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마음이, 나는 들린다.
어느 오후
진료실 문이 열리고,
어르신 한 분과 그를 부축하는 딸이
함께 들어온다.
딸은 어머니의 팔에
단단히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문을 밀며
익숙하게 들어선다.
비틀거릴까, 넘어질까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순간.
몇 번이나 반복했을,
능숙하고 조심스러운 동작.
두 사람 모두, 얼굴엔
긴 세월의 무게가 앉아 있다.
화장기 없는 딸의 얼굴엔
익숙한 책임감과 지친 마음이 보인다.
어쩌면, 딸은 누군가의 부모가 된 지 오래고,
벌써 어린 손주의 할머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다.
어르신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이름도 놓치고,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그럴수록 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엄마, 거기 앉으시라니까요.”
“선생님이 아까도 말씀하셨잖아요.”
그 말들이 화난 것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나는 안다.
그건 화가 아니라,
지친 사랑의 외침이라는 걸.
그리고 그 안에는
불쑥 올라온 불안이 숨어 있다.
집에선 괜찮았던 엄마가,
병원에 오니 갑자기 뭔가 더 어설퍼 보일 때,
‘혹시 지금, 뭔가 더 나빠진건가?’
마음 한켠에서 급류처럼 일렁이는 두려움.
그래서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은 날카로워지고,
표정은 딱딱해진다.
“엄마, 왜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해.”
그 짧은 말 속에는
‘제발 더 나빠진 건 아니라고 해줘요’
‘이게 더 진행된 건 아닌 거죠?’
그런 속말들이, 너무 많이 들어있다.
자기도 모르게 엄마에게 쏟아낸 말 한마디.
사실은
‘엄마에 대해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고,
누군가
‘괜찮다고, 아직은 괜찮다’
말해줬으면 하는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은,
아무에게도 정확히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그 말을 내뱉는 본인조차도
자신의 속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나는 진료실에서,
그 숨겨진 마음을 듣는다.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두려움,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한 헌신,
그런 것들을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철없던 내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20대 대학생이던 시절,
전화 통화 중,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외할머니 요양병원에 모셔야 할까...?”
나는 너무 쉽게, 무심하게 말했다.
“병원이 낫지. 아무리 자식이라도 하루이틀이지,
오래는 못 돌봐.”
.
.
.
.
지금 나는 진료실에서 그 시절의 엄마를 자주 만난다.
자신보다 더 늙은 부모를 부축해 오고,
그러면서도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쑤시고, 잠은 못 자고
본인들은 아플 시간도 없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보면
짜증 섞인 말투보다 먼저
그 뒤에 서 있는 고단한 마음을 본다.
그들의 시간에,
나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리고 어떤 날은 생각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이해가 안 가는 고집을 부리고,
귀가 안 들려 자꾸 되묻는 모습이라도
우리 엄마도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떠나고 지금은 알 것 같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 이별하지만,
함께 한 시간은 훨씬 오래,
가슴속에 남는다는 것을.
그래서 기도하듯 바라게 된다.
진료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그들의 앞날에,
부디, 조금은 따뜻한 햇살이 비추기를.
훗날 이 시간을 돌아볼 때,
함께 했던 추억이 선명하게 남기를.
그리고 엄마가
그때의,
철없던 때의,
나의 말을 다 잊어주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