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만들어 내는 신체적 반응 (5)
머리카락, 모발은 단순히 우리 몸의 특정 부분에 나는 일종의 '털' 정도로만 여겨지지는 않죠.
아마도 가장 먼저 우리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는 곳일 텐데요.
그만큼 '생명력의 징후'가 가장 민감하게 드러나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탈모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민입니다.
진료실에서는 젊은 층도, 여성들도 많습니다.
탈모는 단순히 외모의 문제를 넘어서, 자신감과 감정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변화입니다.
그런데, 탈모를 유발하는 요인 중에는 잘 알려진 유전, 호르몬, 환경 외에도 ‘감정’이 깊게 관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회사 관두고 나니까 갑자기 머리가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어요."
"사별하고 나서 조금 추스를만 하니까, 머리가 비는 게 눈에 띄네요."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는, 정말... 아침에 빗질만 해도 한 움큼씩 빠졌어요."
이렇듯 감정은 우리의 머리 위에도 흔적을 남깁니다.
탈모는 단지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이 아닙니다.
감정의 무게가 모낭 위에 떨어졌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충격 - 스트레스, 불안, 상실감 등은 호르몬, 자율신경계, 순환계의 균형을 무너뜨려 모낭의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생명력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 - 머리카락으로 그 영향을 보여줍니다.
(1) 스트레스와 코르티솔 : 모근의 생존 주기를 방해하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켜, 모발 성장기에 있는 모낭을 조기 탈락기로 전환시킵니다. 이는 급성 휴지기 탈모(TE: Telogen Effluvium)의 주요 기전 중 하나입니다.
(2) 자율신경계 불균형 : 말초 순환 장애로 이어지다
감정적인 긴장은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활성화시켜 두피로 가는 미세혈관의 혈류를 감소시킵니다.
모낭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줄어들면, 모발의 성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한의학의 고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머리카락은 혈의 여분으로 만들어진다.”
(3) 염증 반응과 모낭 손상
스트레스는 전신 염증 수치를 높이고, 염증 물질들이 모낭 주변 조직을 자극하면 자가면역성 탈모(원형 탈모)도 악화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단순한 기분을 넘어서, 내분비계의 균형을 흔드는 파동이 됩니다.
감정적 스트레스는 뇌-호르몬-부신 축(HPA axis)을 자극하여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흔들고, 탈모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1) 감정이 부신에 과부하를 주는 이유
스트레스나 감정 변화가 생기면, 뇌는 이를 위협으로 판단하고 '경고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합니다.
이 호르몬은 부신에서 만들어지며, 감정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부신은 지속적으로 호르몬을 생산하며 과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신 기능 과부하(adrenal fatigue)'입니다.
여성의 경우, 우울·불안 상태가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의 균형을 깨뜨리며 '남성형 탈모 패턴(FPHL)'을 유도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2) 부신 기능 과부하가 탈모를 부르는 이유
- DHEA 감소 -> 성호르몬 균형 깨짐
부신이 지치면 DHEA(성호르몬 전구체, 탈모 방지 역할)라는 호르몬 전구체의 생산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남성형 탈모'를 유도하는 '안드로겐(DHT)'이 상대적으로 많아집니다.
- 두피 혈류 감소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말초혈관이 수축하여 모낭으로의 산소·영양 공급이 저하됩니다.
- 면역 조절 실패
부신의 항염 기능이 약화되면, 자가면역 탈모(원형탈모 등)가 악화되기 쉽습니다.
- 수면 장애 -> 성장호르몬 감소
수면 중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모낭 재생과 생장기에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감정기복이 크면 수면 질이 떨어지고, 모낭의 회복도 늦어집니다.
한의학에서 탈모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감정이 개입된 탈모는 주로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해석됩니다.
(1) 간기울결(肝氣鬱結) : 급성 스트레스 후 탈모
억눌린 감정이 간의 기운을 막아, 두피로 기혈 순환이 약화
(2) 혈허(血虛) : 여성형 탈모에 흔함
기혈이 부족하여 모발을 자양 하지 못하면 두피와 모근이 약화
(3) 신허(腎虛) : 만성 스트레스 후 탈모
신장의 정기가 약해져 모근의 뿌리 자체가 약화
1. 감정 관리
명상, 심호흡, 감정일기 등으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흘려보내기 연습.
마음이 편해지면 혈관도 유연해지고, 두피의 미세순환도 좋아집니다.
2. 수면의 질 개선
10시~2시 사이의 깊은 수면은 성장호르몬 분비와 재생에 필수적입니다.
감정 기복이 클수록 수면 리듬이 깨지기 쉬우므로, '정서 안정 -> 수면 회복 -> 탈모 완화'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합니다.
3. 두피순환 강화
가벼운 유산소 운동, 목·어깨 스트레칭, 두피 지압 등으로 말초 순환을 개선해보세요.
저는 임상적으로 '경추 긴장 -> 두피 열기 상승 -> 탈모 악화'의 경향성을 자주 보게 됩니다.
4. 음식과 탕약
평소 검은콩, 흑임자, 들깨, 해조류 등 신장과 간을 돕는 식재료를 권장합니다.
기혈을 보충하는 한약은 탈모 체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참는 연습은 배웠지만, 감정을 푸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누적된 감정은 뿌리 깊은 곳에 남고, 결국은 몸의 가장 바깥 즉, 머리카락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탈모는 단순히 머리카락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때로 참아온 말, 눌러둔 분노, 회복되지 않은 상실감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돌보는 것, 그것이 때론 우리의 소중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지키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