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반기를 들었다

by BONNIE C


“혈관이 깨끗하네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피가 콸콸 나오잖아요.”


“보통 다 그렇지 않나요?”


“한참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많아요.”


원하는 만큼 피를 빼고 간호사는 나를 칭찬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운동하기 전의 나는 달랐다.


‘157cm, 58kg. 고지혈증 경고’


서른여덟, 생애 첫 건강검진 결과였다. 바쁜 수업 일정 탓에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더구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당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블랙커피만 마셨다. 억울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에겐 나쁜 습관이 있었다. 늦은 밤 수업을 마치면, 보상이라도 하듯 고기반찬에 반주까지 곁들였다. 술이 깰 때까지 자고 일어났다. 그렇게 반복된 날들 때문에, 내 몸이 반기를 든 것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잠시 무언가 달라져야 했다. 나는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혈관 청소하러 왔습니다.”


“다이어트군요?”


처음 만난 트레이너가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일명 ‘쇠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의 첫 트레이너는 나를 웃기려는 건지, 원래 웃긴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큰일 보고 팔 돌려 밑 닦다가 담 걸린 남자 얘기도 서슴지 않고 했다. ‘다 운동 부족이죠.’라고 핀잔을 주면서.


그는 내게 근력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했다. 몽골 전사의 후예가 아닐까 족보를 한 번 살펴보라며 웃었다. 2분 걷고 3분 뛰라고 지시한 후, 30분 내내 옆에서 지켜봤다. 그때만큼은 트레이너가 너무 진지해서 힘들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나를 웃기던 그가, 나에게서 웃음을 걷어갔다. 그 덕분인지, 내 배에 호리병 모양 근육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만나는 트레이너의 잔소리가 싫어, 밤늦게 먹고 마시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그를 만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르는 아침 공기가 밤공기보다 훨씬 유쾌했다.


때마침 요가수련에 한창이던 S가 한 달간 ‘Sugar-Free Diet’를 제안했다. 단톡방에는 여섯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정제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식단이나 요리를 공유했다. 어느 주말 오후에는 모두 모여 달지 않은 초콜릿 조각을 만들었다. 곰 네 마리, 하트 두 개. 하나씩 손에 들고 깔깔 웃으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렇게 웃다 보니, 이상하게도 단맛 없이도 나름 괜찮은 한 달이 지나갔다.


“컨디션 어떠세요?”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아요.”


트레이너는 함박 미소를 지었다, 건강하게 몸을 만들어가는 내가 대견하다고 했다.


나는 웃었지만, 곧 다가올 걷는 여정을 생각하면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래 걸어야 해요.”


“끄떡없을 겁니다.”


“배낭 지지대 자작나무가 뼈에 부딪칠까 걱정이죠.”


“지방보다 더 단단한 근육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트레이너는 별걱정 다 한다는 눈치로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집에 돌아와, 쌀 한 가마니처럼 우뚝 선 배낭을 마주했다. 배낭을 메려면 일단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한 팔을 빠르게 끼운다. 이후 왼쪽 팔을 끼우고, 허리 버클을 당겨 엉덩이에 걸친다. 마지막으로 어깨 끈을 조여 등에 밀착시키면 배낭과 나는 한 몸이 된다.


일단 밀착이 되면 신기하게도 불끈 들어 올릴 때만큼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소소한 동작에 상당한 근육이 필요하다는 걸,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몸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몸무게부터 잰다. 어떤 날은 생리 전이라서 54.2kg, 또 어떤 날은 배가 더부룩하지 않은 걸 보니 53.2kg쯤 될 것 같다고 짐작했다. 아귀포 한 마리 구워 맥주 한 캔을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53.8kg. 화장실에 다녀오면 0.3kg 정도의 오차가 생긴다. 호르몬의 문제가 아닌 이상, 53이라는 숫자와는 나름대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몸이 달라지니, 길도 달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