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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Oct 31. 2020

왜 스타벅스에서 공부할까?

중이 바쁜 육아 동지인 남편은 토요일이면 고맙게도 아이 둘을 데리고 5-6시간짜리 등산을 나선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밥을 소복하게 지어 반찬 몇 가지를 곁들여 3명 분의 도시락 싸주는 것.

그렇게 아침 주방이 한번 난장이 되고 거실에 아이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지면, 채비를 마친 남편의 손짓에 엄마인 나는 살짝 몸을 숨긴다. 엄마와의 숨바꼭질에서 엄마찾기를 실패한 아이들이 아빠와 떠나는 것을 숨죽여 지켜보고, 그들이 떠난 후 고요만이 가득한 스테이지에 다시 등장해 게임 퀘스트를 깨듯 방, 거실, 주방을 하나씩 클리어한다.


그리고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에코백에는 노트와 읽다만 책들, 이번 주에 썼던 글을 프린트한 것을 들고 집 근처 2곳의 스타벅스 중 한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사실,

아무도 없다. 그저 익명의 나 같은 사람들, 공시생, 중간고사 중인 학부생, 취준생들, 다양한 사람들이 약속한 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본인 만의 공부(작업)를 하는 그곳.


집에서 하면 되지 유난스럽게 왜?

담소 혹은 가볍게 수다를 나누기 위해 카페를 찾은 이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며 생각할 것이다.

<집에서 안 하고 왜 돈 써가며 이 시끌벅적한 곳에서 공부들하고 난리일까?>


나도 가족들이 떠난 집에서 장대한 계획을 안고 노트북을 켜고 앉았던 적이 있다.

 <그래 오늘 탈고하는 거야>


그런데 집이 주는 편안함이랄까? 너무 편해서 집중이 안될달까.

가정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는 '주부'(>나무위키 출처) 역할 담당인 나는 무엇보다, 묘하게 거슬리는 집안의 구석구석들에서 눈을 뗄수가 없다. 한 줄의 글을 적어나가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드는 <저 커튼 자락에 얼룩이 언제 묻었지? 커튼을 내려서 세탁기 돌릴까?> <볕 좋은데 가재손수건 좀 삶아서 널까?> <뒷베란다에 양파 3kg는 언제 산 거였지? 두면 물러질 텐데,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어둘까?> 하는 생각들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결국 처음 의자에 앉으며 , 오늘 할 것들이라고 적은 1-8까지의 리스트에서 2-3개 정도만 건성으로 하고, 결국에는 웹서핑 조금, 집안일 조금, 그리고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귀한 시간을 다 날려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바깥 나들이 다녀온 남편은 개인 시간은 잘 보냈냐고 물어본다. <아니>, < 왜?>, <시간이 별로 없었어>, <일부러 최대한 늦게 온다고 왔는데?>, <아침 먹은 거& 도시락 싼다고 늘어놓은 것들 다 치우고, 또 귀가하면 본인들 저녁은 안 먹어?>라며 투덜댔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집에는 집안일 귀신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그리하여 굳이 가방을 싸들고 나서게 되었다.

부산의 주요 산복도로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동네다 보니 집 주위에는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카페베네, 그외 동네를 기반으로 한 개인 카페들, 베이커리 카페, 캠핑카페 등 취사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는, 그곳을 찾는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모종의 약속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스펙에서 보자면, 다른 카페에 비해 스타벅스에는 한 좌석씩 독립된 좌석이 많다. 이외에도 8-10인을 위한 긴 원목 테이블도 있는데 여기에는 각 자리마다 콘센트가 구비되어 있어 기본 3-4시간씩 자리를 뜨지 않는 스마트기기족들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런 개인 플레이자들로 채워진 자리에 내 자리를 찾아 앉아 함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보면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무언가 하고 있어!)


그리고 이들 주변으로는 그렇게 수다스러운 팀들이 앉지도 않는다. (동네 카페에서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재래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소음 수치가 나온다, 모든 테이블의 말들이 섞이고 섞이는 묘한 광장)


우리는 스타벅스에 형성된 조용한 섬처럼, 그렇게 모니터 혹은 책을 두고 씨름할 뿐이다. 카페의 특성상 커피나 기타 제조음료들과 샌드위치와 케이크 같은 메뉴들을 이용하며 가벼운 몸으로 집중력 있게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귀한 주말, 반짝이는 가을볕 아래 단풍길을 걸어, 나는 모든 것을 다 포용할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세이렌의 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시원한 차 한잔, 시즌에 걸맞은 배경음악, 공간을 채우는 커피콩의 냄새를 맡으며 (신기하게도 여기서 볶고 그라인딩 되는 커피콩 냄새는 10년 전에 맡았던 호주에서의 그것이나, 태국 치앙마이의 구시가지의 스타벅스에서 맡았던 냄새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때의 자유와 오늘을 살짝 맞대어보며)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려 본다. 머릿속의 흩어진 말들을 그러모아 한 줄을 채워본다. 의미없던 단어들이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하나의 글이 된다. 화면 속의 여백을 가득 매운 단어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 내 것으로 만든 후에야 <저장>버튼을 누른다. 바깥의 풍경을 비추던 따스한 자연의 빛이 사라지고 조명등이 하나 둘씩 그 자리를 대신할때 자리를 털고 나선다.

어둠이 내리고, 나설때 무거웠던 배낭이 홀쭉해져서야 귀가하는 남자 셋을 보며 외친다. <엄마 탈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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