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송호리, 솔숲 옆으로 금강이 흐른다. 강은 어딘가 목말라 보였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6년 전쯤 처음 방문했던 곳이었다. 이른 아침 물안개에 반해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사연인지 물빛이 어두워졌고, 다시 그 물안개를 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걷자’고 목을 박아둔 날이었다. 대전에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만만한 거리 덕분에 만장일치로 다시 찾아온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는 구급대원처럼 외쳤다.
“소금! 소금!”
“아, 맞다. 소금!”
라면 하나를 끓이는데도 은근한 자존심이 붙는 게 백배커들의 요리법이다. 양파, 호박, 버섯을 사각형, 삼각형, 일자로 썰어 볶다가, 소금이 없어 난감했던 지난 구시포 저녁이 떠 올랐고, 우리 셋은 웃었다.
“어떻게 그걸 다 먹었나 몰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거지.”
“우리는 자연인이다?”
“싱거운 저녁, 진한 추억이지.”
그 사이, 세 개의 텐트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먼저 쳐 둔 타프(그늘막) 위로 빗방울이 타닥타닥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법 빗줄기가 굵어지며, ‘이만한 가성비 좋은 ASMR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타프나 텐트 위로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은 유독 천천히 흐른다. 쌓여가는 좋은 추억들 때문일까.
“그만 눈 뜨고, 인삼 막걸리 잡숴봐.”
금산 양조장에서 직접 공수해 온 막걸리였다. S가 불을 지피고 자작자작 볶아준 낙지와 무척 잘 어울렸다. Y의 요술가방에서 꺼낸 참기름 덕분에 고소한 향이 퍼졌다. 벌써 냄새를 맡은 건지, 야생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칼 있죠?”
“그럼 있지.”
내 오피넬 칼을 꺼냈다. 유럽 백패커들이 애정한다는 접이식 칼, 그런데 내 눈엔, 은장도처럼 보였다. 간혹 밥그릇은 잊어도, 칼은 꼭 챙긴다. 조선 여인들이 저고리 앞섶 안쪽에 감추고 자신을 지켰다면 나의 칼은 주로 야채를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송호리의 저녁엔 소금이 있었다.
“비가 제법 올 것 같은데?”
“오라고 하죠, 뭐.”
“텐트가 신났어.”
젖은 텐트를 배낭에 다시 넣는 일도, 꺼내어 말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짧으면 한 달, 길면 몇 년 동안 바람 한 점 쐬지 못하는 텐트 역시, 지금 이 순간 숨통을 트고 있다는 걸. 밤새 빗소리를 들으며 꿀잠을 자고, 아침엔 중천에 뜬 해가 텐트를 말려줄 거라는 걸.
바람이 솔잎 사이로 묻히고, 발 밑으로 해가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