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체질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는 무슨 체질이에요?"라는 질문이 답답했던 이유

by 조자연

“선생님, 저는 무슨 체질이에요?”


이 질문은 한 때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 Top 3' 안에 들었다.




처음엔 그 질문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체질이라는 말 안에 사람을 끼워 맞추고,
마치 정답이라도 있는 듯
'나'를 한 단어로 정리하려는 그 마음이.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마치 맞는 답이 하나뿐인

퀴즈의 정답을 맞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당신'이 궁금했는데,
그들은 자꾸 자기의 '이름표'만 알고 싶어 했다.


사실 나 자신은
체질이라는 개념에 불편함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처음 한의학을 배울 때부터 그랬다.


사람을 몇 가지 틀로 나누고,

그 틀에 맞게 해석하고, 분류하고,

예측하는 방식이 불편했다.


체질이라는 말이

누군가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체질이라는 말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환자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런데 진료를 오래 하면서
조금씩 시선이 달라졌다.


체질은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흐름의 경향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열이 먼저 오르고,
어떤 사람은 소화기가 먼저 무너지고,
또 어떤 사람은 무기력으로 가라앉는다.


그 차이를 우리는 '체질'이라고 불렀다.


그 사람의 몸이 세상을 감당하는 방식 -
그게 곧 체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환자들의 질문도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저는 무슨 체질이에요?"


그 질문은 사실,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왜 제 몸은 이럴까요?'
'저는 어떻게 살아야 건강해지나요?'
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 물음 안에는
자기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체질은 '단정'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언어입니다."


체질은 '진단'이 아니라,
당신이 세상을 감당해 온 방식의 '단서'이다.


그 '단서'를 함께 보며
지금의 불편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를
함께 찾아가는 것 -

그게 한의학이고,
내가 하고 싶은 진료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너무 쉽게 규정하고 싶지 않다.


체질이든, 병명이든, 성격이든
사람은 언제나
한 가지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흐름에는 경향이 있고,
경향에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게 내가 체질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처음엔 체질이 싫었다.
내가 분류당하기 싫어서

타인을 분류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의 '흐름'을 바라보는 눈으로
체질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분류'가 아니라,
'이해'를 위한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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