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풍선처럼, 점토처럼 자란다
나는 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사람이 아니다.
부분마다 신축성이 다른 풍선처럼
이쪽저쪽으로 부풀고,
한 줌씩 덧붙어 가장자리를 넓혀가는 점토처럼
여기저기 늘리며 모양을 바꾼다.
처음의 나는 들쭉날쭉한 실험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불균형들이 오히려 나의 외연을 넓혔고,
이쪽저쪽 부풀리고 덧붙으며 생긴 울퉁불퉁한 자국들은
나를 더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하나의 결로 이어졌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최종 목표를 정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뒤의 자리,
정확한 숫자,
분명한 종착지.
그 선명함이 자주 부럽다.
그리고 그런 목표를 들을 때마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을 점검하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살지 않을까.
나는 오랫동안
'최종 목적지'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커지는 삶'에 끌려왔다.
단기적인 성장,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시선,
지난달보다 조금 덜 단정적인 판단,
작년보다 조금 더 깊어진 이해.
그리고 그 확장은 대개
사람을 통해 일어난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언어와 습관을 듣고,
그의 세계를 통과해 보고,
그의 시선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짐작해 보는 것.
그런 경험들이 쌓일 때
내가 당연하다고 믿던 기준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감각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
예전에는
이 흔들림이 불편했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 불편함이 내 세계를 넓히는 힘이라는 걸.
사람을 통해 지평이 넓어진다는 건
거창한 교훈을 얻는 일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잠깐 통과해 보며
내 결론을 조금 늦추는 일에 가깝다.
'내가 맞다'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로 옮겨가는 일.
그 작은 이동이
생각보다 큰 성장을 만들어왔다.
나는 매일
하나라도 더 알아가려는 사람이다.
오늘 만난 사람의 말 한 문장,
내가 놓치고 있던 감정 하나,
익숙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본 순간 하나.
그 하나가
내 세계를 조금 넓힌다.
그렇게 넓어진 세계는
당장 스펙이 되지 않고,
당장 성과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내가 내리는 판단의 깊이가 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결이 되고,
어려운 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내 중심이 된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 도착할 것인가"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를 더 자주 묻는다.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다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각자에게 맞는 리듬이 다르고,
어려운 일을 통과해 가는 방식도 다르다.
누군가는 정상을 정해놓고 오르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걸어가며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내가 믿는 길은 이렇다.
매일 하나라도 더 알아가고,
사람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큰 내가 되어가는 것.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곳이
내 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나는 여전히 울퉁불퉁하다.
여전히 완성보다 과정에 가깝다.
나는 풍선처럼, 점토처럼,
이쪽저쪽으로 부풀고 늘리며
내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그 확장의 끝에서
나는 조금 더 부드럽게 연결된 사람이 되어간다.