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타버리지 않고 구워지다
마시멜로 봉투를 뜯는다. 단내가 확 올라온다. 무해한 느낌의 하얗고 깨끗한 마시멜로가 잔뜩 들어있다. 굽기 전 마시멜로는 말랑해 보이는 겉면과 달리, 속은 형태가 꽤 단단하다. 나는 구워지기 전 마시멜로(before)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무해한 느낌으로 타인에게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자신의 형태와 색깔은 잃지 않는 사람. 일명 겉따속차.
그러나 나의 한결같은 바람과 달리, 난 구워진 후 마시멜로(after) 같은 사람이었고, 그 사실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갈색으로 단단하게 그을린 외피는 곁을 잘 내어줄 것 같지 않은, 차갑고 단단한 나의 첫인상과 연결된다. 불에 구워져 흐물흐물해지고 쉽게 찢어지는 속은 사람에게 쉽게 상처받는 마음과 닮아있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했기 때문이다. 왜 나는 겉따속차처럼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적당히 조절하지 못 했을까. 겉으로 보이는 인상만큼만 조절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결국 곁을 내어주고는 상처 받아 더욱더 단단한 외피를 장착시켰다.
마시멜로는 잘 굽기가 어렵다. 잘못하면 숯검댕이가 되어버린다. 마시멜로 겉면이 구워지듯, 내 삶도 그을려지는 시기가 있었다. 삶의 시련이 이렇게도 줄줄이 사탕으로 올 수 있는 건가. 이러다가 숯검댕이로 다 타버리지 싶었다. 불이 다가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인생의 시련을 골라잡을 수 없으니까. 불이 다가오면서 나의 겉면은 구워졌고, 속에 열을 품게 했으며, 형태와 색깔은 변화를 거듭해 나갔다.
좀 더 구워지자, 마시멜로는 쉽게 찢어지기보다는 잘 늘어나는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다. 굽기 전 마시멜로(before)가 단맛은 있지만 깊은 맛은 없는 반면, 구워진 후 마시멜로(after)는 풍미와 향이 살아나면서 깊고 짙은 고소함과 단맛을 갖게 된다. 삶의 숱한 시련과 흔들림에도 타버리지 않고, 적당히 그을리며 구워진 나의 시간들이었다. 깊어진 시간은 내 마음에 온기를 더해주었다. 사실 나는 내가 그리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진심을 다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함께 하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의 '속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타인의 경험을 미루어 짐작하는 듯 하다. 누군가 아픔을 이야기할 때, 진심을 다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그만큼 그을려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속이 따뜻해지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장했던 외피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