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괜찮냐?”
눈을 떠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 목소리가 들려서 꿈인가 싶었는데, 진짜 엄마 얼굴이 보였다.
“하늘이 빙빙 돌아.”
“그니까, 살살 다니라고 했잖아, 내가.”
분명 나는 잠에서 깼고, 허리를 반쯤 세웠다. 갑자기 천장이 팽이 첫 바퀴처럼 세게 돌았다. 납작 엎드려 이불을 꽉 쥐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기억이 났다. 땅이 나를 털어내 저 멀리 하늘로 날려버릴 기세였다.
잠잠해질 즈음 다시 누웠고,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옷 입어라. 병원 가보게.”
90도로 몸을 세우기가 두려웠다. 게처럼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자, 다시 하늘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아,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네이버에 ‘하늘이 빙빙 도는 증상’을 검색했다.
이석증. 눕거나 일어날 때, 고개를 돌릴 때, 짧게 하늘이 빙빙 도는 강한 어지러움.
‘이게 이석증이라고?’
갑작스러운 자세 변화. 내이의 손상. 노화. 머리나 귀에 충격이 원인.
D-18. 스웨덴 ‘왕의 길’로 떠나기 위해 한창 준비 중이었다. 연습 삼아 변산 마실길을 걸었다. 돌아온 다음 날, 이 지경이 되었으니 ‘갑작스러운 자세 변화’가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20kg짜리 빵빵한 배낭을 메고 이틀에 걸쳐 종일 걸었으니까.
엄마는 땅이 꺼질 듯 걱정했다.
엄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Y 원장님을 소개받았다.
“누워 보세요.”
왼쪽으로 45도, 오른쪽으로 45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뭔지 모를 도구로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이석증인가요?”
“이상하네. 이석증도 아니고….”
“원장님, 저 2주 후에 스웨덴 가야 해요. 꼭 돌려놔야 해요.”
“거기는 왜 갑니까?”
“배낭 메고 대자연 만나러요.”
“아이고, 사서 고생하러 가시는구나.”
“좋아서 하는걸요.”
“3일분 드셔 보고 다시 오세요.”
속 시원히 낫는 건 고사하고, 원인 불명이라니. 이러다 스웨덴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겁이 덜컥 났다.
“딸, 거기 꼭 가야 돼?”
“가야죠! 쏟아부은 게 얼만데…”
“어휴, 그러다 길 한복판에서 쓰러지면?”
“그걸 왜 미리 걱정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에선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걷다가 쓰러져 응급 헬기를 타는 건 아닐까. 스웨덴의 낯선 병원 어딘가에서 두려움에 떨게 되는 건 아닐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조차 타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늘이 다시 빙빙돌기 시작했다.
‘아, 좀 살살 돌아라.’
약을 챙겨 먹고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하늘은 돌았지만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운동도 못하는 터라, 트레이너에게 하소연했다.
“혹시 승모근이 문제 아닐까요?”
그는 간혹 운동하는 사람들이 근육이 뭉쳐 몸을 제대로 못 움직일 때, 근육에 주사를 맞기도 한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배낭이 꽤 무거웠으니, 나도 모르게 어깨와 등에 무리가 갔을지도 모른다.
“좀 아프긴 한데 효과는 좋아요.” 깩 죽어도 주사는 싫다고 했더니, 한의원에 가서 침이라도 맞아 보라고 권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찾아간 동해 한의원. 바다 이름이라 왠지 믿음이 갔다. ‘자연에서 얻은 병은 자연에서 풀자’고 주문을 외웠다. 차례가 되어 들어서니, 머리가 허연 한의사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는 ‘허허‘ 웃으며 따라오라고 했다.
“엎드려 보세요.”
내 목 주변과 승모근을 만져보더니 “힘 빼지 않으면 다쳐요.”라고 겁을 주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힘을 뺐고, 그 순간, 내 목은 툭 비틀렸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한 번 더.
“이제 침을 놓을 테니, 한숨 푹 자요.”
꿀잠을 잔 모양이었다. 30분을 잤다는데, 아무 기억이 없는 걸 보니.
“몸을 쓰지만 말고, 수고했다고 수시로 풀어주세요.”
한의사는 짧게 조언했다. 증상이 계속되면 다시 오고, 아니면 안 와도 된다고 했다.
Y 원장님이 처방한 약을 챙겨 먹고, 한의사 할아버지 조언대로 근육을 마사지했다. ‘고맙다, 고맙다.’ 속삭이면서.
팽이가 세게 돌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비실비실 쓰러지듯, 어지럼증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좀 어때요?”
다시 만난 Y는 추가 검사에도 아무 이상이 없고, 여전히 원인불명이라고 했다. 나는 한의원에 다녀온 일을 전했고, 증상이 심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저, 스웨덴 가도 될까요?”
“다녀오면 나을 병 같은데요?!”
“네?”
“얼마나 걸을 거죠?”
“10일 일정입니다.”
“비상약 10일분 지어 드릴 테니 가져가세요.”
“그래도 될까요?”
“가지 말래도 가실 거잖아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