속의 기름같이 둥둥 떠 겉도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진즉 알았으면 옷차림이라도..)


거기는 '엄밀히' 말하면 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왕국>, <여호와 증인의 왕국>이라는 곳에 나는 입성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내 삶엔 여호와가 함께 하게 되었다.


..

...

......

와 같은 다이내믹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1년 중 그 하루를 제외하고는 어머님의 종교를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자녀가 여호와 증인이라면 여호와 증인 신자와 결혼해야만 한다. 어머님의 아들들은 세속의 생활을 하면서 군대도 가고,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 결혼에는 종교가 개입하지 않았다)


대신 몇 년간 경험한, 여호와 증인인 시어머님을 만나며 겪게 되는 색다른 이벤트에 대해서 꼽아보자면,


첫 번째,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나, 남편, 아이들, 어머님 자신의 생일조차 그냥 어제 오늘과 같은 보통의 날)


두 번째, 그 대신 결혼기념일을 함께 챙기고 축하한다는 것.(결혼기념일을 부부 둘이서 조촐하게 보낸 적이 없다) 한 사람의 탄생보다도 부부 되어 가족을 이룬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달까?


세 번째, 절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설날이 되어도 세배를 한 번 한 적이 없고, 그건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기에 학령기에 들어간 큰 아이에게는 세배는 설날에 외갓집에서만 하는 걸로 알려 주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가을'에 가장 큰 주제가 추석인데, 차례지내기, 성묘하기 등 민족 최대 명절에 대해 알아야 할 상식 차원에서.)


한 번씩, 어머님이 무심코 아마겟돈(지구의 종말)에 대한 스토리를 읊어주시곤 하지만 그건 영화에도 많이 나오는 주제기에 그냥 <그렇죠, 언젠가 아마겟돈이 오겠죠?>하는 정도의 반응으로 대처한다. 나는 한 종교에 대한 한 사람의 의지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신실한 종교인이신 어머님의 무심한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다.


매년 참석하는 <주의 만찬>이라는 것에 7년 차가 되던 해, 그 날 정해진 일정(글쓰기 워크숍)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다소 실망하신 기색이셨지만, (큰 며느리가 마음속으로 외치던 "종교의 자유를-" 의 의중을 읽으셨는지) 잘 다녀오라는 말 외에는 별 말이 없으셨다.


무교인 며느리가 여호와 증인 시어머님을 만났을 때, 솔직하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저는 따르는 종교가 없어, 어머님 종교생활을 같이 하기에는 어렵지만 저는 어머님의 종교는 존중합니다.> 정도로 솔직한 마음을 한 번 말해보는 거다.


역으로 생각을 해 보니, 우리 집(친정)의 경우는 1년에 2번 명절을 제외한 큰 제사를 지낸다. 고모들과 삼촌 할머니까지 참석하는 가족의 행사지만, 이제껏 살면서 제삿밥이라고는 먹은 적 없는, 제사상에 절을 한 경험이 희박한 남편에게는 어쩌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리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가족이 당연시하며 보내는 그날의 모든 절차들. 30년 달리 살아온 남편에게는 어찌 보면 어려운 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년 전부터는 제사가 있는 당일 아침 일찍 주문한 떡을 들고 홀로 가볍게 다녀오는 일과를 보내고 있다.


결혼은 문명의 충돌이라고 한다. 달리 살아온 두 사람의 결합은 물리적, 화학적 결합 그 이상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좋을 땐 좋지만, 안 좋을 땐 서로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날릴 수 있는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에서 서로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치관을 고수하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수조건임, 두 행성이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궤적을 그리며 나란히 공전하는 것 그게 부부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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