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계항진(心悸亢進)

감정이 만들어 내는 신체적 반응 (6)

by 조자연

"가슴이 두근거려요. 특별히 겁난 일은 없었는데, 갑자기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계속 이러니까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무서워요."

진료실에서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심계항진(心悸亢進)'은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평소와 다르게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어떤 경우엔 맥박이 정상이어도, 환자는 가슴이 '쿵쿵' 심하게 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다고 나오는데, 본인은 확실히 느끼는 이 불안한 감각.
그 정체는 뭘까요?


감정과 심장의 연결

심장이라는 장기는 감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놀라거나 슬플 때, 가슴이 '철렁'하거나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감각이 자주, 무작위로, 또는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건 단순한 감정 반응을 넘어 자율신경계의 불균형, 나아가 몸의 경고일 수 있습니다.


삶이 늘 위기모드라면, 심장은 쉴 수 없습니다

심계항진의 대부분은 교감신경계의 항진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불안, 분노, 긴장 등은 모두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합니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심장은 혈압을 올리고 심박수를 증가시켜 몸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정이 지속되거나 누적되면, 신체는 실제로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위기 모드로 오인한 채, 심장이 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심장은 늘 불안정한 상태로 남게 되고, 작은 자극에도 심장이 ‘쿵’ 하고 반응하게 되는 심계항진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심장박동에의 영향

감정 스트레스는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솔'을, 부신수질에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만듭니다. 이 스트레스 호르몬들은 모두 심장의 박동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아드레날린'은 심근의 수축력을 높이고, 심박을 빠르게 만듭니다. '코르티솔'은 교감신경의 흥분을 지속시키며, 심장의 과잉 각성을 유도합니다.

즉, 감정이 강하게 오르내릴수록 심장도 함께 ‘출렁이며’ 무리가 되는 것이죠. 심장의 리듬이 불안정해집니다.


감정의 파도는, 심장에 닿는다 - 염증, 면역, 순환의 악순환

심계항진은 단지 '심장이 빠르게 뛴다'는 증상만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감정이 만들어낸 신체 내부의 연쇄 반응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1. 감정은 염증을 유발합니다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몸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이때 활성화된 호르몬은 염증 반응을 촉진하고, '사이토카인', 'TNF-α'와 같은 염증 물질은 심장의 민감도를 높이고 심박의 리듬을 교란시킬 수 있습니다.

2. 면역계는 감정에 흔들립니다

면역 반응은 자율신경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면역계의 과잉반응 혹은 억제 현상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면역을 조절하는 균형이 깨지면 자기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때 자가면역 반응이 심장 주변을 공격할 경우 심근염, 심막염, 심전도계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심계항진, 부정맥, 가슴 두근거림 등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3. 순환은 불안정해지고, 심장은 과도하게 반응합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순환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은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고, 그 결과 심장으로 가는 혈류가 불규칙해집니다.
이렇게 산소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심장은 계속 일해야 하므로, 조금만 자극이 와도 두근거리거나 철렁한 느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정은 염증, 면역, 순환의 흐름을 함께 자극하며, 심장을 예민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변화는 검사에 잘 잡히지 않는, 하지만 실제로 매우 괴로운 불안정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이 벌렁거릴 때, 그건 어쩌면 감정이 몸속에서 이미 많은 일을 벌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한의학적 해석 – 심계항진과 감정의 흐름

한의학에서는 심장은 단순한 근육 펌프 그 이상입니다. 심장은 '신(神)이 깃든 곳'으로 감정의 중심입니다. 따라서 억눌린 감정이나 표현되지 못한 불안은, 심장 박동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1. 심담허겁(心膽虛怯)

불안·공포가 지속되면 심장과 담의 기운이 허약해져 조금만 자극이 와도 쉽게 놀라고 두근거림이 발생함

2. 간기울결(肝氣鬱結)

감정을 참거나 억누르면 간기가 정체되고, 이 간기가 심장을 눌러 심계, 불면, 초조로 이어짐

3. 음허화왕(陰虛火旺)

몸이 지치고 정기가 소모되면, 음기가 약해져 내면의 열기가 올라오고, 그 열이 심장을 자극해 열감, 가슴 두근거림, 안절부절 등의 증상이 나타남


감정성 심계항진의 관리 방법

1. 감정 기록과 호흡 훈련

억누른 감정은 심장을 두드립니다. 증상이 반복되는 시점을 기록하면 감정과의 연결성을 스스로 자각하게 됩니다.

깊은 복식호흡과 천천히 숨 내쉬기는 교감신경을 안정시키고 심박을 자연스럽게 낮춰줍니다.

2. 수면의 질 관리

수면이 얕아지면 교감신경 항진 상태가 지속됩니다.

감정 기복이 클수록 심장은 회복 없이 긴장 상태에 머물게 되므로, 수면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말초순환 운동

손발이 차거나 말초 혈류가 약한 사람은 심장으로 부담이 집중되기 쉽습니다.

가벼운 산책, 따뜻한 족욕, 손끝과 발끝 털기 등으로 말초 순환을 도와주세요.

뒷목이나 날개뼈주변, 가슴 앞쪽 스트레칭은 심장 주변 긴장을 완화합니다.

4. 한약과 침치료

심담허를 보하고, 간기울결을 풀고, 음허를 진정시키는 한약은 심계항진을 조절하는 데 임상적으로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침 치료는 즉각적인 자율신경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산조인, 감국, 복령, 용안육은 심장의 기운을 안정시키는데 자주 쓰이는 약재이므로 차로 복용하셔도 좋습니다.


가슴의 두근거림, 마음의 두드림

심장은 단순히 피를 보내는 기관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태, 자율신경의 흐름, 그리고 감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거울이죠.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데, 일상이 무너질 만큼 괴로운 심계항진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건 어쩌면, 감정이 쌓였다는 몸이 보내는 분명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돌보는 만큼, 심장도 다시 자신의 박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만 보면, 심장의 리듬은 곧 삶의 리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keyword
이전 12화탈모(脫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